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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비 Sep 13. 2023

야생의 고아들

보미오면

° 야생의 고아들



90년대의 고아원은 야생이었다. 고아들 몇십 명 있던 이곳은 작은 사회였다. 아마 언니, 오빠들도 많이 맞고 자라이러한 행동들이 고쳐야 하는 부분임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들도 중, 고등학생들일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참 많이 맞고 자랐다.


뭐, 이유는 다양했다.

혼내다 못해 화가 나서 악다구니를 썼고, 상처 주고 싶어서 모진 말을 뱉었다.

뿐만 아니라 맞는 도구 역시 구분 없었다. 흔히 옷걸이 부터시작해서 파리채, 나뭇가지, 단소, 바이올린 활 등등...

여러 가지 도구들부터, 온몸 구석구석 맞을 곳도 다양했다.

보미는 그중에 무릎 꿇고 앉아서 맞는 허벅지 위쪽이 가장 싫었다. 아픈데 아픈 것을 흔들 수도 없고, 그대로 전율을 받으니 말이다.


중학생 에는 없이 시내에 나갔다 단소로 발바닥을 았다. 그 둔탁한 단단함의 진동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잘하던 단소가 싫어질 정도였다.



이유도 기억이 안나는 어느 날은 중고등학생인 우리를 순서대로 세워놓고 뺨을 갈기는데 때리던 언니의 손바닥이 빨개질 정도였다.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고 줄지어 쌍싸대기를 맞던 그날도 그저 일상이었다. 그 언니를 생각하면 맞은 기억밖에는 없다.


이렇게 생활같이 맞았는데 학교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때리는 뺨 몇 대 정도는 아프지도 않았다.



보미도 어릴 적부터 동생들이 말 안 듣고 잘못하면 때렸다. 그렇게 맞아왔으니까 잘못된 행동이란 걸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오 학년쯤 된 보미가 잘생긴 다섯 살 명훈이 말을 안 듣는다고 혼내고 때렸다. 그런데 문득 '아! 얘네들도 크면서 동생들을 당연하게 때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번쩍!



보미도 맞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많은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부었는데... 때리고 맞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모르고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 폭력이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잘생긴 명훈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 후에도 너무 화가 나서 못 참고 때린 적은 있지만 당연한 것처럼 때리던 습관적인 폭력은 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맞는 건 언니들이 퇴소할 때까지 계속됐지만, 그 밑에 아이들도 더 밑에 아이들도 더 이상 맞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런저런 아픈 일은 많았지만, 고아원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비일비재했던 터라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춘기가 오기 전이었고 놀 친구들도 놀 곳도 많아서 재미도 있었으니 말이다.



 보미는 어릴 부터 터프하게 놀았다.

 여자 친구들과 인형놀이도 했지만, 놀이터는 기본에 숨바꼭질, 술래잡기,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등 액티브한 것들을 좋아했다. 특히 보육원 뒷산에 올라가면 빗물길이 있었는데, 숨바꼭질을 할 때면 최고의 장소였다. 가을이면 소복이 떨어진 나뭇잎들 사이에 누워 덮어버리면 여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단점은 밟힐 수도 있다는 것. 덜덜.



이렇게 터프한 보미는 고아원 아이들끼리 만든 다섯 명의 어린이 특공대에서도 홀로 여자였다. 무슨 특별한 용무가 있었다기보다는 우리끼리 만든 강한 꼬마들? 하하.


그 쯤 보육원에 들어온 자매가 있었다.

초등학교 사 학년 다름이가 세 살 어린 여동생 나영이를 데리고 새벽에 보육원으로 온 일이 있다. 술에 취해 폭행하던 아빠 잠든 틈에 몰래 집을 나온 것이다.  오 킬로가 넘을 만큼 먼 거리였는데 밤새도록 걸어서 보육원으로 온 것이었다.

 어린 친구인데도 안전을 위해 고아원으로 올 생각을 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대단한 녀석이었다. 엄마, 아빠가 있는 자매였지만 이혼 가정이었고 부모와 살 수 없는 상황이었에 고아원에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자매가 보육원에 온 후에도 아빠는 술 먹고 찾아와서 문 열라 고성을 지르고 욕하며 딸 내놓으라 행패를 부렸다. 그래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여러 번이다.



 어느 날은 낮에 술에 취한 다름이 아빠가 찾아왔다. 실제로 경찰이 왔지만 다름, 나영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어린이 특공대가 출동했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신호를 주고받으며 자매를 숨기고 아빠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동태를 살폈다. 사실 신호라고 해봤자 거리가 멀어서 소통은 불가했지만 우리들은 상당히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영아원 옆 보일러실에 자매를 숨겨두고 여기저기 흩어졌다.



'아직 안 들어왔어'


'에스더 집 앞에 있어'


'집사님한테 막혔어'



넓은 보육원에서 다름이, 나영이 자매를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임무를 수행했다.

'우리가 너희를 지켜줄게'라는 마음으로 같이 움직이는 것도 재미있었다. 다름이, 나영이 자매도 우리가 지켜주는 것이 좋아 보였다.


고등학생 까지 다름이 아빠는 술 먹고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그때는 굳게 잠근 철문이 혹시 열릴까 무서유서 거실에 같이 모여있었다. 욕을 하고 고함지르며 물건들을 부술 때도 있었지만, 단단한 철문이라 얼마나 고맙던지 여러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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