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준비, 도돌이표.
제법 기온이 떨어졌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에 후리스를 꺼내고,
뜨거운 커피를 우렸다.
분쇄된 원두향이 방 안에 번지자, 금세 아늑해졌다.
10월, 11월, 12월
벌써 4분기가 시작됐고,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음이 실감 났다.
9개월간 무얼 했나.
항상 바쁘게 보낸 것 같은데도
되돌아보면 남는 게 없는 것이.
왠지 모를 헛헛함만, 진하게 찾아오는 탓에
늘 이맘때쯤이면 월동준비를 떠올리게 된다.
올해는 이불을 샀다.
차렵이불이 아닌 도톰한 극세사로.
폭닥하게 덮을 벨벳 무늬로.
이렇게 다가오는 겨울을 미리 대비해야,
오들오들 떨거나 괜시리 시려운 하루를 피할 수 있다.
날씨든, 상황이든
춥다는 것은,
꽤나 서러운 일이니까 말이다.
이너를 갖춰 입고,
보습크림을 듬뿍 바르며,
보온병에 뜨거운 차를 담는 일련의 행위가
자존을 보호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어릴 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땐, 겨울이니까 추운 게 당연하다고 여겼고,
딱딱 부딪히는 이빨을 꽉 깨물며, 버텼다.
그리고 이 이상한 습관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나를 함부로 대하는 타인도 참아내고,
내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묘한 상황도
견뎌내는데 집중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타깝고, 안쓰러운 아이였다.
책임감이 과하도록 투철했고,
스스로에게 무지할 정도로 무심했다.
따뜻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어야지.
무례한 사람과 거리를 뒀었어야지.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했었어야지.
왜 추운 데서 떨고 앉았냐?
20년 12월의 일기 中
헌 이불을 버리고,
새 이불을 펼치며,
다가오는 겨울을 잘 지나보기로 결심했다.
특히, 올해는 많이 추울 예정이라고 하니,
찬바람으로부터
건조해지지 않도록 (몸이든, 마음이든)
(그래서) 바스러지지 않도록
건강하게, 무탈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