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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star 씨애스타 Oct 30. 2022

수잔 발라동을 아시나요?

eye Magazin 03. '보이는 나’와 ‘보여지는 나’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우리가 배운 그림의 역사 주요 사조 화가들과 미술 교과서 그림들이 모두 남성이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설마?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화가의 이름 다섯 명을 생각해본 뒤 그 안에 여성 화가가 있는지 보라. 누군가 여성 화가를 단 한 명이나 두 명이라도 말하라고 하면 누굴 말할 수 있을까?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람에 나도 포함된다. 우리나라 화가라면 신사임당과 나혜석 외에 떠오르지 않는다. 동양, 서양 화가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그림은 남성의 영역이었다. 그래서일까? 남성이 그린 여성의 초상과 누드는 참 많이 보았는데, 여성이 그린 남성이나 여성의 초상과 누드는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 내게 수잔 발라동의 발견은 놀랍고 기쁜 일이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로트레크, 그의 그림 중에서도 충격을 받았던 <세탁녀>의 모델이 바로 발라동이기 때문이다.


발라동은 1865년 9월 23일 프랑스 중부 오트비엔에서 가난한 세탁부의 사생아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 파리로 이사해 6살 때부터 어머니의 세탁 일을 도왔고, 11세까지 학교를 다닌 이후 모자 제조 가게, 장례식 화환 만드는 공장, 야채 파는 시장, 서빙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스스로 생계를 해결해야만 했다. 1880년 15세 때 서커스단의 곡예사로 활동 중 공중 그네에서 떨어져 다시는 곡예를 할 수 없게 되자 생계유지가 어려운 그녀는 18세 때 프랑스 화가 피에르 퓌비 드 샤반의 모델이자 당시 관례상 어린 연인(정부)이 된다.


피에르 퓌비 드 샤반이 그린 발라동


발라동은 자신의 육체에 화가가 감탄한다는 것과 자신이 작품 속 일부로 기여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으나 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깨닫게 되었다. 샤반에게 자신이 그린 드로잉을 몇 점 보여주었다가 관심을 갖지 않자 그의 곁을 떠난 후 르누아르, 드가, 로트레크 등의 모델이 되었다. 화가들이 자신을 그릴 때 그들의 방식을 가까이에서 눈여겨보면서 자화상과 자신의 누드를 그렸던 발라동은 르느와르에게 그림을 보여준 뒤 바로 쫓겨났다. 그 후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어 아들 위트렐로를 낳는다. 그녀는 아들에게 르느와르가 아버지라고 했지만 그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고 한다.

 

르느와르가 그린 발라동


드가가 그린 수잔 발라동


왼쪽부터 모딜리아니, 들라쿠루아, 에락사티가 그린 발라동


로트레크가 그린 발라동


발라동을 그린 화가들의 그림과 발라동이 그린 자화상과 누드를 비교하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모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차이가 크다. 사진과 그림을 비교해보면 화가들은 자신만의 미감과 개성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르누아르는 어린 소녀처럼 부드럽고 둥글지만 풍만하게 그리고, 모딜리아니는 세로로 길게 그린다. 모델이 누구든 화가들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발라동이 모델이지만 그녀의 느낌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로트레크는 발라동의 지쳐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렸고, 결국 그녀는 로트레크에 대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로트레크의 소개로 드가에게 그림을 배운 그녀의 그림은 그 전 화가들이 그려준 발라동의 그림과는 달랐다. 개성 있고 당당해 보이는 그림은 남자들에 의해 이쁘거나 풍만하게 그려진 것이 아니라 강하고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그녀의 굴곡진 삶처럼 표현하였다. 그녀의 누드는 여성의 관점에서 그렸기 때문에 관능적이거나 아름답게 미화되기보다는 일상적인 순간을 잘 포착한 자연스러운 그림으로 남성들이 그린 그림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잘 그리면 반칙> 그림방을 하게 된 것과 사람들에게 그림을 알려주는 것은 이런 이유다. 다른 사람들이 그려주거나 말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그리고 표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림방을 시작하는 분들은 대부분 중학교 이후 그림을 그리지 않았거나 미술이 미나 양, 혹은 이번 생에는 그림 그리는 것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림을 못 그린다는 규정은 누가 한 것일까? 다른 사람의 눈이고, 평가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불행히 선생님이나 부모님 혹은 친구들의 말을 너무 믿으면서 성장한다.


발라동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으며 세탁녀에 곡예사, 화가의 모델이자 정부였다. 화가들의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웠지만 몇 백 점의 그림을 남기면서 화가로 이름을 남겼다. 지금도 자기 누드를 그리고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은데, 하물며 백여 년 전에 셀프 누드라니... 발라동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다른 누구의 평가에 의해 자신을 규정하는 일 중에 그림을 못 그리는다는 생각은 10분이라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시도에서 깨진다.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없고, 안 그린 사람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믿지 못한다면 수잔 발라동의 삶을 보고, 그녀의 그림을 보라!


아래 사진과 발라동의 자화상 보라. 사진 위 그림들은 모두 다른 화가가 그녀를 그린 것이다.  '보이는 나'와 '보여지는 나'의 차이는 분명하다. 사진보다 그림은 더 왜곡되어 기록이 된다.


수잔 발라동의 사진과 그녀가 그린 자화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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