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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하면둘 Jun 23. 2023

부러워하고, 부끄러워 하지말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리뷰

 

0. 와-와 하는 사람들


와와하지 마시고 예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작가의 말


“여기 스튜디오에서 사진 찍으려면 1년은 예약을 기다려야 한대”

    회사에서는 이래저래 어디선가 돈을 쓸어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날의 주인공은 프로필 사진이나 웨딩사진 같은 걸 찍어주는 유명 스튜디오였다. 한 번의 사진이라기엔 너무도 어마어마한 금액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가득차 사진을 한번 찍으려면 족히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들 얘기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스튜디오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는데, 그 순간 정말로 와와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실물이 어땠을 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결과물은 참 아름다웠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트로이 전쟁처럼)도 불사하는데, 백 만원이 훌쩍 넘는 돈이 어디 대수일까. 와와, 우리는 감탄하면서, 일단은 예약부터 하고 봐야겠다고 결론지으며 이야기를 끝냈다. 인간은 늘 아름다움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아름다움에 취약한 우리의 이런 피할 수 없는 성향을 자본주의는 야속하리만치 파고든다. 우리는 이제 세상 도처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마주한다. 아니, 아름다운 것들만을 마주한다. 길을 걸으면 건물의 전광판에서부터 버스 정류장에까지도 무언가를 광고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고, 휴대폰을 키면 SNS에서는 몰디브나 제주도 같은 아주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이 찍은 사진이 올라온다. 하다 못해 심심해서 켜보는 유튜브에는 공부하는 브이로그를 찍겠다는 사람들마저 출중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200년 역사에 달하는 자본주의라는 노포는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생활의 달인마냥 돈으로 척척 바꾸어낸다. 그들이 쓰는 화장품, 옷, 심지어는 그들이 듣는 음악까지도 어찌나 멋져 보이는지 너도 나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너무 아름다운 것들만 넘쳐나서 도대체 세상 못난 것들은 모두 어디로들 숨어있는지, 기껏해야 거울에서나 한 명 정도 발견했을 뿐이다. 그렇게 아름다움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예예, 무척이나 부럽고, 가지고 싶고 말구요. 할 수밖에 없다.


    여튼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그러니 아름다운 것은 어떻게든 돈이 된다. 게다가 무한 경쟁에서 이긴 승자를 찬양하고 패자에게 노력을 독려하는 신자유주의의 사고방식은 이 아름다움의 유토피아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네 탓이라고 떠밀기까지 한다. 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아서, 네가 예쁜 옷을 입지 않아서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예쁘게 치장하고, 예쁜 것들을 더 소유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벌어와야만 한다. 박선영 기자가 한 칼럼에서 얘기한 말마따나 우리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너무도 성실히 체득해왔다.


세상의 못난 것들은 못나서 서럽고, 그것이 내 탓이라 더욱 서럽다.


1. 누군가의 부러움과 부끄러움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민낯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P.308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와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주차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지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다. 여자는 책에서 설명하는 그대로 '사람을 얼어붙게 할 만큼' 못생겼고, 남자는 꽤 잘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에게서 외모가 장벽이 된다는 사실은 의아하기 그지 없다. 이들이 이미 좋아하게 되었는데 도대체 외모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책은 이 지점에서 외모가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계급성을 보여준다. 그들이 가지는 외모의 차이에 의한 장벽은 신분제 사회에서의 신분 격차나 다름없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동화에서 나오듯, 그녀에게는 "'왕자'님은 저같은 천한 것을 만나서는 안되고 제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못생긴 사람으로서의 철저한 신분의식이 있다. 그녀는 본인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그러한 그녀의 태도는 그들의 관계에 외모 그 자체보다도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남자를 밀어낸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태도에 대해서 그녀를 탓할 수는 없다. 그녀의 부끄러움은 절로 타고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억울한 점이 있다면... 그런 것입니다. 왜 균등한 조건이 주어진 듯, 가르치고 노력을 요구했냐는 것입니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분명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한 번도 스스로의 인생을 평가받지 못했습니다.p. 280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못생긴 외모로 인해 늘 차별받고, 핍박받아 왔으며 그런 차별은 그녀가 ‘백화점’에서 일하게 되며 더욱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녀가 있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우리가 자본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라고 일컫는 구조가 소위 못난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배제해 나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녀는 백화점의 사무직으로 입사하여 일하고 있었으나, 점차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지하주차장까지 밀려났다.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까닭은 우스울 만큼 간단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못생긴 외모가 업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를 끼친다는 이유였다. “매출에 지장이 있어”라고 그녀에게 말하는 듯한 매장 사람들의 차가운 태도에 그녀는 속절없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수순이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백화점의 본질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하게끔 하는 것이다. 누가 아름다워서 부럽고, 그게 부러워서 꼭 필요하지는 않을 옷을 사고, 가방을 사고, 구두를 산다. 그러니 그곳에서 어느 누구의 부러움도 사지 못하는 그녀는 곧 무능한 사람이 된다. 그녀는 직원으로서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 그런 불합리한 좌천에서 뭐라 한마디 할 수 없다. 아니, 그녀에게는 할 말이 없다. 이윤을 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직원을 내쫓는 것에 누가 무어라 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돈이 되지 않고, 그렇기에 쓸모가 없다. 이 너무나도 합리적이고 수지타산이 맞는 세상의 논리 앞에서 무능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던 그녀에게 남은 것은 그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뿐이었다.


    문제는 또 하나 있다. 이 구조 속에서는 잠깐의 승자도, 언제까지나 승자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그녀가 아닌 ‘군만두’라는 닉네임으로 등장하는 다른 예쁘장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못생긴 그녀와는 달리 ‘군만두’는 예쁘고, 본인도 그걸 아는지 늘 사람들의 중심에 있기도 하고 다른 이들의 호감을 이래저래 잘 이용해 먹는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언젠가 백화점에 온 연예인의 옆에서 얼굴을 붉히며 옆에 있는 것이 부끄러운 듯 선 적이 있는데, 주인공은 그 광경이 마치 탕수육 옆에 있는 ‘군만두’같이 아무도 딱히 손대지 않는 서비스처럼 느껴져 그녀를 그때부터 ‘군만두’라고 부르게 되었다. ‘군만두’는 그곳에서 확실히 못생긴 주인공 그녀보다는 높은 위치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의 부러움으로 작동되는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영원히 누구에게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일 수는 없다. 더 예쁜 사람, 더 돈 많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언제라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된다.


2. 사랑, 구조에 맞서는 개인의 유일한 무기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p.228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이런 구조적인 절망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경쟁에서 이기면 되는 걸까. 만약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왕비의 계획(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을 죽이고, 내가 가장 예뻐지는 것)이 성공했다면, 왕비는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그건 아마 아닐 것 같다. 불행히도 그녀가 백설공주 암살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아마 매년 새로운 백설공주가 등장해 왕비는 살육을 멈출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한다.(그녀가 해가 다르게 멋진 아이돌들이 데뷔하는 K-POP의 본고장인 한국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경쟁이란 그 본질적으로 어느 누구도 무한히 승자일 수는 없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든 핵주먹 타이슨이든, 언젠가는 지기 마련이다.


    해결책이라 말하기에는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 시스템에 대항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 없지는 않다. 책은 그것이 ‘사랑’이라 말한다. 그녀가 후에 행복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사랑이 이 시스템에서 일종의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누구보다도 못생겨서 이 시스템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그녀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하면 누구보다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그녀는 직장에서 이미 그러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모두 느끼겠지만, 이 책에서 그녀는 종국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녀는 책이 보여주는 여러 갈래의 결말 속에서 유일하게 모두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그것은 남자가 그녀에게 주었던 사랑이라는 빛이 한 사람으로서, 그녀를 오롯이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직장에서 그녀는 아름답지 않고, 그래서 돈을 버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고, 결국 버려진다. 세상은 그녀가 ‘가진 것’에 집중한다. 그녀는 세상이 원하는 것(돈으로 치환해낼 수 있는 무언가)을 가진 적이 없으니 그로부터 폐기당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그의 사랑은 도리어 그녀가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본다. 그는 어린 시절 본인이 아버지에게 버림 당하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결여를 그녀에게서 발견하게 되는데, 그녀 역시도 세상에게서 버림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결여’와 그녀의 ‘결여’가 동질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신형철 평론가는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이러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의 이 문장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단박에 보여준다. 사랑이란 네가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처럼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함께하자는 다짐이다. 전자는 사랑이 아니라 거래나 영리활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랑은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과는 달리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는 것이므로 보다 더 한 사람의 본질에 다가간다. 사람이 가진 것이야 첫 눈에 들어오겠지만 가지지 못한 것은 유심히 한 사람을 관찰해야만 알 수 있을 것이고, 가진 것은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가지지 못한 것은 더 이상 사라질 수는 없다. 이런 사랑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매출이나 이익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아닌,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자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시스템에 맞서는 개인이 가질 아마 유일한 무기다.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또 사랑 받음으로써 우리는 더할나위 없는 위로를 받는다. 이 사랑은 우리가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곁에 있음으로써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3. 해피엔딩을 바라며

    책을 읽기 시작했던 지점부터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겼다는 그녀가 어떤 엔딩을 맞이하게 될 지가 궁금했다. 나는 그것이 반드시 해피엔딩이기를 바랐다. 학교에서 일진들에게 "빵 사와"를 당하는 학생이 웹툰 속에서나마 일진들이 참교육 당하는 장면을 보고싶어 하듯이, 끝도 없이 세상에게 "어때, 돈 많은 게 부럽지?"를 당하고 있는 나는 이 책에서나마 그런 세상이 한방 먹는 모습을 보고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 돈 없어도, 못생겨도 괜찮은데?" 현실의 나는 아직 그 말을 힘 있게 할 만큼은 자신이 없지만, 그녀만큼은 세상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를 응원하며 이 책을 읽어 나갔다.

    

    박민규는 '사랑'을 통해 그 돈 많음과 아름다움이 모두 시시해질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혹자는 아름답지 않으면 애초에 사랑할 수 없다고 얘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은 물론 사람을 이끄는 강력한 계기가 된다. 그러니 세상도 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으로 시선을 옮겨오자면, 그런 것들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싶다. 돈이 많고, 아름다운 것만으로 평생을 한 인간을 좋아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봐도 정말 그 사람에게 빠져드는 순간은 그 사람을 처음 마주했을 때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김치의 줄기를 좋아하는지 이파리를 좋아하는지, 여름이 좋은지 겨울이 좋은지, 어벤져스가 좋은지 어바웃타임이 좋은지,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진 상처는 무엇인지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지긋이 바라보는 순간에 느껴지는 일체감 같은 것은, 돈이 많거나 아름답다고해서(그래본 적은 없지만) 무조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그녀가 그런 사랑을 했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이야기를 끝맺음 짓는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사랑이 있는 한 못생겨도 행복할 수 있는 거라고, 작가는 그녀에게 해피엔딩을 부여하며 스스로에게 또 독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현실은 앞으로도 가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부럽게하고, 부끄럽게 하게끔 설계되어 있으니까. 앞으로도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는 스스로가 보잘 것 없게 느껴질 만큼, 수없이 많이 부러워할 것이다. 때로 그것은 누군가의 탁월한 재능일 수도 있고, 때로는 나는 감히 엄두도 못낼 만큼 누군가가 쌓아 올린 것일 수도 있다. 아마 그치들은 세상이 선호하는 재능을 나보다는 좀 더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곳에서 나보다 앞서나가는 사람을 마주하지 않을 도리는 없으니, 그 회의감은 우리의 탓만이 아니다. 책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엔딩이 없으므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겹지만 계속해서 싸워 나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어도 사랑 했던 또는 사랑 받았던 그 사랑의 기억만을 온 몸에 두른 채로, 더 이상 부럽고 부끄럽지 않다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돈이며, 아름다운 것이며 그런 것들이 정말로 시시해져 버릴지도 모른다. 나의 해피엔딩은 아마도 그런 방향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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