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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 Sep 24. 2021

"반드시 둘이 같이 노래해야 해요."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결혼한 지 6주가 된 부부가 택시를 탄다. 대부분의 연인들이 그렇듯 특별한 연애였지만, 결혼 후 또 대부분의 결혼이 그렇듯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의 시기를 겪는다. 택시를 타고 약간의 '토론'을 벌이는 두 사람 사이에 택시 기사가 끼어든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냐고 그리고 다짜고짜 노래를 좀 하느냐고 묻는다.


"둘이 같이 노래해야 해요.”


노래를 못한다는 두 사람에게 그건 핑계가 안된다고, 아무 노래나 그냥 부르라며 기사는 자신이 먼저 노래를 시작한다. A-B-C-D... '우스꽝스러운' 알파벳 노래를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어 부른다. H-I-J...


밤의 택시 안에서 논쟁을 벌이다가 홀린 듯 택시기사를 따라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 그런데, ‘엄청 우스꽝스러운 노래라 약간 바보같이 느껴질지도’ 모를 그 노래를 함께 부른 후 두 사람은 '뜻밖에 기운이 솟는 느낌'을 받는다.


"반드시 노래를 해야 해요...

일주일에 한 번, 꼭 같이 노래를 해요.

같이 그렇게 즐기면

사이가 돈독하게 유지될 거예요.”


두 사람은 그렇게 그들의 사이에 '꼭 필요한 요소인데 부족'했던 것을 그날 그 택시 기사가 알려준 방법에서 찾는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종교적 의례와 같은 것.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온 세계의 중심에 있는 헌신과 기쁨을 정기적으로 재확인하는 절차'를.


그 뒤에 부부는 정말로 노래 의식을 계속한다. 토요일 아침마다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부른다. 서로에게 화가 났을 때도 정신없이 바쁠 때도. 떨어져 있으면 전화로라도. 함께 부르는 우스꽝스러운 노래로 '마음이 풀어지고 유대감이 생기고 자신을 연약한 존재로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의 일부'라고 느끼게 되었다고.



샤샤 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에 소개된 에피소드다.



우리의 삶에 ‘의식(ritual)’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는 책. 종교나 문화 안에서의 전통적인 의식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그냥 흘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말하는 '의식'의 범위는 넓고도 넓다. 거창한 의식만이 아닌, 우리 생활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아주 작은 그것들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그것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조근조근 말하고 있다. 어서 저마다의 의식을 만들어 보라는 듯.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이 노래 일화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당장 따라 해보고 싶어졌다. 나라면 누구와 어떤 노래를 어떤 표정으로 부를까. 어느 요일에, 어떤 시간에 불러야 하나. 그러고 나면 정말로 두 사람처럼 그런 신기한 기분을, 유대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삐걱이던 관계가 조금은 정돈되고 제자리를 잡을지도.

 

그나저나 저자가 만난 택시 기사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언젠가 나도 그런 멋진 ‘의식’ 하나를 창조해 누군가와 나누는 날이 온다면 좋겠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 어른이 된 토토가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보며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짓던 그 장면. 필름 안에는 알프레도가 신부의 검열로 삭제한 온갖 영화의 키스 장면들이 이어 붙여져 있었다.

책에서 멋진 장면들, 때로는 부럽고 뭉클하고 아프고 사랑스러운 장면들을 찾으면 마음속에 오려둔다. 그렇게 되고 싶고 그렇게 만나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은 장면들을 언제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모아둔다. 그리고는 천 피스짜리 퍼즐 조각처럼 마음의 상자 속에 모아둔다. 언젠가 이 모든 장면들을 편집해서 붙이면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그걸 믿으며 나는 오늘도 당신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장면들을 수집하고 있다. 책에서든 영화에서든 우리 일상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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