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나의 스승님

똑 닮았다

by 박진권

선생님,

나의 스승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제게 말씀하셨죠. '너는 운동보다는, 정적인 게 더 잘 어울리겠는데? 예술성이 보여.' 당시엔 그게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열 살 때부터 당시 열일곱 살까지 운동만 했습니다. 때문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돌려 말한 것은 아닐까 곡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등교를 하지 않거나 늦게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선생님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출석을 늦게 해야 담임을 맡고 있는 선생님을 피할 수 있었고, 4교시가 지나면 당신의 수업을 듣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단 지각의 횟수가 육십 번을 넘어갈 즈음 선생님은 저를 호출했습니다. 저는 교무실에 들어가 선생님 자리로 향했습니다. 그때 저를 본 선생님은 말없이 개인 면담실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저는 숨을 크게 내쉰 후 선생님을 따라 면담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리는 면담실 안에서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볼까지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며 고뇌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예비 종소리가 울리자 선생님의 입술이 벌어졌습니다.


박진권




똑 닮았다

"집에 무슨 일이 있니?"


"아닙니다."


"그래? 이따 점심시간에 다시 교무실로 올래?"


"예? 아, 알겠습니다."


점심시간, 선생님은 학교 밥이 맛이 없으시다며 저를 교외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허름한 김치찌개 집 앞에 서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괜찮지?' 저는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선생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김치찌개 집 내부는 생각보다 고급스러웠습니다. 월넛 색상의 원목 테이블과 의자들은 딱 봐도 비싸 보였고, 깔끔했습니다. 입구 옆 계산대에서 인사하는 수염이 멋들어지게 난 할아버지와 주황색 원피스를 입고 계시던 주인 할머니 덕분에 가게 안은 생기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 특이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말을 잃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들어 주문했습니다.


"여기 라면 다섯 개랑 맛있는 김치 주세요."


김치찌개집에서 라면을 시키는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었습니다. 메뉴판에 라면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당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이 계란은 몇 개 넣을지 물어보셨습니다. 선생님은 새하얀 이를 보이며 아주 명량하게 '다섯 개'라고 외치셨습니다. 얼마 후 고봉밥과 큰 솥에 조리된 푸짐한 라면이 등장했습니다. '먹자'라는 말과 함께 꼬들한 면을 죽 뽑아서 제 접시에 덜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얼떨떨했으나 고픈 배는 어느새 면을 흡입하고 있었습니다. 면은 금방 사라졌고, 국물도 밥과 함께 녹아 없어졌습니다. 선생님은 만족스러우신 듯 배를 두드리며 피식피식 웃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네 수첩을 봤다. 그 짧은 글에 나는 문학의 냄새를 맡았어. 이게 어린놈의 일기인지, 노인의 회상인지 알 수가 없었지. 네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다른 선생님의 산문 수첩이라고 믿었을 거야."


선생님은 다시금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수염을 만지셨습니다.


"지금 당장 운동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그저 알고 있으라는 거야.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니까. 언제든 할 수 있어. 자,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선생님은 계산도 하지 않고 획 하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제가 당황하자, 계산대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계셨던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나가라고 손짓하셨습니다. 저는 허둥지둥 의자를 정리하고 꾸벅 인사하며 나왔습니다. 사실 그날 이후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고, 이것저것 배우는 게 좋았습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군인이 되었고, 눈 깜짝하니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동안 글을 아예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작문할 때 고심하지 않았고, 퇴고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일에 찌든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출장이 너무도 많은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출장 기간이 이주가 되어갈 무렵 앞머리가 눈을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출장지에서 머리카락을 다듬기로 마음먹고, 미용실을 찾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남성 바버샵이 있었습니다. 작지만, 건물 내부가 굉장히 남성스럽고, 세련된 이발소였습니다. 이후 걸어 나온 이발사를 보고 저는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분의 멋들어진 수염과, 선생님의 수염이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머리카락만큼 머릿속도 말끔히 정리되었습니다. 그날 숙소로 돌아가 펜 대신에 키보드에 손을 얹었습니다. 다시 쓰기 시작한 글을 완성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그때 문득 김치찌개집 할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의 수염도 할아버지의 수염과 똑 닮아있었습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