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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Jul 19. 2019

<남자사용설명서>, B급의 솔직함과 로맨스가 만나면

킬링타임용이건, 시간을 내서 보건 한국의 상업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다수가 말하듯 (믿고 거르는 한국영화) 수준 미달의 영화도 많지만, 그런 영화들을 거치다보면 사막 속에 묻힌 보석 같은 영화들도 으레 발견하게 된다. <내 깡패같은 애인>, <스카우트>, <천하장사 마돈나> 같은 영화들이 내겐 그런 작품들인데, 뭐 대단한 작품들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유쾌하고 솔직한 한국 영화 특유의 질감이 묻어나는 작품들이라서 아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사용설명서>는 수많은 수준 미달의 작품들을 견디고 또 한 번 찾아낸, 재밌는 상업영화의 발견이었다. 젠더 감수성(?)이 한참 모자라 보이는 제목, 도무지 손이 안가는 포스터, 오정세와 이시영이라고 하는 어딘가 무게감이 부족한 배우들. 이런 이유들로 이 영화의 존재를 알고도 여러 번 미뤄둔 게 사실. 그러던 중, b급 감수성을 찾아 헤맨 나의 상황과 이 영화를 향한 호평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비로소 꺼내든 영화였다. 그런데 이 영화, 매력이 보통이 아니다. 감독의 톡톡 튀는 연출, 영화에 착 들어맞는 배우들의 연기, '로맨틱'과 '코미디' 를 표방하는 장르의 충실함까지. 무엇보다 재밌고 독특하다. 



이 영화의 매력을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배우 오정세다. 다소 저렴(?)해 보이는 외모와 그간 오정세라는 배우가 가진 코믹하고 주변부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이 영화에서만큼은 슈퍼스타다. 도무지 슈퍼스타같지 않은 오정세가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는 덕에, 다소 평이하고 밋밋해보일 수 있는 영화의 전체 줄거리는 새롭게 피어난다. 오정세가 영화 속 내내 찌질함을 담당하고 b급 유머를 건네는 동안, 상대적으로 진지하고 무거운 캐릭터인 이서영의 성장 서사가 힘을 받는다. 오정세와 이서영. 두 상반되는 캐릭터의 시너지를 통한 웃음과 서사의 반복, 그렇게 b급 코미디 영화는 로맨틱 멜로 영화로 마무리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도무지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가 결국 성공적인 로맨스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건, 뒤틀리고 어설픈 유머 속에 묻어나온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한없이 웃기다가도 그 안에서 솔직함을 뽑아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를 만든 배우 오정세는 정말 발군이다. 이 영화에서 오정세를 대체할 만한 배우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다. 그만큼 배우 오정세의 연기와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그냥 오정세라는 배우만이라도 보러가시라, 말씀드리고 싶을 만큼 강렬하다. 



감독의 연출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극한직업>의 b급 유머가 대중적으로 큰 조명을 받고 있지만, 글쎄, <남자사용설명서>에 비하면 <극한직업>은 참으로 얌전한 영화라 하겠다. 영화의 웃음은 오정세의 연기와 더불어 감독의 '약 먹은 듯' 한 연출에 있다. 발가벗고 운전하다가 음주측정을 마주한 슈퍼스타, 오열하며 몸부림치는 오정세를 감싸며 흘러나오는 가곡. 이 얼마나 미친 상황과 음악인가. 유치한 농담이나 오버스러운 분장 같은 어설픈 b급이 아니다. 철저히 b급 코드에 맞는 관객만 웃겨보이겠다는 고집스러운 코미디다. 얕은 물에 송사리 몇 마리를 잡기보다, 심해의 대어 한 마리를 노리겠다는 뚝심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잘 보이기 위해 향수를 잔뜩 뿌린 오정세를 향해 휘발유를 뿌렸냐며 경멸하는 이서영의 눈빛이 생각나, 키득거리고 있다. 



좀 더 수려한 표현과 논리로 이 보물 같은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만, 나는 그런 능력이 없거니와, 그렇게 소개해서도 안 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미장센이니, 카메라 워킹이니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로 이 영화의 매력을 설명할 수 없다. 거칠고, 유치하며, 어설프고, 사소하다. 하지만 쉽고, 유쾌하고, 솔직하며 무엇보다 웃기다. 내가 한국의 상업 영화들을 사랑하는 건, 이런 사소한 이유들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같은 기념비적인 걸작도 좋지만, 가끔 우울한 날에 홀로 키득댈만한 유쾌한 농담이 가득한 영화들도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남자사용설명서>는 충분히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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