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권 Aug 08. 2024

얽히고설킨 사랑은 밤하늘에 걸친 희미한 달이다

애가


얽히고설킨 사랑은

밤하늘에 걸친 희미한 달이다


복잡한 사랑은 사람을 구차하게 만든다. 

비루해진 사람은 온갖 추태를 부리고, 

그곳을 벗어나고자 타인을 구렁텅이로 끌어들인다. 

결국 남는 것은, 비루한 사람과 비참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또한 사랑일 수도 있다. 

보편성이 옅은 정분이다. 

어딘가 맞물리지 않는 애정이다. 

틀어지고 뒤틀렸지만 사랑이다.


서평가 박진권, 제호 《애가》, 저자 박경리, 출판 다산북스




잊어야 하는 계절

시기를 놓친 인연은 붙잡지 않는 게 좋다. 과거의 내가 사랑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조차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다르다. 아무리 그리워하고, 애태워도 만날 필요조차 없는 끝난 인연이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할수록 다가오는 소중한 인연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은들 이물질이 둥둥 떠 있을 게 뻔하다. 깨진 그릇 또한 붙여서 사용할 수 없다. 새로운 물을 따를 수 없을 만큼 여유가 없고, 새 그릇을 살 형편이 안 된다면,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 내 슬픔을 삭히고자 남의 품을 빌려서는 안 된다. 빌린 품에 정을 내주기 어렵다면 더더욱 멀리해야 한다. 그게 인류애고, 그것이 존중이다. 아무리 자신을 우선한다고 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박경리 작가의 소설 애가 속 주인공 민호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형태다. 자신의 상처를 달래고자, 타인을 농락한다. 자신의 아이까지 잊을 정도로 불륜에 몰입한다. 사람이라면, 어른이라면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염원했고, 고대했다손 치더라도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소리다. 눈앞에 존재하는 자식마저 내버릴 정도로 자신을 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집착이고, 어쩌면 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리 찬란한 기억이라고 해도 평소에는 잊고 지낸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나간 좋은 계절은 가끔 떠올리며 잊고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명확하게 존재하는 사랑

나를 보지 않는 사람에게 맹목적인 애정을 느끼는 것은 집착이다. 고백이라는 도전도 없이, 상대를 잃을 걱정에 숨어서 마음에만 담아두는 것은 짝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짝‘사랑’이 아닌 비겁자의 음흉한 뒤틀림이다. 혼자만 좋아하고, 상대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연정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남자 또는 여자 사람 친구로 위장한 파렴치한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좋아한다면 고백하고, 그 마음을 키워 사랑으로 발전하려 노력해야 한다.


반면 연애 자체는 힘들지 않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연애를 잘하는 것과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사귀는 것에 도달하는 게 쉽지만 자주 헤어지는 사람에게 연애를 잘한다고 볼 수 없다. 연애를 지속하고, 오랫동안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사람이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지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상대방을 쉽게 잊거나 욕하기 바쁜 이유는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여도 괜찮은 사람을 치장에 사용한 것이지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사랑 자체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이란 모두 허상이고, 가족애를 타인에게 느낄 수 없다고 설파한다. 그들은 사랑에 목숨 걸고, 사랑에 집착하는 것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스스로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타인을 낮잡아 보는 부류다. 사랑은 받아 본 사람만 나눌 수 있다. 따뜻한 가정에서 온화한 보살핌을 받은 사람은 굳이 따로 알려줄 필요도 없이 사랑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사랑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하지 못해도, 행동하는 것에 제약 없다. 거침없는 움직임에도 배려가 있고, 상대방과의 대화가 원활하다. 물론 후천적으로 배울 수도 있지만, 평화로운 가정이 선행된 사람의 자연스러움과는 궤를 달리한다. 사랑을 모르겠다고 떠드는 사람조차 따뜻한 사람을 만나 그럭저럭 괜찮은 시간을 보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릴 수는 있지만, 그 정의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사랑은 계속해서 느끼고 해봐야 한다. 가족의 사랑, 연인의 사랑, 타인의 사랑을 말이다.


“미친 소리 말어! 니 여편네는 죽었어. 설희는 죽었단 말이야.” 

“천만에, 천만에, 영원히 살아 있어요. 우주가 있고, 저 별이 있고, 내 목숨이 있는 한에 있어선…….” 

상화는 하늘을 보고 연방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 지껄인다. 

“설희도, 내 생명도, 그리고 이 우주의 신비도 전부 집어넣은 내 예술이, 내 딸이 나와요!” 

민호는 상화의 주정하는 고함 소리를 어슴푸레 들으며, 땅 위에 주저앉았다. -애가, 박경리.






이전 02화 아는 게 힘이고 모르는 건 무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