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2.5시간 출퇴근러의 새벽 루틴
지금은 쇠퇴기에 접어든 슈퍼스타 호날두의 아들은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질문을 듣지 않아도 된다. 호날두는 호날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존함은 호 날자 두자 이시고요, 직업은 축구선수이고 어쩌고 저쩌고..'가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럼 우리 아이들은? 내가 지금처럼만 산다면 녀석들은 밖에서 아버지가 뭐 하시는 분인지 입 아프게 설명하고 다녀야 될 확률이 높다.
대리진급 1년 누락의 여파로 동기들이 다들 과장으로 진급하던 작년 말, 노력했던 조기 진급마저 후배의 몫으로 돌아가며 회사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단단히 느꼈던 그날 다짐했던 것. 더 이상 회사에 목메지 말자. 회사를 당장에 때려치우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사실 없다.
그저 별 수 없이 회사라는 안전장치에 의존하여 인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1년 동안 열심히 한 건 알지만 조기 진급 못 시켜줘서 미안하다는 팀장님의 말에 '이렇게 살면 안 돼!' 머리통을 한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머리통의 얼얼함은 일주일 정도 지속되었고 일주일 동안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명함을 떼어 내고도 최대한이라는 인간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것. 결론을 내리고 나니 신기하게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진급을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단 1그램도 남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더 해보고 싶었고 '기록'의 힘을 책에서 보아 얼핏 알고 있었기에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평생 써보지도, 쓸 생각도 없었던 다이어리를 샀다. 혼자 하면 또 작심삼일에 그칠 나 자신을 잘 알기에 와이프도 나의 발걸음에 반 강제적으로 동참시켰다. 그렇게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23년 한 해는 나를 발전시키고 기나긴 인생의 여정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나가야 할지 명확한 방향성을 확립하는 한 해로 목표를 설정했다.
최종 목표 : 명함 벗어던지기
올해 목표 : 독서와 글쓰기로 뇌 튜닝하기
거창한 계획을 세우다가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일단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도 3년도 더 전에 계획했던 일이다. 무슨 글을 쓸까? 주제는 무엇으로 할지, 필명은 무엇으로 할지 고민만 하다가 3년을 그냥 흘려보냈다. 실행만 옮겼으면 벌써 나의 글쓰기 실력은 지금보다 훨씬 발전해 있을 것을.. 실행을 못해서 3년을 낭비한 셈이다. 작가 신청 후 반나절 만에 합격 통지를 받고서 다시 한번 실행의 위력을 실감했다.
집에서 회사 출퇴근은 왕복 2.5시간의 거리. 새벽 6시에 나가서 5시 정시퇴근을 한다 하더라도 집에 오면 6시 반이 넘는다. 가족들과의 저녁시간을 위해 최대한 야근은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회사와의 절대적인 거리로 인해 일찍 자는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3시간여 남짓. 그 짧은 시간을 책 읽는 시간으로 쓰자니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또 그 시간에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옆에서 소리 지르고 날뛰는 두 놈을 생각하면 이도저도 안될게 뻔했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출퇴근 시간이 어두워 버스에서 책 읽기도 안되니 시간 확보를 위해 새벽기상을 해보기로 결정하고 다이어리 목표란에 적었다. 그렇게 글로 적으니 신기하게도 이게 단번에 실행에 옮겨진다.
단순히 4시 기상, 5시 기상과 같이 일어나는 시간을 고정하는 게 아니라 총 수면시간을 6~7시간으로 설정하고 재택근무나 주말의 경우 유동적으로 조절하기도 한다.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애초에 갖지 않으니 일찍 일어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퇴근하고 저녁 먹고 아이들과 잠시 시간을 보내고 학습지도 봐주고 같이 책도 읽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9시가 되어 아이들 재울 시간. 예전엔 퇴근하고 잠깐 쉬다가 바로 잠자리에 드는 게 너무 아까워 어떻게든 일어나서 더 놀다 자려고 했었다. 그러다 보니 애들이 바로 잠들지 않는 날이면 버티고 버티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 출근 알람에 허겁지겁 일어나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다이어리에 기록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을 재우면서 마음 편하게 같이 잔다. 그래야 새벽에 일어나기도 수월하고 육체적으로 타격이 없다. 총 수면 시간이 최소 6시간은 되어야 생활 리듬에 방해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새벽 시간을 확보하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활 패턴을 바꾸니 새벽에 그냥 눈이 떠진다. 알람을 미루고 겨우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어떤 날은 먼저 눈이 떠져서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다이어리를 되돌아보니 알람 잘못 맞춘 날과 캠핑 가서 얼어 죽을뻔한 엊그제를 제외하고는 꾸준하게 새벽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새벽이 주는 묘한 기운이 있다. 방해하는 요소가 1도 없는 시간이기에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이 시간에 나는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 솟아난다. 어떨 때는 새벽의 기운에 심취해 읽고 온 책에서 못 빠져나와 사무실 자리에 앉아서도 현실감각이 없을 때도 있을 정도이다. 이 좋은걸 왜 이제야 알았나 모르겠다. 왜 그 어두운 방에서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시력도 잃어가며 시간을 녹였었는지, 하면 되는데 왜 안 했는지 후회스러울 정도. 잠자면서 깨끗하게 청소된 뇌로 읽는 책은 더 깊이 와닿는다. 어떨 땐 집중이 잘 되지 않는 날도 있지만 그럴 땐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쓴다.
알람에 쫓겨 겨우 일어나 통근버스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나가던 인생에서, 더 먼 정류장으로 산책 겸 새벽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인생으로!
매일 한 걸음씩 성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