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삶, 그리고 사랑
2024년, 독서 모임을 제외하고는 지인을 단 한 명도 만나지 않았다. 친구도 예외는 아니다. 딱히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타인과 만나 의미 없이 시간을 소모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 것뿐이다. 선호의 반대가 반드시 불호가 되지는 않는다. 불호의 반대가 호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호와 불호 가운데 무념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마저 흑백으로 나뉘어서는 안 된다.
글 박진권
인류애가 부족하다고 사랑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지인이 많지 않다고 해서, 사람을 싫어할 거라는 오해는 너무 1차원적이다. 세상은 결국 타인과 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연옥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삶이 망가지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을 친구로 만든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것처럼, 주변에 지인이 적다고 실패가 확실시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흑백논리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심지어 LGBTQ의 색은 무지개다. 디자이너들이 보는 색상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런 면에서 나는 세상을 디자이너처럼 살아가고 있다.
가끔 흑의 진영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가, 다리가 저리면 일어나서 회색 진영을 어슬렁거린다. 눈이 침침해 백색으로 향할 때도 있고, 심심한 마음을 달래고자 무지개를 찾을 수도 있다. 이곳은 혼란스럽고, 정립되지 않은 연옥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천국과 지옥은 절대로 아니다. 때문에, 흑과 백으로만 나뉠 수는 없다. 사실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나, 평생 혼자일 생각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유영하듯 살아갈 것이다. 단란한 가족과 친구 소수면 충분하다. 오히려 차고도 넘친다. 간혹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서 떠들 때가 있다. 그들의 말엔 조사도 연구도 없지만, 존중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겉핥기지만 그것 또한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사실이 아니니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알고, 내 주변도 알고 있다.
사람들은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자는 사회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종종 말한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밤에 본디 숲속을 거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산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략) “이때부터 우리는 사회와 작별하고 고립의 길을 갔다. 고독 속에 사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