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날짜를 잡다.
병원을 고르는 것부터가 난제였다. 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으니 접근성이 좋아야 했고, 원하는 날짜에 수술을 받아야 했기에 대기자가 많은 병원은 피해야 했다. 주변에서는 여러 군데의 병원을 알아보고 유명한 교수님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 주었지만, 내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24년 상반기까지 매듭지어야 할 일들이 연달아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요구조건과 한계가 많으니 되려 정답이 단순해졌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제외를 거듭하다 보니 남게 된 하나의 선택지였다.
접수를 마치고 혈압과 키 그리고 체중을 쟀다. 보드판에 끼워진 조사지에 그간의 병력과 복용약 유무, 월경 주기를 적어 제출했다. 이윽고 내 이름이 불렸고, 또 한차례의 초음파 검사를 한 뒤에야 담당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여기 보이는 게 혹이고요. 옆에 보이는 게 자궁인데, 사이즈가 커서 수술을 하셔야 할 것 같네요"
"네..."
"난소 혹은 여성호르몬 때문에 생기는 거라 수술을 해도 또 생길 수 있어요. 폐경이 올 때까지는 우리가 생리를 계속하잖아요? 그러면 여성호르몬도 계속해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수술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부인과 검진받으시면서 관리를 하셔야 되세요."
"네에..."
"그럼, 수술 일정은 언제로 잡아드릴까요?"
"넉 달 이후에야 가능할 것 같은데요."
"예에? 빨리 하셔야 되는데? 혹이 터질 수도 있어요. “
"그건 아는데, 제가 시간이 없어가지구..."
"음......."
"수술비는 얼마나... 나올까요?"
"비용은 구백에서 천 정도 생각하셔야 되세요"
"(ㅇ0ㅇ;;) 천만 원이요...?"
"로봇 복강경 수술은 비급여 항목이라 그 정도 나오거든요. 실비 보험 있으시죠?"
"네."
"혹시 모르니까 미리 보험사에 알아보시고, 수술일정 잡아드릴게요."
세상에 천만 원이라고? 크게 잡아 500 정도 생각했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천만 원'이라는 비용도 '수술비'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입원비와 각종 약물값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 말인즉슨 2월 만기인 적금의 전부를 수술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 모처럼 해외여행을 한번 다녀올까 했는데...
그러나 접수처에 앉아있던 직원이 서류뭉치를 펼치며, 다빈치 로봇 복강경 안내사항, 수술일정, 수술 전 검사, 검사결과 일정, 기저질환 확인, 입원 시 필요물품 목록,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신청, 코로나 검사 확인 등등을 빠른 목소리로 읊어대는 통에 돈걱정은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대신에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는 무게감이 그 자리를 꿰찼다. 듣기만 해도 피곤한 대가 없는 노동, 에너지의 소모, 하지만 중요도는 높은.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다. 평소 같았으면 무감히 넘겼을 아랫배 통증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에 감기에 걸렸으며, 간간히 체기 증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을 했고, 점심을 먹었으며, 퇴근을 하고 잠을 잤다. 당시에는 앓다 죽겠다며 곡소리를 냈지만, 지나고 나니 이 또한 잊혀진 감정이 됐다.
수술 전 검사는 채혈, 소변, 심전도, 흉부+복부 엑스레이, MRI 순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자정부터 금식을 해야 했다. 꽤나 많은 양의 피를 뽑아야 한다는 것과 MRI검사 전에 맞는 주사가 엄청 아프다는 것 외에 크게 어려운 건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정신없이 흘러가고, 하라는 대로 하다 보면 어느새 끝나있는 그런 일이랄까.
대학병원엔 외상 환자들이 많았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거나 수액이 달린 거치대를 둘둘 끌고 다니는 환자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멀쩡한 얼굴로 앉아 내 뱃속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혹에 대해 생각했다. 이것이 방치와 외면의 결과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자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비정상적인 성장, 음지에서 자생하는 무엇. 끝내 제거되는 것으로 끝나는 엔딩. 혹은 다시 부활하여 2탄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지도 모른다.
담당의사의 말처럼 폐경이 되어야 끝나는 싸움이 될 테니까.
수술은 구정을 지나 받을 예정이다. 구정 전까지 쉼없이 내달려야 하지만 또 어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오늘의 내가 그랬듯, 내일의 내가 또 하루를 살아낼 것이라는 믿음 내지는 미래의 걱정은 그때 가서 하자는 미룸을 격려하는 중이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