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변호사의 패션(2)
≪로펌 변호사의 패션≫에서 '이렇게 입어서는 파트너 변호사님에게 한 소리 들을 것 같은' 차림을 소개했었다. 로펌 변호사의 Don'ts 를 알아보았으니 이제는 Dos를 알아볼 차례.
로펌 변호사에게 가장 정석인 옷차림은 칼정장이다. 좀 재미 없기는 하지만, 면접 보러 갈 때 입을 만한 옷으로 입으면 안전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나오는 이보영은 로펌 소속은 아니지만, 너무나 정석대로 입었기 때문에 안고를 수가 없었다. 어두운 색 정장에 흰 셔츠, 어두운 색 서류가방. 옆에 있는 윤상현도 마찬가지로 딱 표준적인 차림이다. 특히 재판하러 갈 때는 이렇게 입는 게 이상적이다.
두 사람이 달고 있는 변호사 배지는 필수가 아니다. 오히려 로펌 변호사들 중에는 안 다는 사람이 99%인 것 같다. 1년차 때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산 내 배지는 아마 내 회사 책상서랍 어딘가 깊숙이 들어있을 것이다.
내가 본 로펌 드라마 중에 변호사들이 가장 칼정장을 잘 입고 나오는 드라마는 '슈츠' 였다. Suits 라는 원제 자체가 '소송'이라는 뜻도 있지만 '정장'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에 의상 컨셉을 그렇게 잡은 건가? 사진에 보이는 박형식과 장동건의 차림새는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어두운 정장에 흰 셔츠, 검은 색 가방. 타이는 어떤 걸 매도 다 괜찮다. 박형식은 정장식 백팩을 착용하고 나오는데, 서류가방보다는 덜 흔한 차림이지만 이것도 훌륭하다. 나도 서류가방 들고 다니다가 허리가 아파서 투미 백팩으로 바꿨다.
재판하러 갈 때는 더더욱 이런 칼정장을 입어야 한다. 자켓은 필수, 구두도 필수. '슈츠에서 발목 위까지는 완벽하게 입은 박형식이 정작 신발로는 흰 운동화를 신고 재판에 다녀오는데, 내가 아는 법조계 상식으로는 진짜 안될 말이다.
'하이에나'에서 김혜수와 주지훈이 팀을 이뤄 변론하는 장면이다. 주지훈이야 뭐 말할 것도 없이 완벽한 차림이고, 김혜수의 차이나 칼라에 버튼업 정장도 재판용으로 손색이 없다. 김혜수는 송&김 안에서는 상당히 화려하고 강렬한 색을 입지만 유독 재판 장면에서는 보수적으로 입고 나온다. '잘 구현했다'고 생각한 지점.
'굿와이프'에서 로펌 대표로 등장하는 김서형의 패션도 너무나 좋다. 로펌 안에서 입어도 되는 의상, 재판할 때 입는 의상을 잘 구별해서 입고 나온다. 이 재판 장면에서는 짙은 청색 바탕에 가는 흰 스트라이프 자켓, 안에는 흰 셔츠를 받쳐 입었다. 매우 프로페셔널하다.
'굿와이프'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인 전도연보다 조연인 김서형이 더 TPO에 맞게 입고 나온다(고 생각한다). 다음 편에 쓰겠지만, 전도연의 재판 의상은 좀 대형 로펌 변호사처럼은 보이지 않는 게 많다.
재판에 가지 않는 날, 회사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날에는 좀더 편하게 입어도 된다. 로펌에서는 각 변호사마다 개인 방을 주기 때문에, 남의 눈에 띄지만 않는다면 자기 방 안에서 어떻게 입고 있든 자유다. 퇴근시간 후 밤에 반바지에 티셔츠로 갈아입고 일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근무시간 중에는 로펌의 드레스 코드를 지켜야 한다. 자기 방에서만 일한다고 하더라도, 회의에 가야 할 때도 있고, 출퇴근할 때나 화장실 갈 때, 밥 먹으러 나갈 때 남의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하이에나'의 전석호처럼 겨울에 셔츠 위에 가디건이나 스웨터를 입는 남자 변호사님들은 되게 많다. 이 정도는 로펌의 드레스 코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좀 윗분들하고 하는 회의나, 의뢰인과 하는 회의에 들어갈 때는 가디건을 벗고 혹은 가디건 위에 자켓을 걸친다.
파트너 변호사님들은 아랫사람들하고만 하는 내부회의에는 그냥 가디건 입은 채로 들어가시는 것 같음.
진희경, 김혜수, 김서형 배우님들 모두 옷차림이 상당히 파격적이죠? 이들의 극중 공통점은 로펌의 대표 아니면 EP (Equity Partner) 라는 점이다. 안그래도 여자 변호사님들에게는 디자인이나 색깔에 있어 선택의 폭이 좀더 넓은데, 대표 변호사님이나 EP 정도 되시면 강렬한 색깔과 화려한 디자인이 용납된다.
다만 여성 파트너 변호사님들의 (상대적으로) 파격적인 패션도, 로펌 안에서만 괜찮은 것이지, 재판하러 법정에 갈 때는 아무래도 괜찮지 않다. 로펌보다도 더 보수적인 법원...
그럼 여자 어쏘 변호사님들은 회사 안에서 어떻게 입을까? 확실히 남자 변호사님들보다는, 시중에 파는 정장 디자인이 더 다양해서 그런지, 의상 선택의 폭이 넓다. 하지만 여자 파트너 변호사님들에 비해서는 더 칼정장에 가깝게 입어야 한다.
'하이에나'에서 활약하는 박세진은 회색 정장에 분홍 셔츠를 입었다. (달고 있는 배지는 대한변협 것이 아니고 송&김 것인 듯.)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다. 웬만한 정장식이라면 다 되는 것 같다. 남자 변호사님들이 사무실 안팎으로 어두운 정장+흰 셔츠를 입어야 하는 것보다는 훨씬 자유롭다.
'굿와이프'에서 전도연은 로펌에 막 입사한 신입 변호사로 나온다. 사실 '굿와이프'의 전도연의 법정 패션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사무실 안에서 입기로는 전도연의 원피스 차림은 상당히 모범적이다. 어두운 색 H 라인 원피스에 검은 벨트, 흰색 코르사주, 약간의 프릴은 정장 스타일을 벗어나지 않아 아주 무난하다.
다른 직장에 비해 로펌의 드레스 코드는 꽤 엄격한 편이다. 그래서 소속 변호사들은 회사에 입고 갈 옷 + 주말에 입을 옷을 구매하느라 돈이 두 배로 든다. 회사 안에서 변호사가 멋을 내려면 색깔이나 디자인보다는 아주 작은 디테일이나 핏으로 승부 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같은 로펌 소속이라도 다른 직역 (비서, 스태프, 딜리버리 같은) 종사자들에게는 이렇게까지 드레스 코드가 엄격하지 않다. (예외라면 운전기사님들. 운전기사님들은 변호사들만큼/보다 더 갖춰 입으신다.) 그래서 몇 백명 되는 구성원 중에서 누가 변호사이고 아닌지는 옷차림으로부터 구별이 되기도 한다.
엄격한 드레스 코드 안에서도 경우에 따라 일탈이 허용되는 옷차림이 있다. 오케이와 노노의 중간 영역에 해당하는 패션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