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선준이의 아래턱 가운데 앞니 하나가 빠지더니, 곧이어 옆에 이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치과에 갔더니 앞으로 몇 달 후면, 윗턱 가운데 앞니 한쌍이 빠질 거라고 했습니다.
엑스레이 사진 속에는 영구치들이 돌아오는 봄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준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가 된 것입니다.
치아를 관장하는 구강구조 시스템만큼이나 사회 시스템도 정교하게 돌아갑니다.
오늘 선준이의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가 도착했습니다.
단정한 양복을 갖춰 입으시고, 공무원증 비슷해 보이는 '통장증'을 목에 건 무악동 통장 어르신께서 취학통지서를 전해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다고 하면, 부모님도 참 설레지요."
느긋함으로 위장한 게으름으로 살아가는 예비 학부모는 '올 것이 왔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올 것이 온 건가?' 하는 이중감정에 휩싸입니다.
아직 님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요.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려면, 지금의 정신 상태로는 안됩니다.
월요일을 주말의 연장이라고 우기며 상습 결석을 하고, 갑자기 훌쩍 떠나 버리는 일도 끝입니다.
"선준이 대구 할머니댁에 놀러 가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어요."
유치원 선생님들을 자주 종종 당황시켜 드렸던 거짓 진술 같던 레퍼토리도 초등학교에선 안 통하겠지요.
엄마도 아빠도 철저한 정신 교육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문제는 이 예비 학부모들의 과거 전력을 봐서는 레퍼토리를 반복할 것 같단 말이죠.
더군다나 사주에 떡 하고 새겨진 레퍼토리입니다.
바로 '역마살'입니다.
남편 사주에는 '역마살'이 있다고 하는데,
이 역마살이란 놈이 얼마나 강하냐면, 남편은 지금까지 총 4개 국가에서 살아본 사람입니다.
그나마 가족 가운데 역마살이 가장 약한 편이어서 그나마 한국에 정착한 거라는 해석이 따라옵니다.
살면서 전학도 한번 가본 적 없는 저 조차도, 이 남자를 만나고는 2+2 전세계약 갱신을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습니다.
이제 막 내 집에 진득하게 살아보나 싶었는데 남편의 병이 또 도졌습니다.
"우리 강릉 가서 살자"
7월에 우연히 속초로 휴가를 갔는데, 강릉에 들렀다가 그 매력에 퐁당 빠져버렸습니다.
급기야 한 달 뒤 시부모님은 대구에서 강릉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시부모님은 30년 전 미얀마에서 들여와 창고에 맡겨놓은 짐들을 이제야 풀었습니다.
이 가족이 얼마나 많이 이사를 다녔는지 상상도 안될 정도입니다.
결국, 저희 세 식구도 내년 2월 강릉으로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40년 동안 서울 사대문 안에서만 살아온 저로서는 엄청난 모험입니다.
사실 역마살 없는 제가 '강릉 이사'를 결정한 데에는 선준이 입학이 큰 기준이 되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선준이는 '덕수초등학교' 내지는 (붙으면)'경기초등학교'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경기초등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명문 사립초등학교입니다.
수십 년 전에는 전현직 대통령의 손주들이 다녔고, 몇 년 전까지도 대기업 3세들이 다니기도 했습니다.
제가 졸업한 덕수초등학교도 어느새 꽤 잘 나가는 학교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좋은 학교들이 근처에 있으니 부모로서는 고려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계획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제가 경기초등학교 학생들의 '반장선거' 과외를 하면서였습니다.
부잣집 아이들은 정말 별 걸 다 과외를 받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분야에 1타 강사인 건 사실입니다.
<리더십 스피치>라는 정치 컨설팅 책을 번역하기도 했고, 대통령 후보의 메시지를 담당한 경력도 있습니다.
여하튼 대한민국에서 '반장선거' 과외를 할만한 사람 중에는 고급 인력이라 할만합니다.
정리하자면, '경기초' 정도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런 이력의 사람에게 '반장선거' 과외를 받는다는 겁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경기초 한 반에 학생이 24명인데, 18명이 출마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치열하고 살벌한 경쟁 현장입니다.
다행히도 제가 지도한 두 학생은 각각 반장, 부반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엄마를 뒀으니, 우리 선준이는 반장 선거에 나가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겠지요?
예측하시다시피 선준이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유치원에서 하는 모의 반장선거에도 나가기 싫다고 해서 고급인력인 엄마를 무가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아이는 경기초 같은 곳에 가면 꼴등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초등학생 박선준을 잘 키워줄 건, 1타 강사가 아니라 개구리와 아기 복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저렇게 결국 선준이는 강릉에서 초딩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가히 역마살의 승리입니다.
저희는 곧, 강릉으로 갑니다.
박선준을 키운 건 팔 할이 강릉 바다였다... 고
언젠가 쓰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