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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Aug 14. 2019

<걸캅스>, 문제는 그게 아닌데

남녀 갈등에 가려진 영화적 완성도


올해 상반기 스크린 시장은 유독 뜨거웠다. <어벤저스>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고, <극한직업> 이 B급 코미디 영화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봉준호 감독이 결국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었고, 추억 속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물들이 하나,둘 현실에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가슴 설레는 영화들이 풍성하게 쏟아져 나온 상반기였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들이 만만치 않게 등장한 상반기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많은 영화들보다도, 더 뜨거운 화제가 되었던 영화가 있었다. 바로 <걸캅스>. '여경'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보란 듯이 개봉한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점점 뜨겁게 번지던 남녀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남성들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영화의 설정과 공개된 예고편을 바탕으로 조롱을 퍼부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여성들의 힘으로, 게다가 남성의 영역인 형사가 되어 해결한다는 여성주의적 서사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급기야 '영혼 보내기'라는 새로운 방식의 관람(?)을 선보이기도 했다.


영혼보내기 : 영화의 흥행을 위해 직접 관람을 하지 못하더라도, 표를 구매해 응원하려는 행위



개인적으론 이 영화가 잘되길 바랐다.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배우들의 입지는 남성 배우들의 입지에 비해 크게 적은 것이 사실이고, 여성 단독 주연 영화는 더욱이 그러했으니까. <미씽 : 사라진 여자> 나, <미쓰백>과 같은 여성 주연의 괜찮은 영화들이 흥행에서는 실패하면서, 여성 주연 영화들은 대중성과 흥행성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슬금슬금 생기던 차였다. 기왕 화제가 되어 대중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이 영화가 부디 좋은 평가와 함께 흥행을 올려 그런 인식을 뒤집길 바랐다. 그런데 이 영화, 너무나 별로다.



오버하면 웃길거라는 발상?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 액션이다. 형사물이니 액션은 기본이겠으나, 문제는 이놈에 코미디다. 감독이 관객의 수준을 우습게 봤나 싶을 정도의 저질 유머 코드가 가득하다. '똥과 욕'으로 점철된 1차원적 유머 코드는 물론이거니와, 라미란 씨의 억척스러운 한국 아줌마의 오버스러운 모습은 '응팔'의 그것보다 웃기지 않는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웃은 부분이라면, 정말 뜬금없이 등장한 까메오들. 나머지는 글쎄. 애초에 이 영화를 코미디물이 아닌 드라마물로 나아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기왕 웃기지 못할 거라면, 감정을 하나 둘 쌓아 폭발시키는 방법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이 영화를 향한 조롱도 크게 줄었을 텐데.


클리셰의 반복과 고민 없는 연출, 뻔한 서사. 장점은 대체?


감독이 <베테랑>의 팬인 듯, 그대로 옮겨온 연출도 문제가 많다. <베테랑>은 그나마 유아인이라는 악당을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리면서, 긴장감과 통쾌함을 전달하기라도 했으나, <걸캅스>의 악당들은 치졸하고 한심한 이분법적인 악인에 불과하다 보니 빌런의 매력이 크게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그를 해치웠을 때 통쾌함도 역시 부족했다. 영화적 카타르시스는 빌런을 해치우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실적에 도움되지 않는 사건을 뒤로해왔던 제도권 경찰들을 향해 일침을 가할 때가 더 컸던 것 같다. <걸캅스>의 목표가 그것이었다면, 적어도 그것만큼은 성공했다. 영화는 '코미디'에 이어 '액션' 장르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걸캅스>가 페미니즘의 대표 영화같이 인식되면서, 영화적 재미보다는 페미니즘을 향한 반감으로 인한 정치적 비난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 내가 만약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걸 캅스>를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영화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화가 날정도로, <걸캅스>는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져 있다. <걸캅스>는 페미니즘의 서사로는 고작 이런 영화밖엔 만들지 못한다는 근거없는  비난과 조롱을 양산해내기 충분한 졸작이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페미니즘적 요소가 강한 것도 아니다. 남성들이 페미니즘 진영을 공격하기 딱 좋은 용도가 된 영화, 그게 <걸캅스>다.


아무쪼록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입장에선 <걸캅스> 같은 졸작을 신격화하는 일이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좋겠고, 이들을 반대편에 서고자 하는 입장에선 고작 <걸 캅스> 같은 영화의 완성도를 들먹이며 이를 공격하는 도구로 쓰는 치졸한 행위는 멈췄으면 좋겠다. 그렇게 소모적인 일들에 쓰이기에도 아까울 만큼 <걸캅스>는 별로인 영화다


<걸캅스>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160만이나 되는 관객을 끌어모아, 흥행에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것이 '영혼 보내기'의 힘이건, 노이즈 마케팅의 힘이건, 어쨌건 여성 주연 영화와 여성의 서사를 담은 영화들이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로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디 이러한 흥행이 또 다른 <걸캅스>가 아닌 완성도 있는 여성 주연의 영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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