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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Oct 20. 2022

해리포터 키즈의 옥스포드 방문기

이른 아침 조용히 눈을 떴다. 룸메이트들은 늦은 새벽에 조용히 들어와 침대 위로 뻗었다. 이들이 단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용히 외출 준비를 마친 뒤 숙소를 나섰다. 새파란 런던의 거리는 하루를 일찍 시작한 사람들의 숨결로 그 색이 옅어져 갔다.


내셔널 익스프레스를 타고 옥스퍼드에 도착했다. 어제 있었던 성 패트릭 데이의 여파 덕인지 정거장 앞으로 포장마차들이 펼쳐져 있었다. 도시에 여전히 옅게 남아 있는 지난밤 축제의 기운이 느껴졌다. 펼쳐진 음식을 보니 잊고 있던 허기가 올라왔다. 샌드위치, 피자, 빵 등등… 그러나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음식은 더 먼 나라의 것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태국 음식 부스로 들어가 5파운드를 내고 팟타이를 주문했다.


여행을 와서 지난 여행을 추억하는 음식을 시킨다는 게 조금 우스웠다. 꼭 지금의 여행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국 여행도 당시에는 모든 것이 즐겁고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보자마자 손을 잡거나 결혼을 해달라 하거나 키스하자고 들이대던 불쾌한 아저씨들도 있었고, 바가지를 씌우는 택시기사나 관광지 직원도 넘쳐 났었으니까. 으, 말하다 보니 또 빡치네. 다들 뿌린 대로 거두는 삶 사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 여성, 그 지저분한 기억들을 이겨냅니다. 나는 최악의 기억에 갇혀 있기보다 좋았던 기억을 반추하여 강화시키기를 택했다. 부정적인 것들에 덮여 버리기에는 그 외의 기억과 경험들이 더 풍요로웠으니까.


당연히 팟타이는 태국보다 맛없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식사였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여기서도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행에서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야.”

이런 걸 보면 인간은 경험과 추억을 먹고사는 상당히 추상적인 존재인 것 같기도 하다.


옥스퍼드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도시였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해리포터를 보며 함께 자라온 세대들은 모두 비슷하게 느낄 거라 생각한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이지만 이 도시가 풍기는 낯섦이 익숙했다.

개인적으로 해리포터를 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아니라 옥스퍼드를 방문하길 추천한다. 거리의 작은 모습들 하나하나가 다이애건 앨리를 떠올리게 만들어 주니까!



의외로 해리포터에 관련된 기념품 가게는 많지 않았다. 한국이었으면 여기도 해리포터, 저기도 해리포터, 식당에서도 <해리포터 마법 지팡이 젓가락> 같은 걸 팔았을 것만 같은데. 기본적으로 대학교가 모여 있는 것으로 유명한 지역이었기 때문일까?


해리가 론, 헤르미온느와 걸었을 것 같은 거리들을 지나 호그와트에 도착했다. 그렇다, 나는 호그와트를 보러 이곳에 왔다. 해리포터를 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부엉이 편지가 도착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를 꿈꾸던 아이는 성인이 되어 밤낮 바뀐 부엉이처럼 살다가 비행기를 타고 제 발로 호그와트에 찾아오게 된 것이다. 손에는 호그와트 입학통지서 대신 '크라이스트 처치' 입장권을 들고. 가격은 7파운드.


두근두근 거리며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와 계단 등 이 학교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문화 유적지 같았다. 실제로 100년이 넘은 곳이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호그와트의 계단이 분명한 돌계단과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자 눈앞에 마법 같은 식당이 나타났다. 일렬로 쭉 늘어진 나무 식탁과 그 위의 조명들. 벽에 붙어 있는 초상화들은 당장에라도 눈알을 굴리며 자기들끼리 새로 방문한 관광객들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 것만 같았다.



나는 확신했다. 해리포터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스튜어트 크레이그는 이 공간이 원래부터 풍기던 분위기를 더 확대, 재생산하여 마법사들의 세계로 집어넣은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그레이트 ' 현대의 세상과 조금 동떨어진 신비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이곳이 여전히 학생들의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 부러워 미칠  같았다. 이곳 학생들은 농담으로 “호그와트에 다니고 있어요.”라고 말해도 어린 시절에서 빠져나오지   오타쿠 취급받지 않을  있단 아닌가.


한참 동안 자리에 서서 그레이트 홀을 눈에 담았다. 눈을 감아도, 이렇게 몇 년이 지나 당시를 회상하며 글을  때도 생생재생될  있도록 말이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밸런스 게임으로 워랜버핏과 미슐랭에서 코스요리 먹기 VS 그레이트 홀에서 잉글리스 블랙퍼스트 먹기를 택하라 하면 나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이곳은  정도로 나의 취향과 감성을 저격한 공간이었다.


저 멀리서 거대한 몸을 뒤뚱거리며 해그리드가 걸어올 것 같은 건물을 지나, 빗자루 타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것만 같은 잔디밭을 따라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의 관광을 마쳤다.

우스운 소리지만 관광을 마치고 나니  해리포터가 '진짜'처럼 느껴졌다. 내가 옥스퍼드 학생이 아니라다행이었다. '본인이 입학한 곳이 호그와트인  아는 한국에서  괴짜'라는 별명 따위 평생 생길일 없을 테니.


학교 내 1층에 위치한 기념품샵에서 옥스퍼드에 있는 대학들의 문양과 앨리스가 그려진 엽서 몇 장을 샀다. 내가 해리포터를 더 좋아해서 그렇지 이 학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다니던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 내에 있는 벤치 한 귀퉁이에 앉아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빼곡히 채워 나갔다. 이렇게 미래로 보낸 편지는 지금은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몇 년 뒤에 반드시 빛을 발했다.   

어릴 때부터 앨리스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기에  친구에게 편지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옛것들에 둘러 싸여 있으니 옛날 방식으로 소식을 전하는 행위가 새삼스레 애틋하게 느껴졌다.



옥스퍼드에 방문한 목적을 달성하고 나니 다시 허기가 몰려왔다. 물론 식당이야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밥이 먹고 싶었다. 주식이 쌀인 나라에서 밀가루 찾기는 너무 쉬운데  반대는 이리도 어려운지.


옥스퍼드 시내를 돌다 돌다 브리또 가게를 찾아냈다. 누가 봐도 프랜차이즈 브리또 가게임이 분명했지만 관광객인 나에게는 영국 프차도 로컬이었다.

가게문을 열자마자 세상에나. 잘생긴 직원들이 웃으며  낯선 이방인을 반겨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옥스퍼드 여행은 '완벽'이란 단어에 마침표를 찍을  는 자격을 얻게 됐다. 가게에서 나갈  인삿말로 다시 보자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See ya' 끝난  까지, 이보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더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이번 여행에서의 마지막 런던 근교 여행이 끝났다.

내일은 런던을 떠나 스코틀랜드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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