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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Oct 26. 2022

최악의 날 2 : 인종차별


악명 높은 에든버러행 야간 버스를 타고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넘어왔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저렴한 대신 불편하고 이동시간만 14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버스도 방금 전 내가 만난 변태 새끼보다는 최악이 아니었다.

기분전환에는 자는 것만 한 게 없다. 맨 앞자리 좌석을 택한 덕에 공간이 조금 여유가 있었다. 나는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잠을 청했다. 


너무 이르지 않은 아침 시간대에 에든버러에 도착했다. 불편한 자세로 10시간을 넘게 잤더니 온 몸이 찌뿌둥했다. 버스에서 내심 잠 못 이룰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침까지 흘리며 잘 잤다. 조금 머쓱한 기분으로 짐가방을 챙겨 에든버러의 중심지로 발을 옮겼다. 


어제 일은 잊으라는 듯 눈앞에 또다시 새로운 풍경들이 펼쳐졌다. 에든버러는 런던보다 더 예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만큼 도시화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만, 굳이 필요치도 않은데 모든 곳이 도시화되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구글 지도를 보며 가파른 경사를 따라 내려가자 길 중간에 예약한 숙소가 나타났다. 마지막 날 짐가방을 끌고 이 45도 각도의 돌길을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리셉션에서 예약 확인을 하고, 옆의 소파에 지친 몸을 뉘었다. 체크인 시간까지 시간이 제법 남아 있어 아침을 먹고 와도 될 것 같았다. 짐 가방을 맡기고 리셉션을 지나는데 직원 두 명이 ‘마스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들려왔다. 

그제야 손에 쥐고 있던 마스크가 사라져 있단 걸 깨달은 나는 리셉션 앞에 놓인 검은색 천이 내 마스크란 걸 알아챘다. 아마 예약 확인을 하던 중 손에서 빠져나간 듯했다. 


“그 마스크 내 거야. 가져갈게.”


두 직원의 눈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두 쌍의 눈에 약간의 반감이 깃들여있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왜?


“마스크를 왜 쓴 거야?”

“마스크를 왜 쓴 거냐고?”


마스크를 쓰는 데 이유가 있나? 그냥 쓰고 싶으니까 쓰는 거지? 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스코틀랜드는 마스크를 쓰는 게 불법인가?


마스크를 쓴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덜 받고 싶다는 심리적 이유의 반영이었고, 그런 마음이 들게 된 이유는 전날 저녁 내가 런던에서… 이런 이야기를 처음 보는 남정네 둘한테 주저리주저리 할 수도 없었기에 나는 대충 그럴듯한 이유로 둘러댔다. 


“야간 버스 타고 올 때 내가 자면서 입 벌릴까 봐 끼고 잤어,”

“아~ 그래?”


그제야 두 사람의 눈에서 반감의 기색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걱정한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 기회는 이후에 일어난 일로 완전히 잊혀 버렸다.


리셉션 안 쪽에 있던 직원이 얼굴에 웃음기를 가득 담은 채 내 마스크 끈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었다. 마치 더러운 물체를 집듯이 말이다. 그리고는 내 옆에 있던 직원에게 그 마스크를 던졌고, 그 직원은 마스크를 신나게 받아 들고는 내게 건넸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스크는 손만 뻗으면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왜 이걸 굳이 이렇게 건네는 거지?


미묘한 기분이었다. 인종차별인지, 양아치 짓인지, 아니면 ‘유쾌함’을 위한 장난인지 확실하게 구분 지을 수 없었다. 아,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일단 내 기분이 굉장히 드러웠다는 거. 


나는 짜증을 뒤로하고 에든버러의 거리를 걸어 다녔다. 방금 일어난 일까지 하나하나 따져 들기에 심리적으로 너무 피곤한 상태였다. 



무언가를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지도 몰랐다. 런던과 달리 에든버러는 아침부터 문 연 가게가 적었다. 이곳 도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입에 빵 하나 물고 바쁜 하루를 시작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지.


겨우 문 연 가게를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외형을 봤을 때 펍이 분명했으나, 아침부터 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바 테이블 쪽에는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 둘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앉아 있었다.

바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손님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아침에 문을 열었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충실한 안주류들 뿐이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직원에게 치킨 윙을 주문했다. 직원은 웃으며 문제없다는 듯이 메뉴판을 들고 부엌 안으로 사라졌다. 


그때부터였다. 가게에 들어올 때 나를 쳐다보던 여성이 본격적으로 나를 ‘구경’하기 시작한 것이. 


여성은 바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흘낏흘낏 몸을 돌려 나를 구경했다. 옆에 앉아 있던 남성이 손을 들어 제지해도 잠시뿐, 다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내가 뭔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혹은 입고 있는 옷에 뭔가 탈이라도 난 것일까 고민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옷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미 런던에서 몇 번이고 입고 다녔던 옷이었다.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들어와서 주문을 넣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음식이 나오자 여자의 ‘구경’은 더욱 노골적이 됐다. 내가 치킨 윙을 집자, 아예 바 테이블에서 등을 돌려 대놓고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정말 말 그대로 내가 먹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남자도 어느 순간부터 여자를 말리지 않고 있었다.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치킨 윙을 뜯으며 나도 여자를 쳐다봤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면 와서 말하겠지, 라는 심정으로 여자를 대놓고 노려봤다. 

여자는 눈이 마주쳤음에도 자신의 불쾌한 호기심을 거두지 않았다. 여자를 계속 쳐다보며 치킨을 뜯고 있자니 비위가 상했다. 고개를 먼저 돌린 건 내 쪽이었다.

대신 나는 카메라를 들어 여자를 찍었다. 너처럼 대놓고 인종차별하는 인간, 나도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뒤틀린 마음이었다. 잘못된 행동임은 알지만 뉘우치고 싶지도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바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 돌아서며 여자를 째려봤다. 

가게에 나오자마자 실수로라도 이곳에 다시 방문하지 않기 위해 간판 사진을 찍었다. 직원도 여자가 나를 구경하고 있는 걸 발견했으나, 제지하지 않았었다. 이런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저 가게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별 일이 아니었던 걸까?  



사진을 찍고 가게와 반대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흘렀다. 너무 서러웠다. 내가 왜 멀리까지 나와서 이런 경험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서러움이 몰려왔다.

길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얼른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었던 마스크를 다시 썼다. 내가 울었다는 사실을 이 도시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한국이 너무 그리웠다. 이런 일을 겪을 필요 없는 내 나라로 당장에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한국은 너무 먼 나라였다. 어차피 당장 되돌아가고 싶다는 내 바람은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날의 일기]

- 3. 20.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오기까지-


서럽다. 그렇다. 난 지금 서럽다.

서러움의 감정이 너무 많이 쌓여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것 같다.

세상, 정말 ‘세상’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인종차별. 나를 ‘구경’하는 사람들. 나를 ‘경계’하는 사람들. 

내가 뭘 했길래?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됐어. 됐다. 이상한 생각만 늘어난다. 

이번 여행에서 이런 일이 계속될 거란 것은 당연하니까.


주변을 믿지 못하고 믿을 이유도 없다. 안심할 필요도 없다.

이 여행의 바탕은 이것이어야 한다.


어쩌면 나는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나를 쳐다보는, 구경하는 사람들과.


나 말고 버스에 동양인 몇 명 더 있었는데. 

그럼 당신들은 그 사람들도 그렇게 쳐다보는 건가요?


비정상적이네요.

비상식적이네요.


내가 싸워야 하는 것이 그런 거라면,

나도 똑같이 나가야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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