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Oct 25. 2022

최악의 날 1 : 런던에서 만난 변태xx


최악의 날이라고 해서, 그날의 시작까지 최악인 것은 아니다.

배낭여행을 떠나는 여자에게는 믿고 싶지 않지만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여행자 중 ‘동양인 여성’의 포지션은 그 어떤 인종보다 가장 약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아닌 척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성차별이 교활한 모습으로 곳곳에 존재한다. 심지어 인종차별은 무식한 모습으로 숨기지도 않고 다가온다. 이런 곳에 홀로 떨어진 집 없고, 돈 없고, 일행 없는 한국에서 온 20대의 여성? 짜증 나지만 온갖 드러운 꼴은 다 볼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그 드러운 꼴을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 예상치 못 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칠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동시에 절대로 겪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과한 우려로 끝나길 바랬다. 이 여행이 끝날 때쯤, 이 기우로 만들어진 피로감을 내려놓으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미리 여기서 밝히겠다. 나는 영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 웬 변태 새끼한테 잘못 걸렸었다. 어두운 골목이나 사람이 많은 술집 같은 데를 간 거 아니냐고? 아니. 나는 내가 묵었던 숙소에서 그 범죄자 새끼를 만났다. 환한 조명과 사람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복도와 락커룸에서.


이 경험은 글의 마지막에 짧게 등장할 예정이지만, 혹시나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가 묻어 두었던 최악의 기억을 다시금 끄집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나의 경험으로 타인의 상처를 후집어 내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가장 솔직하고 밑바닥에 가까운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니, 혼자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라는 서툰 한 마디를 건네기 위함이니까.



광란(?)의 밤을 함께 보냈었던 나의 룸메이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누군가는 집으로, 누군가는 유학 중인 곳으로, 누군가는 다음 여행지로, 누군가는 클라이언트가 부르는 곳으로 떠났다. 헤어지기 전, SNS를 교환했기 때문에 지금도 가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곤 한다. 다행히도 런던에서 헤어질 당시와 다름없이 여전히 자유롭게 잘 살고 있는 듯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속담만큼 외국인 친구들에게 적합한 말도 없다.


숙소 앞의 식당에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로 아침을 깨웠다. 해쉬브라운, 소시지, 토스트, 베이컨, 베이크드 빈즈… 영국의 아침밥상은 한국 못지않게 무거웠다.

접시를 비운 뒤, 나는 우렁찬 목소리로 잘 먹었다는 인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힘차게 내셔널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먹고 열심히 움직이지 않으면 방금 전 먹었던 베이컨이 그대로 내 배에 붙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때 만들어진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하루 종일 힘내야 하는 일정이 있을 때는 조금 일찍 일어나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해 먹는다. 별 것 아닌 경험들은 때때로 이처럼 삶의 부품 중 하나를 완전히 교체해버리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쌓여 있음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며칠 전에 한 번 다녀왔었다. 하지만 갤러리가 워낙 넓어서 반 정도밖에 보지 못 하고 폐관 시간이 되어 나와야만 했었다. 다행히 무료입장 갤러리라 다시 오면 된다는 생각에 큰 아쉬움은 없었다.

나는 오늘 저녁 런던을 떠나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내셔널 갤러리에서 마음껏 그림을 보고 나오기로 했다.


계단을 올라가자 넓은 홀이 나타난다. 홀의 벽을 따라 벽의 반을 메우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고, 그 앞으로 학생과 선생님이 둥글게 앉아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들의 품 안에는 모두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연필, 콩테, 색연필 등 본인에게 편한 도구를 이용하여 눈앞의 명화를 크로키하는 중이었다.


나의 열등감과 질투심은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더 깊게 타오르곤 하였다.

인터넷 화면이 아니라 진짜 명화를 크로키하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웠다. 이들이 무료로 세계적인 명작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곳에 산다는 게 샘이 났다. 이 사소하고 작은 경험의 차이가 나중에 가서 어떤 격차를 만들어낼지 알기 때문에, 내가 이곳에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이 감정들은 전부 소용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이미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유학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은 있었지만,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 공부에 대한 목마름은 있었지만, 그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게 그림은 아니었다. 명화를 수업교재로 쓰는 이 미대생들이 부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미대생들과 같이 공부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라는 나무의 밑동을 흔드는 불안함과 위태로움이 어디서부터 오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이 흔들림을 멈출 수 있는지 이 여행에서 찾아내야 했다.




내셔널 갤러리에는 내게 영감을 주는 그림들이 많았다. 그 그림들에 대한 감상을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어 나왔다. 이것도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단 한 톨의 감상도 빼놓지 않고 적어 내려갔다.


갤러리에서 나온 뒤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창가에 앉아 사람 구경하며 멍 때리기 좋아 보이는 카페였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커피를 받아 통유리창 앞의 테이블에 앉았다. 와이파이 연결을 위해 설정란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화면 위에 뜬 와이파이의 이름을 다시 읽었다.


‘BrexitSucks’



… 그래요. 그렇군요. 이렇게 되어 정말 유감입니다. 내가 방문하기 1년 전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찬반 투표가 이루어졌었다. 모두가 알듯이 찬성표가 미묘하게 과반수를 넘겼고(어라?) 국민의 반이 반대한 것과 마찬가지인(이런 비슷한 상황, 얼마 전 한국에서도 본 거 같은데) 브렉시트가 통과됐다.


내가 현재 밟고 있는 땅임에도 남의 나라라는 생각 때문인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전 세계의 국가들이 얼마나 긴밀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때 알았더라면… 와아파이의 주인을 찾아 대화라도 한 마디 했을 텐데. 너희 때문에 우리도… 조금 그렇게 됐다. 알고는 있어라.


커피잔을 비우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 에든버러 버스 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 핸드폰을 충전하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다.



라운지 콘센트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나는 콘센트를 찾아 내가 묵었던 방과 락커룸을 이어주는 복도에 앉았다. 복도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많았고, 짐을 보관해 둔 락커룸도 시야에 들어오기에 핸드폰을 충전하기에 안성맞춤인 자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 변태 새끼가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기 시작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그냥 술 먹고 정신머리 없는 놈인 줄 알았다. 눈도 풀려 있고 기운도 없어 보였으니까. 그러다 곧 이 새끼가 계속 내 주위를 맴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싸한 기분은 싸이언스였지만, 기분대로 행동했다가는 대책 없이 불리한 상황에 처할 게 뻔했다.


나는 그 즉시 연락이 닿는 모든 사람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가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통화 중이란 걸 어필해야 했다. 하지만 한국은 현재 늦은 새벽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밤샘 작업 중이었을 프리랜서 친구들도 그날은 일찍 잠든 듯했다.


당연히 올 줄 알았던 답장들이 단 하나도 되돌아오지 않자 슬슬 불안해졌다. 핸드폰 충전이고 자시고 당장 떠나야 하나, 싶었을 때 대학 때 알게 된 오빠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빠는 며칠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늦은 시간까지 식장을 지키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급하게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 상황을 설명했다. 아직도 근처에서 얼쩡 거리고 있는 저 미친놈이 들을 수 있게 큰 목소리와 강한 어조를 내뱉었다.


하지만 저건 진짜 잠재적 범죄자 쓰레기 새끼였다. 그 미친놈은 풀린 눈을 하고 실실 웃으며 자신의 바지 앞섬을 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좆됐음을 느꼈다. 정말 말 그래도 좆됐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저건 애초부터 이런 방식이 통할 새끼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러 락커룸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계속해서 통화 중인 상태였다. 오빠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가방을 대충 걸쳐 메고 뒤를 돌았다. 아뿔싸. 이 새끼가 나를 따라 들어와 내 뒤에 서 있었다.

축축하고 불쾌하고 음침하고 토할 것 같은 분위기가 삽시간에 코를 타고 복부까지 밀려내려 왔다.


나는 눈앞의 그 새끼를 밀쳐 버리고 라운지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리셉션에 서 있던 남자 직원에게 달려가 방금 전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했다. 아직도 손끝에 그 새끼의 푹신하고 축축했던 옷의 감촉이 생생했다.


설명을 들은 직원은 무전기를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내 귀에는 통화 중인 핸드폰이 붙어 있었다. 오빠는 이 모든 상황을 전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내 목소리가 잠잠해지자 무심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너 영어 잘한다.”


… 진짜 열받아서 개 쌍욕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그냥 이 인간이 나보다 영어를 못 해서 못 알아들은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인서울 4년제를 졸업해서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준비 중인 인간도 방금 전 직원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상황설명을 하던 내 영어를 못 알아들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지? 그런 거지? 평생 그런 거였다고 치자?


직원은 리셉션으로 돌아와 나에게 다시 한번 남자의 인상착의를 물었다. 안타깝게도 그 직원은 남자를 찾지 못했다. 어디로 빠져나간 건지, 아니면 다른 방에 숨어 들어간 건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CCTV를 통해 남자를 계속 주목하다가 조치를 취하겠다 말했다.


나는 잠깐 동안 함께 방을 썼던 여자들을 떠올렸다. 광란의 파티를 보냈던 친구들의 빈자리를 채운 일본인 여행객들이었다. 우리는 가까운 나라에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대화를 나눴다.


그 미친놈은 잡히지 않았다. 그 새끼가 그 일본인들에게도 해코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방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그 새끼를 잡겠다고 계속 이곳에 죽치고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에든버러로 가는 버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곳을 떠나야 했다.


나를 도와주었던 직원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는 내내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치욕스럽고 질척거리고 비겁한 기분에서 벗어낼 수가 없었다.


나 혼자 빠져나온다고 되는 걸까? 나 하나 제대로 건사하며 사는 거에 다행이라 생각해야 되는 걸까?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한국을 떠나 이곳에 왔다. 여행에서의 여정들이 내 안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거라 합리화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도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멀리… 멀리… 이 불쾌한 기분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멀리… 도망칠 수 있을 것처럼.


이전 23화 해리포터 키즈의 옥스포드 방문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