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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Jul 04. 2024

덤덤한 무상함

평범한 하루



  

    열여덟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후 2년 내 큰외삼촌, 외할머니, 친할머니가 영면에 들었다. 그때 나는 나를 보았다. 한적한 오후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넓은 공터에서 서울을 가늠했다. 시선을 넓혀 한국 전체를 떠올렸고, 이내 지도 속 세계를 조망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와 방에 있는 지구본을 의미 없이 툭 하고 돌린 후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파란 지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지구를 감싸고 있는 우주에 집중했다. 그렇게 다시금 나는 나를 보았다. 예견된 무상함이 찾아왔다. 그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해야만 하는 것을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죽을지, 어떤 죽음이 덧없지 않을지를 고민했다. 세상은 말했다. 남들처럼 살고, 튀지 않는 삶을 선망해야 한다고.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은 인생을 어렵게 살지 말라는 조언이라고 설명했다. 성공하는 사람은 늘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고 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똑같이 살라고, 다르면 안 된다고 기겁하며 방해한다.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거라며 못된 소리를 늘어놨다. 물론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 인간은 타인의 시선에서 그들의 목소리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어려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소수의 사람이 걷는 길을 걸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하다는 건 아니다.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힘들었다. 고통스럽고, 포기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만큼 행복하기도 하다. 수축과 이완이 반복된 근육은 찢어지기 마련이다. 이후 회복하며 더 질 좋은 근육으로 변모한다. 나 또한 그렇다. 아픔을 이겨내며 좀 더 단단해진다. 참을 수 없었던 고통이, 그 통증이 점차 옅어졌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닌 일상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그렇다.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있지 않으면, 대부분의 하루는 행복했던 것이다. 인생에 무상함을 느끼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귀를 기울였기에 가능한 생각이다. 남들과 똑같이, 그들과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살았다면 나는 외로움에 진작 저승으로 향했을 것이다. 욕을 먹어도 덤덤하게, 중상모략에도 꿋꿋하게 버텨낸다. 나에게 무상함은 오히려 원동력이다.     

    남들보다 못해도 된다. 오마카세를 평생 먹지 못한다고 박탈감을 느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도 다 못 돌았으면서 해외로 나가지 못했다는 게 분통할 필요도 없다. '남들과 똑같이, 그들보다 더'이 생각이 사람을 좀먹는다. 나는 나고, 타자는 타자이다. 쓸모없는 물질에서, 행위에서, 시선에서 벗어나야 무던한 일상이 나타난다. 그 일상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행복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과 같은 것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그 길에도 충분히 괜찮은 일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비교하고, 험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행복도 만족감도 아니다. 남을 욕하며 어떤 것을 채우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삼삼오오 모여 누군가를 깔보고, 흉보는 것은 저열하고 덜떨어진 거다.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는 사람은 타인을 괴롭히기 위해 험담하지 않는다. 말이 새어 나가지 않는 가족과 한탄의 토로를 하는 것은 괜찮다. 사내와 동호회 그리고 모임에서 누군가를 몰아내기 위해 악의적인 내용을 편집해 퍼트리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것에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 괴물이 된다. 한 번 괴물이 된 인간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그 맛은 마약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기 전에 인지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런 행위는 개인의 행복에 아무런 연관도 없다. 험담의 무상함을 하루라도 빨리 알아채야 한다. 자신이 누군가를 욕할 때 쏟아내는 음성은 전부 스스로에게 되돌아간다. 그것은 없는 것으로 만들 수도, 씻을 수도 없다.     

나와 가족, 소중한 몇몇을 제외하면 덧없다. 모든 게 덧없다. 참으로 무상하다. 그럼에도 괜찮은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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