이름 : 도도
나이 : 16세
생김새 : 블랙 스트라이프 테비
이 녀석은 농장에서 왔다. 친구 Y 가 남편의 회사 동료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원하면 주겠다고 하니 가보지 않겠냐고 해서 나선 길이었다. 평소 언니라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Y와는 고양이라면 환장을 하는 두 마음이 만나 우정으로 이어졌었다. Y의 남편이 집에서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하여 고양이 주인의 집에 도착한 우리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앞에 벌어진 황홀한 광경을 눈에 담아야 했다. 낮에는 인공심장 연구원으로 일하는 그 농장의 주인인 그 사람은 퇴근 후 이 숲 속의 집으로 돌아와 집과 마당의 경계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물들과 까르르 웃으며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살고 있었다. 부엌 싱크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던 유난히 뿔이 하얀 염소며 말, 돼지, 닭들과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강아지들.. 어쩔 줄을 모르고 잠시 앉은 의자 곁으로 다가온 줄무늬 고양이 도도를 들어 눈을 맞췄던 그날부터 나와 도도는 십육 년째 동거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도도는 다리가 모델처럼 길고 발 밑의 까만 발바닥 살은 이태리 최고 장인이 만든 가죽구두처럼 반질반질 빛이 난다. 발란스가 딱 맞는 큰 두 눈은 마술사의 유리구슬처럼 반짝거리며 햇살이 바뀔 때마다 이리저리 색깔이 변하고 밍크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부드러움과 윤기가 흐르는 털은 마음이 허할 때 쓰다듬으면 과묵한 친구의 위로는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끝이 나는 것처럼 만지는 것만으로도 위로는 끝났다 할 수 있다. 친구 J는 도도의 부드러운 털이 너무 아까우니 사후에 전화기 받침으로라도 만들어 간직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나를 웃기곤 했다.
먹성이 유난히 좋은 도도는 무슨 음식이든 냄새를 맡거나 맛을 봐야 직성이 풀렸고 (고양이는 냄새를 맡는 것이 보는 것이라고 하던데.. 기어이 맛을 보는 이 고양이씨는 곶감도 맛을 본다.. 쩝) 당연히 내가 부엌에 서면 부엌 아일랜드에 안착을 해 그 연둣빛 눈으로 나의 동선만 좇는다. (부엌 아일랜드는 도도가 차지하여 음식 조리는 전혀 못하는 곳이 되었다.) 나만 바라보는 그 집중력은 하버드 대학에서 학위를 딸수도 있을 것처럼 집요하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모른 척하며 나만의 요리에 몰두해 보지만 이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알았어 알았다고" 하며 냉동실 문을 열고 한국에서 공수해 온 용대리 황태포를 하나 꺼낸다. 냉동실의 한기를 없애기 위해 잠시 손에 쥐어 온기를 더한다. 적당히 말라 포실포실하게 살이 일어나 있는 황태포를 들고 있으면 맹수의 것과 같은 송곳니를 사용하여 단숨에 먹어 치운다. (나는 도도에게 음식을 줄 때 작게 잘라서 주지 않는다. 최대한 맹수가 된듯한 기분이 나게 해주고 싶어서 단단히 붙잡고 있으면 먹고 싶은 크기로 찢어 먹는다.) 도도가 황태포를 찢어 아작아작 씹는 그 소리는 어찌나 바삭거리는지 ASMR로 제작해 밥맛이 없어 고생하는 분들에게 무료배포 하고 싶기까지 하다. '이 소리를 듣고 힘을 내어 숟가락을 한번 들어보세요.. 알아요.. 알지요.. 삶이 고단해 숟가락 들 힘도 없으신 거.. 그래도.. 일단 한 숟가락 먹고 시작합시다. 그러다 보면 죽을 것 같은 그 일들도 그럴 수도 있지로 태세전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식사가 다 준비되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하면 내 의자뒤로 다시 자리를 바꿔 그 보드라운 손으로 내 등등 톡톡 두드린다. '뭐 잊은 거 없수?' 라는 뜻이 담긴 것 같은 그 두드림에 마음이 약해져 생선도 발라 손에 놔주고 고기도 드린다. 해산물을 유독 좋아해 게를 찌는 날에는 반 마리는 아예 따로 식혀둔다. 뜨거운 기만 날리고 온기는 있어야 한다. 도도는 식은 음식은 먹지 않는다. 뜨겁지는 않지만 적당한 온기를 머금고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고양잇과의 동물이 야생동물을 잡아먹을 때 온기가 있는 상태에서 바로 먹어 그러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 맛있게 먹고 세수를 끝내고 낮잠을 시작하는 얼굴이 웃고 있는 듯하다.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80을 바라보는 도도. 늠름하게 잘 자랐다. 아기때 보이던 장난기 짙은 눈빛은 깊고 배려심 많은 든든한 친구의 눈빛으로 되어가고 있다. 나는 그 눈빛에 기대어 나의 부족함을 고백한다. 어느 날이 되면.. 그날이 오면 그 눈을 더 이상 못 보게 되겠지만 그와 함께 살았던 그 시간들은 단 하나의 순간도 빠지지 않고 나의 남은 삶에 향기를 더해 줄 것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그날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 두렵지만 그가 가는 그날 우리는 우리의 만남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으며 우리 참 재미나게 잘 살았다고 하이 파이브 하며 헤어질 것이다. 서로 참 고마웠어하며 울지 않고 세상 가장 쿨하게 헤어질 것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너의 그 자유롭던 주인의 집에 너를 그대로 두고 왔으면 너는 더 행복했을까? 염소랑 돼지랑 꼬꼬들이랑 놀면서 살았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너는 절대로 용대리 황태포의 맛은 못 보았을 것이다. 아하하
용대리에서 황태포를 더 주문해야겠다.
"가장 신선한 것으로 보내주셔용!! 우리 도도 이빨 안 아프게요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