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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희 Nov 17. 2024

나는 대필작가다 3

제1장.  글을 대신 쓰는 사람? 대필작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왜 누군가는 대신 글을 써줄까?



고백편지를 써 주던 여고생


왜 나는 글을 대신 써줄까?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내게 오래된 기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어린 시절, 나는 고백편지를 대신 써주던 아이였다. 어딘가 낭만적이면서도 비밀스러웠던 그 일들은, 대필작가로 살아가는 지금의 나를 만든 복선이었을까?


그 시절, 친구들은 나를 ‘글 잘 쓰는 애’로 여겼다. 특별히 문장이 멋졌던 것도, 표현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마음속의 말을 꺼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조금은 쉽게 글로 풀어내 줄 수 있었던 것뿐이다. 17살 여고생이었던 친구들은 종종 나를 찾아와 속삭였다. 

“이거 좀 써줄래? 내가 좋아하는 교회 오빠가 있는데,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

그 부탁은 늘 조심스럽고도  간절했다.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내 연애편지도 아닌데 설렘을 가득 안고 펜을 들었다. 그들의 떨리는 마음이 마치 내 마음 같이 느껴지곤 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내 앞에 놓인 하얀 종이 위로 친구의 마음을 상상하며 단어를 얹어갔다.


"너를 처음 본 날, 주위의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린 것 같았어."  

"오빠가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혹시라도 이 마음이 너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좋겠어."


그 문장들은 내가 쓴 것이었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친구들의 마음이었고, 나는 그 마음을 조금 더 예쁘게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편지를 쓴 뒤, 나는 친구에게 슬며시 건넸다. 

“이제 너의 목소리로 전해줘. 그게 가장 중요해.” 친구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편지들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친구들의 반짝이던 눈빛이다. 그 눈빛은 햇빛에 반짝이는 물방울 같았다. 내가 해 준 일은 단지 글을 써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글이 친구의 마음을 전하는 다리가 되어준다는 사실이 어린 나에게는 묘한 기쁨을 주었다.


시간이 흘러,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은 내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던 일은 대필작가라는 직업으로 이어졌다.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글로 옮긴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그때부터 나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다만, 어린 시절에는 그 일이 그저 친구를 돕는 즐거운 놀이 같았다면, 지금의 나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책임감 있는 작업인지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진심이 세상에 닿을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은 연애편지 속 사랑의 고백이든,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든, 여전히 나에게는 아름답고 귀한 작업이다.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들


왜 누군가는 대신 글을 써줄까? 이 질문은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감정과 이야기가 얽혀 있다. 글을 대신 써준다는 것은 단순히 타인의 문장을 빌려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일이자, 감추어진 진심을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사람마다 글을 대하는 마음은 다르다. 어떤 이에게 글은 너무 투박하거나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전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 마음을 담을 적당한 말들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말로는 분명한 것들이 글이 되는 순간 흐려지고, 글은 때로 벽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그 벽을 넘어, 그 사람의 마음을 대신 전하려고 펜을 든다.


대필작가로 글을 쓰는 일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삶과 생각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고백과 이야기를 가장 진실된 모습으로 담아내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걸쳐 쌓은 경험을 전하고 싶어도, 그 경험을 풀어낼 언어를 찾지 못해 글쓰기 앞에서 머뭇거린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가 세상에 닿기를 바라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세상으로 보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럴 때, 대필작가는 조용히 그들의 마음 곁에 앉는다. 글을 대신 쓴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옮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언어와 감정을 섬세히 느끼고, 그 진심을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형상화하는 과정이다. 마치 잊힌 멜로디를 다시 악보에 새기는 것처럼, 그들의 목소리를 글로 되살리는 일이다. 대필작가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삶의 결을 따라 문장을 엮는다. 그 문장 속에서, 글을 맡긴 사람의 진짜 마음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왜 누군가는 글을 대신 써줄까? 그것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의 아픔이나 기쁨, 혹은 깊은 깨달음이 단지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글은 때로 말보다 진실하다. 말로는 숨길 수 있는 것들이 글에서는 여과 없이 드러난다. 글은 진심을 담기에 가장 적합한 그릇이다. 그렇기에 대필작가는 타인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담아내는 특별한 작업을 한다. 그 글은 대필작가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롯이, 글을 맡긴 사람의 것이며, 대필작가는 그 글이 가장 진실된 형태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다. 대신 글을 써준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그 진심을 공감하며, 그것을 세상에 펼쳐 보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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