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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낯설었기 때문이다. 한 살 많은 누나와 같이 수업을 받아야만 할 정도로 낯을 많이 가렸다. 선생님에게 화장실 간다고 거짓말하고, 누나가 있는 반 문 앞에서 누나를 외치며 꺼이꺼이 울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원장님은 어쩔 수 없이 이례적으로 누나와 수업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누나와 같이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7살이 되던 해 누나는 머나먼 초등학교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도저히 혼자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매일 고민과 심려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누나의 진학 문제로 우리집은 항동 근처의 오류동으로 이사 갔다. 항동에는 초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동네도 떠나야 하고, 수업도 혼자 받아야 했다.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유치원에 내리면 오롯이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어릴 때부터 숫기가 없어 명확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전무였다. 완전하게 고립된 기분이었다. 한 달이 넘게 어색하고 불편한 기색을 비치며 트럭에 올랐다. 아버지는 나를 빤히 보고는 말도 없이 무표정으로 운전에 집중했다. 매일 지나치던 슈퍼 앞에 정차한 후 아버지는 신속하게 벨트를 풀고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입구에서 아버지가 나오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곰보빵과 흰 우유를 들고 나타났다.
평소 아버지는 유치원 앞에 나를 내려주고 별말 없이 일터로 떠나셨다. 하지만, 곰보빵의 날부터는 달랐다. 여전히 말은 없었지만, 같이 내려서 손을 잡고 유치원 정문 앞까지 배웅해 줬다. 그렇게 우리는 등원 때마다 매번 빵과 우유를 먹고,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