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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lleehan Sep 24. 2021

리트머스지

작년 여름의 기억이 때로는 습도에 반응하는 리트머스지가 되어버린 것 같다

대한민국의 사계절이 과거의 기억을 너무나 쉽게 회기시킬때 

그때 그 온도와 습도 공기가 1년의 바퀴를 돌아 또다시 내가 호흡할때

그때 그 여름은 어땠고 그때 그 한겨울은 어땠고

누구의 손을 잡고 걸었는지 누구의 손을 놓거나 놓쳤는지


가까스로 덮어두었던 사랑의 기억들은 계절의 쳇바퀴속에 쉽게 굴러가기 마련이니까

이젠 센치함을 잃고 희희낙락하던 남들처럼 흐르듯이 흘러가는 감정들이 내게는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 분기별로 애인을 정리할 필요가 없어졌을때 나는 더욱이 좋은 글을 쓸 기회가 없어졌다


바닥과 천장을 오가며 쏟아지던 감정의 곡예도 이제는 다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심지어는 내가 그랬는지 기억조차 없다. 가끔 제작년 즈음에 쓴 글들을 읽어보면 마치 다른 사람 같다

잦은 사랑의 획득과 분실의 반복 끝에 찾아오던 회의 마저도 어쩌면 빠르게 흐르는 나의 시간들을 가까스로 끊어주던 분기점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아닌 새로운 분기점을 찾기에 그것들은 낭만적이지 않다. 내 생각으로 이미 정리된 내 삶의 지향점들은 사실 따분해졌다. 어찌됐건 돈을 벌 것이고 또 버는 것에 비해 많이 써버리고 후회하게 될 것이 아닌가

숙제와도 같았던 내 사랑을 향한 먼 여행은 분기점 없는 기나긴 포장도로만이 남았다 

애타게 기다렸던 정돈된 땅을 내 손으로 쓸어보고는 그동안 내 모난 사랑의 절차가 쓸고 간 흔적이려니 한다. 큰일이다. 마찰이 없는 포장도로에는 그 어떤 것도 걷잡을 수없이 빠르게 굴러가버리겠지.

그리하여 나는 자아를 잃고 더이상 멋진 사람이 될 수 가 없나 

멋진 문장을 쓰고 멋진 그림을 그리고 멋진 이야기로 멋지게 울어내는 사람이 될 수 없나

나라는 인간은 완성에 가까워지는 충족감을 느끼는 동시에 왜 나는 다시 잃을게 없었던 그때 의 그 문장을 쓸 수가 없나

그 눈물을 흘릴 수가 없나 


다리 건너 건너 너의 소식을 전해듣지 않았더라도 참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지금도 둥근 달이 뜨면 너한테 썼던 끔찍하게 애틋하고 아리던 그 글을 다시 꺼내보면서

나지막히 웃어보였을텐데 이렇게든 저렇게든 상상 속 부재중 하나 찍어놓고서 다음날 아침 후회할텐데

미워하는 마음만으로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는 그 메모를 보면서 또 시를 한 편 썼을텐데

읽어도 더이상 아프지 않는 글을 쓰게 될 것이라는걸 그때 알았더라면 더 괴로워도 되었을텐데

그렇게나마 이따금씩 초여름에도 너를 떠올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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