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서평가 박진권 제호 은하수 저자 박경리 출판 다산책방
불행은 언제나 한꺼번에 몰려온다
전쟁 때문에 아버지가 북에서 실종되고, 어머니와 경수 그리고 선영까지 세 식구는 서울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그러나 벌이 없는 서울살이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어머니는 집을 팔고 오빠가 있는 시골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보러오는 사람이 없어 좀처럼 팔리지 않는다. 더해서 깡패 같은 사기꾼이 나타나 집을 헐값에 팔라며 협박까지 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집을 넘기고 시골로 내려온 어머니의 눈앞은 캄캄하다. 서울에서 집을 판 돈으로 시골에서 집을 구하면 조금이라도 남을 줄 알았던 돈이 동나버린 것 때문이다. 그나마도 여학교의 선생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조금의 숨이 터지나 했지만, 그만 사건이 터진다. 술김에 다툰 오빠는 과실치상으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린 아들 경수가 바다에 놀러 갔다가 바위에서 넘어져 뇌수술을 받고 시력을 잃는다. 심지어 어머니까지 앓고 있던 폐결핵으로 자리에 눕게 된다.
그럼에도 마음씨 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선영은 초등학생 같지 않게 의젓하다. 미취학 아동인 남동생 경수를 살뜰히 보살핀다. 어머니 표정만 보고도 그 의중을 간파한다. 동생 경수가 슬퍼할까, 어머니가 마음 쓸지 헤아리는 그 생각은 어린아이에게서 나오기 어려운 깊이다. 어른도 희망을 놓을 법한 상황에서도 선영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나쁜 마음을 물리치고, 선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바꾼다. 자신도 힘든 상황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루만진다. 그렇게 변화가 나타나 어머니와 아이들을 돕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난다. 그 선행들이 모여 어머니도 병상을 털고 일어나고, 경수 또한 다시금 앞을 볼 수 있게 된다.
어릴 적 나와 누나는 항상 집에 단둘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는 집 일부분이 컨테이너로 형성되어 있었다. 14살이 될 무렵 검은 정장에 태산처럼 큰 사내들이 집 안 가구와 장식에 빨간색 딱지를 덕지덕지 붙였다. 26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거실이 있는 집에서 살 수 없었다. 그즈음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주 싸우셨고, 나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시절이 퍽 행복했다. 아버지 차를 타고 강원도와 제부도 그리고 대부도까지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딘지도 모를 계곡에서 걱정 없이 놀기에 바빴다. 중학생 땐 아버지가 아이처럼 이소룡에 대해서 열을 띄며 설명해 줄 땐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괜히 누워서 발과 팔을 허우적대며 그 행복을 만끽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만 16세 4월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차츰 올라가던 집의 가세는 다시금 곤두박질쳤고, 아버지가 남긴 빚이라는 늪에 우리 가족은 점점 빨려 들어갔다. 나와 누나는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빚은 사라지지 않았고, 군대 때문에 21달간 벌이를 중단한 나 때문에 집의 빚은 더욱 늘어만 갔다. 그렇게 좋아하는 그림도, 글도, 운동도 모두 포기하고 세상에 반감을 표출하며 정신없이 살았다. 내가 방황할 때도 누나는 묵묵히 일만 했다. 겨우 한 살 차이였지만, 속의 깊이는 부모와 자식 정도의 격차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어머니와 누나의 시선을 외면하고, 더욱 밖으로 돌았다.
도망치다시피 간 군대 훈련소에서 통장을 만들었다. 군인 월급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조교였는지, 다른 사람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누군가 청약 상품을 소개해 줬다. 월 2만 원 ~ 20만 원까지 넣을 수 있는 청약이었다. 나는 군대에서 매달 10만 원씩 청약을 넣고 전역했다. 사회에서도 그 청약은 깨지 않고 약 9달 정도 더 돈을 넣은 결과 내가 22살이 될 무렵 우리 가족에게도 거실이 있는 집이 생겼다. 그때쯤 누나 뱃속에 천사가 찾아왔고, 나는 첫 조카를 보게 됐다. 더불어 급여가 괜찮은 직장에 취업도 하면서 점점 나쁘지 않은 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흐르고 누나는 자녀가 셋으로 늘었고, 30평대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다. 나 또한 포기했던 일로 이직하게 되었다. 중간에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잘 풀릴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세상을 원망한들 내 앞길이 꽃밭으로 변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선영의 마음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낸다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나타날 거라고 믿었다. 우리 가족은 항상 평탄하진 않지만, 다 버텨낼 수 있는 삶으로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은하수가 어딨어?” “하늘나라에 있어.” “정말 뱃놀이하나?” “그럼, 하늘나라 선녀들이 뱃놀이하지.” “우리도 그런 데 가서 뱃놀이했음 좋겠다. 그지 누나?” “우리가 다 착한 마음으로 죽어 천당 가면 은하수에서 뱃놀이할 수 있지.” “얘들이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니? 그런 말 하면 못쓴다.” 어머니는 별안간 몹시 화난 목소리로 꾸중을 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연이가 깜짝 놀라서 눈을 뜬다. “얘들아, 그런 소리 하면 못쓴다아. 은하수라는 건 말이야, 별이 많이 모인 하늘의 모양이 마치 강처럼 흘러가는 듯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은하수라고 이름 지은 거야. 알았니? 죽으면 간다는 그런 얘기 하지 마아, 응?” “그래두 칠월 칠석날에는 까치들이 와서 은하수에다 다리를 놓아 주고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한다면서요? 아주머니.” 연이가 눈을 비비며 말을 한다. “그것두 사람들이 만들어 낸 전설이지. 실제로 그런 건 아니야.” 어머니는 부채로 날아드는 개똥벌레를 쫓으며 말한다. - 은하수, 박경리.
어머니, 우리는 지금 참 행복해요. 다만 어머니만 빨리 병이 나으셔서 돌아오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에는 밤마다 즐거운 꿈을 꾸지요. 우리들이 모두 함께 모여서 행복하게 사는 꿈이에요. 저는 반드시 이 꿈이 실현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 우린 이제 외롭지 않아요. 오늘은 외숙모님이 경수의 예쁜 옷을 만들어 오셨어요. 경수는 요즘 하모니카를 아주 멋지게 불지요. 참 그리고 외숙모님하고 미옥이는 이사를 했어요. 먼저 집만큼은 못해도 아주 예쁘장한 집이지요. 국화랑 백일홍이 많이 핀 뜰이 참 아름다워요. -은하수, 박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