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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필 작가다. 11

대필은 부끄러운가? – 편견과 오해를 걷어내다

by 김선희

대필은 부끄러운가? – 편견과 오해를 걷어내다


대필이라는 단어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곧잘 조심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호기심 반, 불신 반의 질문을 던진다. "그거, 누가 쓴 건지 모르게 하는 거죠?" 혹은, "표절이나 거짓말과는 다른 건가요?" 그 질문의 어조엔 공통된 전제가 깔려 있다. 대필은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일이며, 어딘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편견이다.

나는 이 일을 수년째 업(業)으로 삼고 있는 대필 작가다. 수십 권의 책을 써왔고,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과 긴 호흡으로 작업해왔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대필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일은 정직함, 윤리, 고도의 기술, 그리고 신뢰라는 네 개의 기둥 위에 서 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정확하게 듣고, 그 삶이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로 살아날 수 있도록 설계한다. 그 과정은 단순한 글쓰기의 차원을 넘어서, 기록자이자 통역자이자 기획자로서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요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언어적으로 불평등하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이야기를 글로 옮길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한평생 현장에서 쌓아온 전문 지식을 가진 기업인이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깨달음을 얻은 환자가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 철학을 발견한 예술가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 가치 있고,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메시지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자신의 경험을 효과적으로 문장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서 대필 작가의 존재 이유가 명확해진다. 우리는 언어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직업이다. 말할 수 있지만 쓸 수 없는 사람들, 경험은 풍부하지만 그것을 체계화할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 감정은 깊지만 그것을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그들과 독자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문제는, 사회가 대필 작가라는 직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령 작가(Ghostwriter)'라는 표현 자체가 일종의 왜곡된 인식의 반영이다. 숨은 존재, 어딘가 비밀스럽고 기묘한 작업. 마치 우리가 어둠 속에서 남몰래 무언가를 조작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의 대필은 그 반대다. 대필 작가의 모든 작업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우리는 고객과의 수십 시간에 이르는 인터뷰를 통해 말의 패턴을 포착하고, 시간의 결을 따라가며 서사의 구조를 설계한다. 단지 말을 받아적는 것이 아니라, 생의 흐름을 인과와 맥락에 따라 다시 조립하는 일이다.


내가 함께 작업했던 한 중소기업 CEO, 그는 30년간 제조업 현장에서 쌓아온 경영 철학을 책으로 남기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뒤섞여 있었고, 감정과 사실이 뒤엉켜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실패담을 어떻게 의미 있게 풀어낼지 몰랐다. 나는 그와 총 40시간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말투, 사고방식, 가치관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의 언어로, 그의 목소리로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그 책은 같은 업계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독자들은 모두 "진짜 현장의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그것이 바로 대필의 성공이었다.




윤리적 기반 위의 전문 기술


이 과정에는 고도의 윤리 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필 작가는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지만, 글의 책임을 진다. 저자명에는 의뢰인의 이름이 들어가지만, 그 글의 구성, 문체, 흐름, 심지어 문장 간의 호흡까지도 대필 작가의 손끝에서 조율된다. 우리는 자율적이되 투명하게, 익명적이되 책임감 있게 일해야 한다. 글의 주인은 고객이지만, 그 글이 타인에게 신뢰받는 데에는 우리의 기술과 판단이 깃들어 있다.


대필 작가의 윤리 기준은 일반 작가보다 더 까다롭다. 우리는 절대 거짓을 쓸 수 없다. 고객이 말한 것만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추측이나 상상으로 내용을 부풀릴 수 없다. 사실 확인은 필수다. 고객의 기억이 흐릿한 부분이 있다면, 관련 자료를 찾아 검증해야 한다. 때로는 고객 스스로도 잊고 있던 세부사항을 우리가 발굴해내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고객의 감정을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 슬픔을 과도하게 극화하거나, 분노를 부당하게 미화해서는 안 된다. 고객의 진짜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존중의 문제다.


실제로 대필이 이뤄지는 과정은 공정한 계약 아래 진행된다. 프로젝트 범위, 분량, 인터뷰 횟수, 교정·교열 책임, 인세 분배 여부까지 모두 문서화된다. NDA(비밀 유지 계약)는 필수다. 이 계약서들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대필 작가가 하나의 '전문 직업인'으로서 신뢰를 확보하는 장치다.

작업이 끝난 후에도 작가는 침묵을 지켜야 하고, 절대 그 문장을 자신의 이름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 '침묵의 윤리'는 대필 작가라는 직업의 정체성이자, 긍지다. 나는 지금까지 함께 작업한 고객들의 이름을 절대 공개한 적이 없다. 설령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언론의 주목을 받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는 단순한 계약상 의무를 넘어선, 직업적 자부심의 문제다.


때로는 지인들이 "그 유명한 책도 네가 쓴 거야?"라고 묻는다. 나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 인터뷰, 고객의 눈물과 웃음, 수십 번의 수정과 보완,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한 권의 책. 그 모든 과정을 나 혼자만이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대필을 왜소화하는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실명을 걸지 않더라도, 그 문장의 정밀함과 설득력, 감정의 균형은 철저히 작가의 능력에서 비롯된다. 한 CEO는 자신의 리더십 철학을 담은 책으로 수백 명의 직원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한 암 투병 여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같은 병을 겪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한 교육자는 30년간의 현장 경험을 정리한 책으로 후배 교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 책들은 모두 대필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됐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지만, 그 문장들은 누군가의 인생을 실질적으로 움직였다. 독자들의 서평을 보면 안다.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 "정말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마치 저자가 내 마음을 읽은 것 같다". 이런 반응들이야말로 대필 작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다.

우리는 단지 글을 대신 써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의 언어를 번역하는 사람'이다. 고객의 감정, 트라우마, 희망, 성장, 치욕, 두려움—그 모든 말하지 못한 것들을 우리는 말로 만든다. 단어가 없는 기억도 문장으로 살려낸다. 이것은 단순한 글쓰기의 기술이 아니라, 감정과 서사의 복원 작업이다.

기억해보라. 가장 소중한 순간들은 대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첫사랑의 설렘, 부모님과의 마지막 대화, 인생을 바꾼 깨달음의 순간. 이런 경험들은 당사자에게는 생생하지만, 타인에게 전달하기는 무척 어렵다. 대필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개입한다. 우리는 고객의 감정 깊숙이 들어가서, 그들조차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의 결을 찾아낸다. 한 노년의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고 싶어했지만, 막상 말로 하려니 "그냥 좋아서 했다"는 식의 단순한 표현만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작업실에서 보낸 시간들, 그가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들, 작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진짜 이야기를 발견했다. 결국 그의 책은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깊이 있게 탐구한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다.


사회는 이런 작업의 정당성과 가치를 아직 납득하지 못한다. '진짜 작가가 쓴 게 아니면, 그건 책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되묻고 싶다. '진짜'의 기준은 무엇인가? '작가가 쓴 글'이 반드시 더 진실한가? 고객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독자에게 위로가 되고, 울림이 되고, 의미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글의 목적을 다한 것 아닌가.


생각해보자. 오늘날 우리가 읽는 수많은 텍스트들이 실제로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신문 기사는 기자가 쓰지만 편집자가 다듬는다. 영화 시나리오는 작가가 쓰지만 감독이 수정한다. 기업의 보고서는 실무자가 작성하지만 상급자의 검토를 거친다. 심지어 학술 논문도 지도교수의 조언과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아 완성된다. 모든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협업이다. 대필은 이런 협업의 한 형태일 뿐이다. 다만 그 협업의 성격이 더 깊고, 더 전문적일 뿐이다. 우리는 고객의 대리인이 아니라 협력자다. 고객의 목소리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함께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이야기의 진정성은 '누가 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고자 했느냐'에서 비롯된다. 대필은 이를 실현하는 통로다. 고객의 언어를 빌려, 고객의 삶을 세상에 연결하는 다리. 대필 작가는 그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건너오게 한다. 그 다리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리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개인의 경험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동시에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 이야기, 의미 있는 메시지에 대한 갈증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필 작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우리는 수많은 개별적 경험들을 보편적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들이다. 특수한 이야기를 일반적 감동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대필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글쓰기의 또 다른 방식이며, 전문성과 윤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문학적 노동이다.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매일 새로운 인생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새로운 언어를 찾아내는 일.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한 사람의 삶이 글이라는 형태로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일. 나는 이 직업이 가진 정직함과 정교함, 그리고 묵묵한 아름다움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의 문장은 삶과 삶 사이를 잇는 결정적인 통로가 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어제도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목소리 너머로 절실함이 전해졌다. 나는 대답했다. "네, 함께 만들어봅시다."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름으로, 그러나 살아있는 문장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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