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현재 살고 있는 문명 자체가 증거입니다.
그런데 독서를 하기에는 어려운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독서를 하지 않은 자신이고 그다음은 자신을 제외환 환경이 독서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이렇게 독서가 어려운 일이기에 독서를 하는 공간에서는 온 정신을 집중하도록 조용히 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인 듯합니다.
아무리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도 일정한 교육을 받았다면 도서관에서는 기본적으로 조용히 합니다. 떠들던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문제집을 푸는 모습을 보면 조용해집니다. 두 욕구, 지적 능력의 증진과 즐거움을 찾는 본능적 두 욕구 사이에서 도서관이란 공간에서는 전자가 이기는 현상이 자주 보입니다. 물론, 도서관의 공간에 대한 학습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앞서 제시한 현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중등교육 중 고등학교 생활은 온전히 대입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 수 있는 가정 배경이 부유한 학생(유명 식당의 자녀 등)과 학업성취를 포기한 학생을 제외한다면 안타깝게도 대입을 위한 고등학교 생활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 상황에서 책과 관련하여 신기하게 목격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우선 '돼지책'입니다. 이 동화책은 매우 오래된 동화책이며 가정 내 여성의 희생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지만 아무래도 초등학교 사서 선생님들 다수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오래되었어도 꼭 다루시는 듯합니다. 아마도 일을 하시면서 가사를 담당하시기에 책의 내용에 더욱 공감이 가시는 듯합니다. 이 책은 동화책이 많지 않은 고등학교에서도 종종 보이는 책입니다. 동화책을 활용한 교사 연수에서 활용된 경우도 있고 교사들의 네트워크에서 자주 언급되던 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낡아서 잘 보지 않지만 이렇게 널리 알려진 책은 초등학생 시절 학생들이 책을 '봤던 또는 활동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행평가를 하거나(국어) 다른 교과에서 수행평가를 할 때 책을 읽어야 한다면 이미 자신이 초등학교시절에 동화책 듣기를 하거나 기타 활동으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런 동화책을 활용해 수행평가에 참여합니다. 만화책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지만 동화책은 성인이 봐도 좋다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인지 수행평가 반영에 문제가 없습니다. 또는 대학에 진학하려 하지 않거나 진학하려는 대학에서 세밀한 구분이 필요하지 않기에 이러한 기록들이 영향력이 적은 경우라고 추측됩니다. 학생에게는 이미 이야기를 알기에 수행평가 활동지를 작성하고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보입니다.
다른 경우는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입니다. 오늘 학생이 찾은 책이 이것이기에 제시한 것이지 누군가에게는 '이기적 유전자'이고 누군가에게는 '침묵의 봄'입니다. 이 경우는 대입을 위해서 책을 읽는데 자기 관심분야의 책을 선정하고 그것만 반복해서 읽는 것입니다. 마치 학습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마지막 독서를 반복해서 활용한다면 생기부가 필요한 학생들은 유명한 저작을 자신의 관심분야와 연계하여 선정하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읽습니다. 둘 다 책을 읽는 시간을 아끼기 위함입니다. 그 이유는 입학사정관의 입시설명회를 통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생기부를 활용한 수시에서 독서활동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교과에서도 그 책을 활용하고 반복적으로 제시하여 책의 내용에 대해 답변을 못하는 문제 상황을 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학사정관들은 발췌독한 책으로 면접에서 떨어진 사례를 안내합니다. 이를 들을 교사는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그런 결과가 관심 분야의 책을 선정해 계속적으로 활용하는 독서 문화를 만든 듯합니다. 이런 경우 해당 책이 없을 때 '화학분야 책은 어떠니 해당 번호 위치에 비슷한 주제별로 모여있어' '환경분야 책은 어떠니'와 같은 조언은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이미 읽었던 그 책이기에 다음에 올 때 볼 수 있게 해당 책을 찾아달라고 합니다. 내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기부를 위한 독서가 아닌 독서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례 중 다수가 학업에 관심이 적거나 휴식을 위한 방식으로 독서를 선택한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부분 문학책을 읽어 지식정보를 축적하는 양이 적은 경향성을 보입니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많은 아이들이 '책이 없네, 볼 책이 없네'라고 합니다. 그 상황을 보면서 학교도서관은 일정 규모만 된다면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 내외의 도서 구입 예산이 책정되는데 매년 그렇게 책을 사는 개인이 없는데 과연 정말 볼 책이 없는지가 의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말은 '내가 읽었던 책이 낡아서 폐기가 되어서 이 도서관에 없네'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독서 문화를 만든 것은 대입과 대학 그리고 교수들입니다. 현재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도 유교 문화를 발견하고 있듯이 우리는 대학과 대입 그리고 교수의 영향력 아래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이는 마치 유교의 영향력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는 경우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낡은 자료는 버리고 최신 자료는 계속 보충하고 있습니다. 매년 주어진 예산을 꽉 채워서 책을 구입하고 낡은 책을 폐기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단순한 이 활동이 '돼지책'과 '이기적 유전자'를 넘어 다양한 가능성이 학생들과 만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