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만에 독서 모임을 나갔다. 토요일에 나간 모임에서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얼굴들이 있어 반가웠다. 여유롭고 유익한 시간이었고, 괜찮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나간 모임은 내가 왜 이 모임을 잘 나오지 않게 됐는지 상기하게 됐다. 앞에 앉은 사람은 말이 너무도 많았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마치 조금의 오차도 없는 듯 말이다. 자기가 가지고 온 책이 아니더라도 쉼 없이 떠들었다. 문학부터 운동 그리고 미술사와 어떤 이즘에 대해서 말이다. 보통은 책 내용을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질문으로 넘어가는데, 더 이상 말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상대방은 목소리가 너무도 컸고, 심지어 틀린 정보까지 두 번이나 반복하며 본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했다. 내가 한참 야구를 할 때 대한민국의 야구부는 40개 남짓이었다. 반면 일본의 야구부는 4,000개가 넘었고, 대략 100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정보를 감독님께 들었다. 그러나 앞에 있는 사람은 정확히 2,000개라고 정정하며 나의 말을 가로채고 본인이 하고 싶은 헛소리를 내뱉었다. 2023년 기준 한국 야구부는 90개가 넘었고, 일본은 여전히 대략 4,000개 정도였다. 이 사실이 명확해지자 그가 한 길고 지루한 말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정보의 나열 속에서 대체 몇 할의 정보가 진실일지 궁금했다.
대화는 상대방과 나의 합이 맞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나와 맞을 순 없지만, 대화의 예절은 얼추 맞출 수 있다. 오랫동안 나간 모임에서 불편한 사람이 없지 않았다. 심지어 불쾌한 운영진이 하는 모임에도 나가서 정상적으로 대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벅찼다. 매장 직원보다 더 큰 목소리로 끝이 없는 것처럼 떠드는 상황에서 공황장애가 도질 뻔했을 정도다. 오죽하면 대화 도중에 일어나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열두 번도 더 했다. 전날과는 다르게 상당히 불쾌한 하루를 맞이했다.
예기치 못한 일은 항상 나타난다. 그것이 불특정 인원을 만나는 모임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이런 일들을 조금 더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불쾌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모임 자체를 회피하기보다는 그 이름이 있는 곳은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모임 참석 자체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운영진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귀중한 시간을 불특정한 사람 때문에 망치는 것은 아쉽긴 하다. 무려 3시간을 투자하는데, 불쾌한 감정이 샘솟은 상태로 오후를 맞이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