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무엇인가

비대해진 자아

by 박진권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싫을 수 있고, 좋은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반대로 그런 글을 고집하는 작가의 자유는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비판이라는 좋은 방패를 두고, 내면의 악의를 숨긴다. 비겁하게 비판의 뒤에 숨어 타인을 괴롭히는 굉장히 저열한 행동이다. 차라리 싫다고 인정하는 게 훨씬 신사답다. 자신의 나약함과 무지함을 감추기 위해 타인의 용감함과 인식의 넓이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예술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이상하게 표현할 뿐 당신과 같은 사람일 뿐이다.


박진권




비대해진 자아

현대 예술이 가장 큰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예술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해설을 읽어도 도통 이해할 수 없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예술가의 작품과 쉽게 비교된다. ‘진정한 예술’은 무엇인가. 대중을 단 하나의 진리로 완벽하게 설득한 책은 없다. 즉, 예술은 여전히 논의 대상이고, 무엇이 진정한 예술인지는 평생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작가들도 피해 가기 어렵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은 대한민국 문학인들에게 영감뿐만 아니라 어떤 보호막이 형성된 느낌이다. 그녀의 책 채식주의자를 읽고 한 번에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해석을 들어도 명확하게 인지하는 사람이 드물 정도니까. 그런데, 부커상과 노벨 문학상이 그러한 비난을 돌려보낸다. 아직까진 그 누구도 그녀의 글을 욕하는 사람이 없다.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인정할 수 없어도 입 밖으로 쉽게 내뱉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른 작가들은 되려 곤욕을 치른다. ‘지가 한강이야?’, ‘그래서 네가 무슨 상을 받았는데?’ 깎아내리지 못해서 안달이다. 이런 생각은 당연히 비약일지도 모른다. 사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편협한 시선으로 입맛에 맞는 책만 골라서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는 독서 자체를 잘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장 멍청한 것은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이 문학을 비판하는 것’ 이것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불편한 편의점과 곱씹어야 하는 채식주의자는 같은 문학이지만 결이 상당히 다르다. 그렇다고 불편한 편의점을 나쁜 글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대로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채식주의자를 좋지 못한 글이라고 생각하는 아둔한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러나 비대한 자아를 소유한 사람은 타인의 특별한 자아를 혐오한다. 자신의 실속 없이 살만 뒤룩뒤룩 찐 자아가 볼품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들 말대로면 알베르 카뮈의 결혼은 불쏘시개로도 사용할 수 없는 책이 된다.


예술의 진리를 찾기는 불가능하다. 몇 세기가 지나도 예술이 무엇인지, 그것의 진리를 만인에게 공표 후 설득한 사람은 없다. 대중성은 예술의 금전적 이득을 줄 뿐 그것이 훌륭한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잘못된 것이 아닌 그저 ‘내가 싫은 것’이다. 어떤 개인은 그것을 인정하기 싫은 철부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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