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2. 떠남의 순간

어느 순간, 무조건 떠나야 했다.

by 밴쿠버 포테이토

여행 전과 여행 후, 표면적으로는 다른 게 없으며, 같은 일을 하고 있고, 여전히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돈이 많고 여유가 있어서 ‘놀자!’ 외치며 떠난 것은 아니다. 일로 꽉 찬 삶과, 답답한 좁은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들. 일에도 사람에도 지친 우리는 결국 끈을 놓는 순간이 왔다.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약 8개월에 걸쳐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왔다.

1. 일본 오키나와 시골에서의 조용한 휴식
2. 뉴질랜드 오클랜드, 그리고 북섬 캠핑카 여행
3. 캐나다 밴쿠버와 아름다운 밴프 여행
4. The ‘New York’, 미국 뉴욕.
5. 북유럽의 다른 시간. 덴마크 코펜하겐, 근처 스웨덴의 도시들
6. 프랑스 파리, 예상되지만 그만큼 행복한 곳
7. 이탈리아 로마, 피렌체. 그리고 보물 같은 이탈리아의 소도시들

우리는 둘 다 괜찮은 월급을 받고 있었지만, 돈을 떠나서 일의 특성과 시기상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들이 쌓여갔다. 월급이라는 약을 한 달 주기로 맞아가며 노동을 이어 갈 뿐이었다. 내 삶이 이게 맞는가 하는 저기 깊은 곳의 마음이 일단은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일본의 '프리터족' (정규직보다는 아르바이트로 최소한만 벌면서 산다는)을 뉴스에서 보면 진심으로 이해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이유를 근거와 핑계로 삼아, 마음속에 이미 있던 정답인 '지구 한 바퀴'를 맞추어 가기 시작했다. 마음먹기는 한순간이었다. 사실 언제나 마음은 먹어져 있었지. 당연하듯 주 5일을 출근하는 우리에게는 너무 과분했던 여행이기에, 그저 확실한 명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8개월의 글로벌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신비로운 곳을 떠도는 것이 아닌, ‘관광’보다는 ‘잠시 살기’를 착착 이어 나갔다.

각 거점에서 한 달 전후로 숙소를 마련해서 한국에서의 백수와 다를 것 없는 시간을 보냈다. 집 근처 동네를 매일 돌아다니고, 마트에서 장 봐서 밥 해 먹고 운동하고 공부하다가 가끔은 멀리 놀러 가고. 이전에는 늘 체력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여행을 좋아했지만, 이번 장기 여행은 완전히 다른 포커스로 출발했다.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들은 과하지 않게 설정하고, 새로운 곳에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잠시나마 경험해 보고 오기로 했다.


길었던 여행은 귀국 후 일상에 복귀한 뒤 점점 더 그립고 진한 기억이 되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되뇌어 보는 내 하루의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는 집 한편에 여행의 사진이 계속 반복되는 포토앨범 모니터를 마련했다. 여행 내내 찍어온 수많은 사진이 랜덤으로 계속 재생된다. 서서히 흐려져 가는 기억을 사진이 복습시켜 주어서, 행복했던 시간을 잊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돌아온 현실의 단조로움을 달래준다.


하지만 언제까지 영원한 기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계속 흐려져 가는 기억 속에서, 포토앨범을 만들며 다행히 한 번의 심층 복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지금, 기억 일부는 사라졌겠지만, 많은 부분은 더 진하게 새겨져 마음을 계속 그곳으로 이끈다. 나는 한국에서 똑같이 일하며 살고 있지만, 언젠가 또 이런 멋진 시간이 있을 것이기에, 마음 일부만큼은 여기 있지 않고 세상 어딘가를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똑같은 하루를 사는 마음가짐이 이전과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고, 이게 이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여행을 다시 한번 복기하며 글을 남기기로 했다. 나중에 더 늙은 우리가 일기장 같은 이 글을 보며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되살릴 수 있길 바란다. 또 이 글을 보는 누군가에게 내가 꿈꾸고 실행했던 그 시간의 행복이 조금이라도 전달되거나, 혹은 그에게 새로운 두근거림을 만들어낸다면 그것 역시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지 싶다.


복기한다는 것만으로도 또 설렌다. 과감했고 조금 더 젊었던 우리를 돌아보며, 한 편씩 일기처럼, 그때의 우리를 따라 다시 한번 지구를 돌아보려 한다.


각 지역의 사진들을 예습했으니, 먼저 오키나와로 떠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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