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의 노예
브런치 스토리에 약 70일 연속 글을 게시했다. 겨우 70일 동안 무엇이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단순한 수치로 설명할 수 있다. 현재 조회수는 8.5만 회고, 70일 전에는 2.2만 회였다. 3년 동안 2만 회, 70일 만에 6만 회를 훌쩍 넘긴 것이다. 좋은 글의 척도가 조회수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글 쓰는 사람은 결국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작품도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아쉽다. 읽어주지 않아도 쓰는 행위를 멈출 일은 없다. 글 쓰는 것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한 것도 사실이다.
글 박진권
누군가 읽어주고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다면 조금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향상심이 생성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글 잘 쓰는 사람’이라는 액자에 갇혀 혼자서 합리화하는 삶은 너무도 슬픈 인생이다. 사유하기로 선택한 시점에서 내 글은 무조건 누군가 읽어야만 비로소 완성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아직도 미흡한 사상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못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라도 내 글의 독자는 생명수와 다름없다.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쓴 글의 조회수가 터질 때, 허무한 감정을 몰아낼 수 없었다. 제목도, 부제도, 서문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글이 오히려 1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반대로 고심 끝에 썼던 글은 300의 조회수도 넘기지 못했다. 사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브런치 스토리의 특성상 각각 제목을 적어야만 하는데, 그 제목이 자극적 이여야만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자극적인 제목을 좋아하지 않는다. 독자 입장에서 제호와 내용이 섞이지 않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조회수가 올라가면 흡족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을 실 조회라고 보기 어렵다. 제목에 끌려 눌러보고 첫 줄을 읽고 나가도 조회수는 올라간다. 실수로 눌러도 마찬가지다. 그냥 하트만 누르기 위해 들어와도 여전히 조회수는 상승한다. 나 또한 잡지 기자의 경력이 있어, 자극적인 제목을 생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죽음 끝에서 돌아본 인생”이라는 제호를 달고 부제로 “지옥의 나날”이라고 정했다고 하자. 장담할 순 없지만, 조회수는 무조건 터진다. 다만, 글 내용이 겨우 감기거나, 장염 등 죽음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라면 어떨까. 구독자 증가는 고사하고 오히려 구독 취소 세례가 난무할 것이다. 그럼에도 단순 조회수가 목적이라면 만들 수 있는 제목은 넘쳐난다. 예스 24, 교보문고, 알라딘에 들어가서 지금 뜨는 도서를 보고 그것과 비슷한 제목을 지으면 된다. 또는,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내용만 글로 적어도 좋다. 어떤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인터넷 기자들처럼 똑같은 글을 복사 후 붙여 넣기 해서 윤문만 하면 조회수는 상승한다. 내 글을 좋아하는 구독자의 증가보다, 단순히 폭발적인 조회수를 원한다면 말이다.
만약 나만의 글을 쓰고, 그 글에 궁금증 또는 호감을 느끼는 독자를 늘리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하나다. 내 글을 매일 쓰고, 매일 게시하는 것이다. 나는 평생 걷는 사람이다. 조급하게 뛰어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