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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lleehan Oct 18. 2018

최소한의 노력으로 유지되는 가성비 좋은 인간이 되기위해

스위치, 가성비, 커피

인간은 위계에 반응한다.

스위치 눌린 듯이 무려 37km를 이동했다. 비교적 먼 거리를 튀어나갈 수 있는 연료는 사람이었다. 사회적 성공 돈 예술 맛 멋 진심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는 발바닥에 용수철 달린 듯 훅 하고 액셀을 밟고 달려 나가게 하는 힘은 오직 사람이었다. 다른 것들은 당최 무거운 나를 움직이게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모든 행동에 납득할 이유를 만들고 또 가성비라는 현대적 개념에 맞춤형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엑셀을 밟는 일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떤 상대이건 간에 내가 더 많은 연료를 쓰고 있다는 느낌 혹은 내가 낭비되고 있다는 느낌에 나가떨어져 버리는 사람. 곧 죽어도 효율이나 가성비 없이는 꼼짝도 안 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나는 가성비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인데 상대방에게 나는 가성비 좋은 사람이 될까 봐서 전전긍긍하는데에 에너지를 과도하게 굴리곤 한다. 그래서 효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모든 걸 다 줘도 괜찮은 것이 사랑이라지만 나에게 사랑이란 영원히 순간의 쾌락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라인더가 웅웅거리며 원두가 갈리는 소리. 스팀 열고 닫는 소리. 피쳐를 툭툭 내려놓으면서 작은 우유 거품을 거르는 소리가 났다.


멍청이 바보 혹은 미친놈 혹은 맹추

호감의 이름으로 나는 얼마나 위대해지고 또 우매해졌었는지를 기억한다. 바보같이 또 몰라보는 맹추가 있고 맹추를 쳐다보는 내가 있다. 멍청이 같고 뚱뚱하다. 너무 멀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텐데 언제나 거꾸로 내가 찾아가야 하는 포지션인 게 항상 두려웠다. 찾아와 주는 것을 기다리고. 또 그런 사람을 기다려왔지만 말이다. 그래도 너무 자주 내 선택은 기다리는 쪽보다 찾아가는 쪽이었다. 처음의 시작이 어땠건 간에 끝은 항상 바보 같았던 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내가 출발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찾아갔고, 그마저도 찾아가게 해달라고 빌었고. 끝을 통보받는 것조차 굳이 먼 길을 찾아가서 내 손으로 끝을 확인하고 피 묻은 손바닥을 털어내고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었다. 나는 이런 인간으로 내가 사는 게 너무 싫다. 두렵고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바보인가 진짜 다들 바보인가 싶은 사람들만 만나서 걔네보다 더 추잡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나서야 뒤돌아 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확인하는 것이 나의 오랜 습관이자 지겹도록 반복해온 내 연애의 시퀀스였다.


계단이 많은 곳. 인간은 위계에 반응한다.



손목의 반동으로 돌려 끼운  헤드 사이로 흐르는 검은 에스프레소가 얼마나 뜨거운지 나는 안다. 그 낭만을 안다. 겨우 컵 한잔이지만 나는 그 한잔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었다. 물론 당시엔 그런 사명감 없이 절망적으로 그라인더에 원두를 뜯어 부을 때가 더 많았지만 말이다. 키보드를 두들기는 대신에 뜨겁게 달궈진 그릇들과 원두 기름을 뒤집어쓴 기계들을 청소하느라 손금 사이에 미세하게 끼인 누렇고 향긋한 불편한 체취가 남기는 낭만을 안다.


뒤돌아 생각해 잔뜩 미화시켜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때의 기억은 미화 없이 떠올리기에 아주 어렵고 고된 것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미화는 때때로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세상에서 제일 비효율적이고 가성비 떨어지는 일. 그래도 이렇게 무수히 많은 글들과 생각들을 쏟아내는 것을 보아하니 그다지 또 밉지만은 않은 짓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나의 습관은 끝까지 태우지 않는 것과

태초의 이상향

그 어떤 경험에 따른 조건이 붙지 않은 이상향

이런 바보짓 참 오랜만이지 16살 때 이후로

그럼에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바보 두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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