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맞거나 다 틀리거나
선준이가 받아쓰기에서 50점을 맞아왔을 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주에 40점이 되었을 때에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또 그다음 주에는 0점이길래 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20점을 받아오자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딱 두 문제를 맞아왔는데, 그것마저도 옆 친구 거를 베낀 거라는 게 들통났거든요.
누가 한글을 알아서 뗀다고 했나요.
책을 곧잘 읽기에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한글을 늦게 가르치자는 주의였습니다.
기자 시절 만났던 신의진 전 의원에게 받은 영향이 컸습니다.
신 전 의원은 소아정신과 의사 출신이었는데, 자신이 두 아이를 키워보니 확실히 한글을 늦게 가르치는 것이 창의력에 도움이 되더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한글을 일찍 배우면 세상을 '글자'로 변환하는데 능통해집니다.
파란색 버스가 지나가면,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은 '파란색 버스'라고 말하거나 '버스가 크다'라고 하거나 나름의 인식대로 사물을 읽는데, 한글을 뗀 아이들은 '620번 버스'라고 퉁쳐버린다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창의성'이라고 굳게 믿는 저는, 선준이도 일부러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정도로만 해도 괜찮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연일 받아쓰기를 바닥 수준으로 치러오니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걱정이 한층 심각해진 건 유치원 '참관수업'에서였습니다.
유치원이 '참관수업'을 마련한 의도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 학부모들을 '정신 무장' 시키고,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자랑'도 할 요량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당에 모인 학부모들을 앞에 두고 부원장님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부원장님은 세 아이의 아빠로, 우리 동네에서 제일가는, 아니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사립 초등학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부원장님의 아이들이 그 학교를 다니는데, 1학년에 입학한 둘째가 한 학기 동안 본시험이라며 보여준 시험지 더미가 한 다발이었습니다.
한글이나 수학은 유치원에서 배우는 수준으로 커버가 될지 모르겠지만, 영어는 어림도 없더라는 이야기.
사립초 아이들의 수준과 그 아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 유치원 아이들의 현실.
스카이를 넘어 자녀를 하버드, 스탠퍼드로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마음가짐이 핵심 소재였습니다.
저는 애초에 '경쟁'이라는 건 과거의 유산으로 전락했다고 평가절하했기에 그런 이야기들에 그다지 동요되지는 않았습니다.
제 마음을 뒤흔든 건 실제 수업 참관 때였습니다.
'문해력'이라는 문제집을 두고 담임 선생님이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본문 하나에 문제 두 개가 달려있는 전형적인 형태였는데, 선준이를 보니 거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글자에 밑줄을 그어나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퍽 심란해졌습니다.
옆 친구 눈치를 보며 친구가 문제집을 넘기면 따라 넘기고, 동그라미를 치면 따라 치는 수준이었습니다.
"선준아, 친구를 보지 말고 선생님 말씀을 들어야지."
받아쓰기에서 100점을 맞기를 기대한 적은 없었지만, 수업 태도만큼은 모범적이기를 바랐는데...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모범적이기는 영 어렵다는 사실을 저는 몰랐습니다.
수업시간에 모범적인 건 우등생들의 이야기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공교육 신봉자입니다.
학교 수업만 잘 들어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가 수업을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걸 보니 내 생각이 다 틀렸나 싶었습니다.
'나만큼은 거뜬히 하겠지' 했던 믿음은 사실 근거 없는 기대감일 뿐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받아쓰기 특훈이 시작됐습니다.
0점이라는 성적표는 '창의력'을 핑계로 아이의 학습을 '지연'시킨 엄마의 성적표였으니까요.
다음 주 받아쓰기에서는 반드시 만회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폴짝폴짝/응애응애/뒤뚱뒤뚱/꿀꿀
쉽진 않았습니다.
선준이는 바짝 긴장해서 '엄마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글자를 쓰고 또 썼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반복했고, 이 정도면 됐다 싶었습니다.
내심 성적도 기대되었습니다.
이만큼 하고도 점수가 안 나오면, 이젠 창의성이고 뭐고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니까요.
다시 돌아온 받아쓰기 날, 유치원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은 심히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어머니 선준이가 오늘 받아쓰기를 다 맞았어요."
저에겐 이 말이 이렇게 들렸습니다.
"어머니, 애를 얼마나 잡으셨길래 0점 맞던 애가 100점을 맞았을까요...."
선생님은 저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는 점, 선준이가 많이 성장했다는 점 등을 들어 아이 학습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아마 엄마가 애를 너무 잡을까 봐 걱정이 되셨던 것 같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늦게 시작해도, 조금만 더 크면 폴짝폴짝/응애응애/꿀꿀 정도는 못 쓸 리가 없다는 것을요.
그런데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상이 모두 자기 아이를 의대를 보내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나 혼자 도도하게 그들을 비웃으면서 내 아이를 실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다음 주 받아쓰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준이는 또 100점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아깝게 하나를 틀려서 90점을 받아왔습니다.
90점을 받은 날, 선준이는 집에 오자마자 가방에서 받아쓰기 공책을 꺼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침 등원 길에 손가락으로 괜찮아/반가워/친하게 지내자 를 세 번씩 반복하며 노력한 결과니까요.
"받아쓰기 또 하고 싶다"
아이 입에서 결국 이런 말까지 나왔습니다.
아이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저의 '창의력' 실험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100점을 맞을 수 있는 아이를 0점으로 키운 도도한 엄마의 최후입니다.
선준이를 키우면서 저 자신에게 계속 당부한 한 가지는 '프로그래밍하지 말자'였습니다.
아무 걸림도, 편견도 없이 태어난 아이에게 이렇게 커라 저렇게 커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되도록이면 아이가 순진무구를 지켜갈 수 있도록 본연대로 놔두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매우 위험한 실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받아쓰기 공책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나 혼자 잘난 척하면서 내 아이에게 '세상의 반대'를 주입시키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라고요.
솔직히 가장 부끄러웠던 건, 엄마는 글쓰기로 먹고살면서 내 아이 받아쓰기 하나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못한 한심함이었습니다.
'수행으로서의 육아'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어놓고 글을 쓰면서, 내 아이의 공책 하나 제대로 안 펴본 지난날이 참회됩니다.
사실 아이 성적에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유치원 생활에 관심을 안 두었던 것이었으니까요.
선준이의 유년기도 이제 곧 끝납니다.
어엿한 어린이가 될 수 있도록 엄마도 조금 더 성숙해질 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