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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먼 시앙 칸 마마 쿠더마?

by 황보람



질문하고, 답하고.

살아가는 방식 하나를 정한다면 저는 이것일 것 같습니다.

질문하고, 답해 나가는 삶.


살면서 ‘좋은 질문’이라고 느낄만한 것들은 저로서는 모두 어린이에게 들은 것들이었습니다.

15년도 더 된 한 아이의 질문이 여전히 저에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중국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절친한 친구가 베이징에서 유학 중이어서 쉽게 여행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중국의 대명절인 춘절 기간이었습니다.

나쁜 예감이 오지요.

전체 중국인이 다 이동하는 그 기간에, 한국인인 저는 왜 보따리를 싼 걸까요.

오산이었습니다.


당시 현지 여행사를 통해 여행을 함께하게 된 여행객의 90%는 한국인 유학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4명, 나머지는 타 국적자들이었습니다.

전체를 합치면 전세버스 한 대 규모였습니다.


중국 여행 중 정말 갖가지 사건사고를 경험했습니다.

저희가 타고 다니던 전세 버스의 바퀴 네 개를 간밤에 도둑맞은 적도 있고,

숙소 예약이 안 되어 있어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잔 적도 있었고요.

화장실 세면대에서 소변을 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식당에서 옆자리 사람들이 서로에 머리에 맥주병을 깨면서 싸우는데, 대부분이 태연하게 밥 먹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당시 버스 운전자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쩌쓰 쭝궈런 더 터써”

(저게 중국인의 특성이야)


주인공은 언제나 맨 나중에 등장한다던가요.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북경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벌어졌습니다.

이제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진절머리가 난 저는 얼른 북경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사 가이드가 전세 버스 한 대 분량의 여행객들에게 내민 기차표는 달랑 4장이었습니다.

4장.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단 4명.

순식간에 여행은 ‘오징어 게임’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한국인들 특성 아시죠.

단일 민족.

의리.

눈치.


다 같이 가는 게 아니면 아무도 못 가는 겁니다.

한국인들은 만장일치로 4장의 기차표를 일본인에게 주기로 협의했습니다.

일본인들은 폐를 끼치지는 않지만 손해도 보지 않더군요.

아리가또 인지 스미마센인지를 연신 외치며 그들은 캐리어를 끌고 사라졌습니다.


단일 민족은 해결책을 찾아 나섰습니다.

일단 여행사 가이드를 인질로 붙잡아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대충 ‘베이징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물색했습니다.

춘절이라 남은 기차표가 아예 없었습니다.


운 좋게도 우리들은 ‘베이징 방향’으로 가는 한 기차의 식당칸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열차 승무원에게 뒷돈을 주고 얻은 운이었습니다.

기차 안에는 명절 연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국인들로 북적였습니다.

저와 친구도 식당칸 바닥에 앉았습니다.

붙잡아 두었던 중국인 가이드는 놓아주기로 했습니다.

혹시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붙잡아두고 있다는 소문이라도 기차에 퍼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광란의 맥주병 패싸움의 트라우마도 아직 선명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두려웠던 건지 억울했던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도 같습니다.

우는 것 밖에 저 자신을 달랠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때 가까이 앉은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아마도) “타먼 시앙 칸 마마 쿠더마?“


중국 어린이가 자신의 엄마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중국어 초급자라 얼추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타먼, 저 사람들

시앙, 하고 싶다

칸, 보다

마마, 엄마

쿠, 운다


“저 사람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우는 거예요? “


살면서 우리가 울 일이 뭐 그리 많이 있을까요.

엄마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요.


아이의 말을 듣고 눈물이 멎었습니다.

그 아이도 저와 같이 식당칸 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식당칸이라도 얻어 타고 집에 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눈물이 났을까요.


무엇보다 저는 엄마가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타지에서 위기에 처했는데 엄마가 생각나지 않았던 겁니다.


더 이상 힘들 때 엄마를 찾지 않게 된다면,

어른이 다 된 걸까요?


엄마라는 건, 이런 방식으로 소멸되는 존재인 걸까요.


더 이상 선준이가 슬플 때 엄마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선준이는 무엇이 된 걸까요.

저는 선준이에게 무엇이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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