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변호사의 패션(3)
노노인 패션과 딱 정석인 패션에 이어서, 로펌 변호사가 입기에는 약간 애매모호한 패션도 있다.
전도연 배우님, '굿와이프'에서 전도연이 맡은 역할을 좋아해서 부정적인 코멘트를 하고 싶진 않은데, 하필 이 드라마에서 전도연님이 입고 나오는 의상에 애매모호한 구석이 많네예 ㅜㅜ
재판 중인 전도연은 흰 트렌치코트에 칼라 달린 흰색 블라우스, 검정 스커트를 입고 있다. 로펌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는 차림이었다면 문제 없는 패션이다. 하지만 법정에 출정하는 차림으로서는 좀 어색하다.
정장이라고 해서 다 오케이인 것이 아니다. 법정에서, 회의실에서는 코트는 벗고 자켓은 입는 것이 룰이다. 재판하러 법원에 왔을 때, 변호사들은 대체로 법정 밖 복도에서 미리 코트 (트렌치코트이든 겨울 외투이든) 를 벗어 들고 들어간다. 법정 안에서 코트를 벗느라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면 주목 받기 때문이다.
로펌 변호사들이 택시보다 회사 차량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겨울에 한 손에는 무거운 겨울 코트 결쳐들고, 다른 한 손에는 기록이 든 가방을 들고 법정에 들어가, 코트와 가방을 내려놓고 주섬주섬 기록과 펜을 꺼내드는 건 여간 거추장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코트 정도는 미리 차에 두고 내리는 게 편하다.
어쨌거나 회의 할 때나 재판 할 때에는 코트는 벗고 자켓은 입어야 한다. 변호사가 난방이 고장난 것도 아닌데 코트 입고 앉아 있으면 보기에 정말 어색하다. 마치 모자 안 벗은 느낌...? 자켓 없이 셔츠만 입고 있는 것도 (일단은 법정에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고) 예의에 어긋난다.
한번은 회사 안에서 1년차 여자 변호사님과 파트너 변호사님이 재판하러 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1년차 변호사님이 자켓 없이 네이비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걸 본 파트너 변호사님이, "뫄뫄 변호사, 자켓 없어?" 하시면서 방으로 돌려보내셨다. 자켓 입고 나오라고.
위에서 전도연님이 흰 트렌치코트에 자켓 없이 흰 블라우스, 검은 정장 스커트를 입고 있는 것은 그래서 어색하다. 신입 변호사 역할이라서 그렇게 나왔을 수도 있지만, 동행한 파트너 변호사님이 있었다면 옷차림 코치를 하셨을 수도 있다. 오히려 옆에 앉은 의뢰인이 더 변호사 차림 같음.
그 다음 컷에서도 마찬가지다. 네이비 정장 원피스는 그 자체로는 오피스 웨어로서 손색이 없다. 이런 옷은 회사에서 회의할 때 입어도 괜찮다. 하지만 역시 법정에서는 (나만의 기준인지는 몰라도) 자켓이 없어서 좀 적절하지는 않게 느껴진다.
전도연처럼 입고 재판하시는 변호사님들도 보긴 봤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약간 자유롭게 입고 나타나시는 분들은 로펌 소속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금감원 같이 공적기관을 대표해서 출정한 사내 변호사님들은, 회사 내 드레스 코드가 로펌 보다는 융통성이 있어서 그런지 좀 더 융통성 있게 입으신다는 인상이었다.
사족으로, 변호사 옆에 앉는 의뢰인의 차림에도 제약이 있다. 그냥 민사 재판에서 당사자로서 원·피고석에 앉을 때에도 왠만하면 갖춰입고 나타나는 게 좋다. 그게 재판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하물며 혐의를 받아 기소된 피고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범죄자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다면 격식있게 입는 게 무조건 본인에게 좋다.
전도연님 옆에 앉아 있던 팔 다친 의뢰인의 패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분은 중절모에, 하와이안 셔츠에, 와인색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중절모와 깔맞춤 (그래도 자켓은 걸쳤네예.) 직업이 사무직이 아닌 분들은 정장을 입을 일이 없으므로 그냥 단정하게 평상복을 입으시면 된다. 재판부도 다 이해한다. 하지만 직업이 로펌 파트너 변호사인데, 게다가 피고인 신분인데 하와이안 셔츠 입고 나타나서 모자도 안벗으면 적당한 차림은 절대 아니다.
저 분이 엄청 괴팍하고 제 멋대로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일부러 의상팀이 저렇게 입힌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내 의뢰인이 평소에 회의할 때도 하와이안 셔츠 입고 오고 엄청 나대는 성격이라면, 재판 전에 미리 강력하게 조언을 할 것 같다. 제발 재판 때는 점잖게 입고 오시고 제가 사인을 드리기 전에는 말씀을 삼가시라고.
굿와이프 팀에게 미안하므로 이제 다른 예도 살펴보자. '슈츠'의 박형식은 운동화를 신는 것만 빼면 항상 칼정장을 입으므로 매우 양호하다.
색깔만 빼고. 브라운 빛이 도는 밝은 쥐색이나 밝은 블루 컬러 정장은 로펌 안에서는 좀 튄다. 로펌 드레스 코드는 무척 보수적인 편이라서, 남자 변호사님들 중에 검은 와이셔츠를 입는 사람도 거의 없다. 십중팔구는 흰 와이셔츠+어두운 색 정장+갈색 아닌 구두를 착용한다.
그래서 검은 정장 일색인 회사 엘레베이터 안에서 박형식을 보았다면, 확실히 튀긴 할 것 같다. 내 눈에는 박형식 같은 변호사님이 우리 회사에 있다면 '되게 패셔니스타시다~' 하면서 부러워했을 것 같은데, 로펌 자체가 워낙 튀면 안된다는 분위기이다 보니, 변호사들 스스로 밝은 색 정장은 꺼려 한다.
박형식이 입은 것 같은 조금 밝은 색 정장은 금요일 같이 약간 분위기가 가벼울 때, 연휴 직전에 (즉 파트너 변호사님들 많이 안 계실 때)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