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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비 Sep 19. 2023

배움

보미오면

° 배움


고아원에서는 일반 가정에서 흔히 배우지 못하는 것을 종종 배울 수 있었다.


초등 고학년 때는 보육원에 은 공부방 형식으로 과외를 다. 학년별로 시간이 달랐고, 개인별로 진도 달라서 개인과외를 받는 형식이었다. 숙제 안 하면 벌서고 혼나기도 했, 공부방 덕분에 성적 유지가 가능했.(공부를 안 한 것치고 성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 국, 영, 수, 사, 과 위주로 문제집을 풀었, 그 외로 한자, 컴퓨터 타자연습 등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2000년쯤에는 외국인 선교사가 두 명씩 와서 영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Hellow~"

가까이에서 본 외국인은 엄청 고, 우리와 다른 피부색이 신기했다. 알려주는 양식을 열심히 주워 담진 못했지만 외국인과 소통해 보는 좋은 경험이었다.


컴퓨터가 점점 대중화가 되어가던 그때는 보육원에도 여러 대 설치가 되었다. 시간을 정해두고 한컴 타자 연습을 했는데, 그 덕에 독수리 타법은 면할 수 있었다.


타자 치기 대회도 자주 고 승리하면 컴퓨터 자유시간 추가하는 형식의 상도 있었다. 타자는 노아가 월등했는데, 일반적이지 않은 속도가히 독보적이었다. 보미는 500타도 겨우 치는데 노아는 800타가 넘었으니 말이다.


타자 치기 대회를 할 때면 다섯 명씩 앉아 한컴 타자 연습 장문 연습으로 경기를 다.

 "시작!!"과 동시에 '타닥타닥타닥' 소리만 들린다.

구경하는 이들에게도 긴장감이 전달되었, 누가 빠른지 구경하는 데에도 손에 땀이 다. 잘하는 친구들은 손가락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손이 느린 보미는 축에도 끼지 못했다.


여름 방학 때에는, 밤에 공부방에 모여서 책상을 한쪽으로 밀고 빔프로젝터로 공포 영화를 보았다. 비디오를 빌리면 이박 삼일의 기간이 있어 집집마다 돌려 보고 반납했는데, 방학이면 모여 비디오를 보기도 했다.

이불을 펴고 과자를 먹으며 공포영화 '링'을 보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서로서로 손 꼭 잡고 붙어 앉아 한참 집중해서 보는데 갑자기 "왁" 하면서 들어온 노아 때문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모두 깜짝 놀라서 노아를 이불속에 넣고 마구 때렸다.

그 시절 귀신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공포영화를 보고 나면 몇 날 며칠무서운 꿈을 꾸었다.

어느 날 한 집에 모여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공포영화 세 편을 봤다. 무슨 배짱으로 무서운 영화를 봤는지, 그날 가위에 눌려 잠을 못 잤다. 밤새도록 눈을 떠도 감아도 보이는 도깨비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다.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후로 귀신 나오는 영화는 보지 않았다. 



보육원에서는 피아노 기본으로 배웠다. 동네 학원에서 시작하여 봉고차를 타고 학원에 가기도 했다. 여러 곳을 다니다가 나중에는 보육원에 출, 퇴근하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보미는 여섯 살부터 여덟 살까지는 피아노를 배웠는데 손가락이 크고 길쭉길쭉해서 잘하겠다고 했지만 잘 치지는 못했다. 잘 치는 사람들은 어떻게 악보를 보며 빠르게 움직이는지 신기했다. 보미는 악보 보고 음표, 박자를 실전으로 배우는 정도였다.



국민학교 이학년부터 시설 내로 바이올린 선생님이 오셨다. 가까이서 보지 못하던 생소한 악기라서 얼마나 고급지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바이올린'

예쁘게 생긴 악기와는 달리, 예쁜 소리가 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이올린 쇄골과 어깨 사이에 끼우고 가만히 들고 서 있는 자세부터, 활을 잡는 도 어려웠다. 손에 힘을 빼고 계란을 잡은 듯이 둥글게 말아 새끼손가락을 활에 얹는 기본 모양이 말로는 쉽지만 여간 어려운  아니었다.

그리고 한 줄, 한 줄 켜야 예쁜 소리가 나는데, 손가락으로 잡는 위치마다 얼마나 많은 소리가 는지 모른다. 한 음을 켤 때, 다른 줄이 같이 소리가 나는 일이 부지기수. 무한 연습을 해야 했다. 매일이 연습을 해도 예민한 바이올린은 보미의 마음을 몰라주었다. 잘하고는 싶었는데 못하니 재미없기만 했다. 바이올린 선생님이 오시는 날은 물론이고, 매일 정해진 연습 시간도 있어서 바이올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같이 살던 언니가 바이올린의 반장이었는데, 하필 열심히 때리던 언니라서 얼마나 맞으며 했는지 모른다. 손바닥, 허벅지를 활로 맞는데 얇고 단단해서 얼마나 아팠는지... 반대로 작은 그 언니가 맞는다분명 맞다가 도망갈 거라고 하나같이 말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고아원에서 배운다는  자체가 특했는지 여기저기 불려 가 연주도 많이 했다. 시의 특별 행사들은 물론이고 교회 행사나 봉사활동이라도 가면 어김없이 연주를 했다.



양로원에 봉사활동을 하던 날도 단체로 바이올린을 켰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 손녀 같은 우리를 보면 참 좋아하셨는데, 헤어질 때면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다. 가지 말라고 어린아이처럼 우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나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모른다.

"할머니~ 또 올게요~" 

몇 번씩이나 말하고 달래도 진정이 되질 않아 무겁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국민학교 이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이학년 때까지 십 년을 배웠지만 사람이 싫어서인지 바이올린도 싫었다. 하지만 보육원 행사가 있을 때는 물론이고 교회나 시민행사가 있을 때도 단체로 바이올린을 켜야 했다.

사실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고아원에서 고급 악기를 다룬다는 자체가 특별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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