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에는 반지하 주택이 등장한다. 기생충이 있기 이전에도 반지하는 비슷한 배경으로 여러 번 등장하지만 이 기생충이라는 영화에서 특수한 환경으로서의 정점을 찍는다.
반지하는 우리나라에서 가난의 상징이지만 도시건축의 역사에 있어서는 친환경적이고 진보적인 건축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에 산악지형이나 추운 지방에서 북풍을 피해 땅을 파서 집을 짓는 형태가 존재했고 현대에 와서도 에코하우스라 불리며 단열과 냉난방에 유리한 반지하 집들을 짓고 있다.
북유럽의 다양한 에코하우스
지하수가 여기저기 얽혀있고 습한 여름이 존재하는 한국에서는 건축적으로 극복할 과제가 많기도 하거니와 70년대부터 날림으로 지어댄 단독, 다가구 집합주택에서 반지하는 그저 딸린 방. 집을 지으면 하나 더 들어있는 덤으로서 가난이에게 임대해주는 저렴하고 방치된 거주환경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 라돈처럼 암반에서 나오는 환경적 요인들로 점점 기피할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건축법상 반지하는 몇 가지 기준만 맞추면 용적률에도 포함되지 않은 데다 방공호 정책까지 더해져 줄기차게 지어졌는데 이렇게 지어진 반지하가 서울 경기 지역에 30만 호 정도 남아있다. 반지하 자체가 열악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의미가 많다 보니 국가에서 최저 주거기준 주거 종합계획 등으로 꾸준히 주거의 질을 높이려는 정책을 펴고 있기도 하다.
반지하는 수익형 부동산이다.
한국의 반지하는 대부분 저렴한 임대주택이다. 빨간 벽돌의 반지하방은 상징적이기 까지 하다. 이 빨간 벽돌 다가구는 건축된 후 길게는 20~30년 정도 이들은 집주인에게 경제적으로 조금의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고 임차인에게는 저렴한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들은 어떤 의미로는 도시에서 공생해오고 있다. 앞으로도 이들의 공생관계가 가능할까?
한국의 흔한 빨간벽돌 다가구
반지하 공급은 자연도태 중이다.
예전에 지어진 대부분의 반지하는 집수정을 비롯해 습을 처리하는 건축기술이나 단열공법들이 사용되지 않았고 주기적인 수리나 기본적으론 도배장판, 크게는 누수 결로 동파 등의 민원을 해결해야 하는 데다 갈수록 낡아가는 탓에 유지보수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열악한 탓에 선호도가 떨어지고 주변에 새로운 임대건물이 공급되면서 수익률이 떨어져 임대료와 유지보수비가 역전하는 탓에 주거 인기지역이 아니라면 서울에서도 차라리 비워두거나 매립해버리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반지하 거주민의 대다수가 가족단위가 아닌 독거노인 혹은 가출 청소년들의 비중이 높아서 고독사 등 다양한 부정적인 경험을 가져다주게 되어 임대를 꺼리게 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반지하 옥탑의 주거율이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2% 정도의 가구가 반지하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
필로티의 등장과 주차관리법
2017년 포항에 일어난 지진 때문에 문제가 많은 건축법으로 필로티가 지적되었다. 하지만 필로티는 현대건축의 토대를 세운 르코르뷔지에가 근대건축 원칙으로 꼽은 형태다. 기둥 사용으로 건축물의 벽이나 구조에 미적인 큰 창 등을 사용할 수 있었고 자가용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필요한 형태로 판단한 것이다. 필로티도 규격에 맞게(기둥 구조체 공법 등) 잘 건축한다면 굳이 내력벽 건축보다 지진에 취약하지도 않다. 이는 내진과 면진등 다양한 지진관련 건축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따라서 무조건 면진정도의 기준으로 접근할게 아니라 지반과 비용등 효율성과 적합성을 따져서 선택할일이라 한다.
물론 필로티로 인해 지하는 자연히 사라지게 되는 추세다. 주차문제가 지하를 없애는 중이라고 보면 맞겠다.
지하는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아서 건축물의 연면적(각층의 총면적)에 이익이 있지만 현대 건축법규에 맞게 지하를 만들려면 지상에 비해 건축비가 2배 더 들어간다. 필로티는 주차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건축법에서 필로티에 대한 층을 제해주어 층고에 대한 이득도 준다. 최대한의 수익을 내려는 건축주들은 필로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최근의 건축가들은 다양한 설계 아이디어로 필로티 없이도 멋진 집들을 지어내지만, 아직 대다수의 건축주들은 시공사의 캐비닛 설계에 의지한다.
경사면. 흔한빌라. 르코르뷔지에의 필로티건축
사실 골목을 걷는 사람들에게나 최근의 도시건축에선 필로티는 단점이 많다. 필로티로 가득한 빌라를 걷다 보면 아이레벨에서 보이는 게 주차된 차 밖에 없고 그 때문에 골목은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빨리 지나쳐야 하는 콘텐츠 없는 공간에 불과해져 버렸다.
최근 연남동이나 이태원 뒤쪽 골목, 경리단길 등의 오래된 다가구 주택들이 상가로 탈바꿈되면서 반지하나 1층 공간을 살린 곳들이 좋은 골목의 예라고 생각한다. 이들 상가는 독특한 아이레벨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주어 오래된 골목이 지향해야 할 바를 말해주고 있다. 뉴욕 일부 지역은 아예 정책적으로 대로변의 1층 상업공간은 통유리로 내부를 볼 수 있게 하여 거리에 볼거리와 활력을 불러왔다. 자연히 이 공간들은 사무실보다 상가 등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게 되었고 해당 지역을 지나는 사람들의 보행 속도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상권이 발달하게 되었다.
공유자동차가 필로티 건축을 해결할 대안?
하지만 필로티를 대체할 만한 뚜렷한 대안이 없다. 주차문제는 지금의 주차법으로도 해결이 힘든 포화상태인 데다 지자체에서 주차장을 매입해서 해결하기엔 서울의 땅값은 너무 비싸졌다. 의외로 도시건축보다 다른 곳에서 해결책이 나올 것 같다.
소유 개념의 자동차 문화에서는 자동차의 주행시간의 비율이 4.2%밖에 안된다. 나머지 95% 정도의 시간은 주차되어 있다는 뜻이다. 심각한 공간 낭비다.
공유개념의 자동차 문화는 선택이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미래다. 자율주행과 전기자동차의 확대 공유 서비스의 발전 등으로 근 미래에 공유개념의 자동차 문화가 정착된다면 아마도 필로티라던가 주차장 확보를 위해 주택을 기둥으로 떠받치는 등의 방법은 다시 도태되리라 본다. 그때에 걸맞은 좋은 정책을 준비한다면 우리도 골목과 1층의 콘텐츠를 보행자에게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