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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Nov 20. 2023

읽고 쓰는 것에 대한 강박증

박진권




    나는 읽고 쓰는 것이 당연한 삶을 다. 그렇지만 아직도 쓰는 게 두렵고, 읽는 게 귀찮기도 하다. 몇백 권의 책을 읽고 몇백 개의 글을 썼지만 내가 왜 읽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쓰지는 잘 모른다. 사실 나는 읽고 쓰는 것을 분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덩그러니 책만 쥐고 읽을 수가 없다. 책이 있으면 노트북이 있어야 하고 또 독서대가 있어야만 읽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노트북에 옮겨 적은 후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간다. 그래야만 책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대충 읽는 것 같고, 대충  바에 아예 읽지 않는 것을 택한다. 때문에 나는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독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중·고등학생때와 갓 성인이 됐을 무렵엔 인용문과 서평을 쓰지 않으면서 독서를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지속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졌고, 활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단어가 왜 그 단이이고, 왜 그렇게 발음해야 하는지 어째서 그러한 뜻이 되는지 이해를 못 해서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혼란의 뜻이 왜 뒤죽박죽 되고 질서가 없다는 뜻인지, 그것을 어째서 혼란이라고 명명하는지 근본적인 것에 의문이 생기니 독서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계속해서 같은 장, 같은 줄을 읽어댔고,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단 한 장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한동안 책을 내려놓았다.


    역시나 환경의 탓일까. 신기하게도 군대에 입대하게 되니 다시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무려 일 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난 후 상병이 되었을 때 나는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쥔 책에 서평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그저 읽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웠고, 읽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즐거웠다. 나는 마치 처음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신나 있었다. 그렇게 남은 9개월 동안 대략 백 권 정도의 책을 읽어냈다.


    전역한 후 다시금 그냥 책만 읽을 수가 없었다. 모든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일까, 나는 다시금 컴퓨터 앞에 앉아 읽고 쓰는 것을 동시에 해야만 했다.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은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인생에서 타인이 가장 부러웠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독서가들이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그냥 책 한 권을 들고서 읽고 있는 장면의 순간이 가장 부러웠다. 인용문도, 요약도, 서평도 쓰지 않고 그저 읽기만 하는 능력이 세상에서 제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전역 당시에는 쓰는 것에 더욱 중점을 두었고, 읽는 것은 되도록 짧게 해결했다. 짧고 굵게 읽어야 했기 때문에 주로 고전 단편 문학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런 단편선은 빠르게 읽히는 대신에, 이해는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유하며 쓰는 것에 더 높은 비중을 둘 수 있었기에 한동안은 고전 문학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읽는 것에 차별을 두었다. 많이 읽는 사람은 얕게 읽는 사람이고, 그것은 잘못된 독서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빠르게 읽고, 많이 읽는 사람은 잘못된 독서를 하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나의 뇌에서는 이미 명제가 되어 있었다. 이후로 어떤 반박도 들리지 않았고, 많이 읽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조금의 다양성도 인정해 줄 수 없는 정신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읽고 쓰는 것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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