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대필 작가다. 8

재현의 기술

by 김선희


대필 작가의 일이란, 매일같이 타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낯선 집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듯, 그들의 말 속으로 천천히 발을 들이고, 마음의 구조를 더듬으며 언어의 결을 하나씩 손끝에 익히는 일이다. 나는 어느 날은 부모를 일찍 여읜 중년 여성의 단단한 목소리 안에 잠기고, 또 어느 날은 수십억 자산을 움직이는 기업인의 말 속 결단과 망설임을 동시에 감각한다. 가장 고요하고도 치열한 과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이 쓰지 않은 글을 그들처럼 써야 하는, 타인의 문체를 재현하는 일이다. 그 문체는 단지 말투가 아니라, 생의 방향이고 감정의 결이고, 기억의 맥락이다. 나의 손은 그들의 리듬을 따라 쓰지만, 나의 눈은 언제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마음을 조율한다. 수많은 목소리를 입고 벗으며 나는 안다. 글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을 품은 언어의 옷이라는 것을.


나는 누군가의 글을 대신 쓸 때, 말의 표면보다 그 밑에 깔린 감정의 결을 먼저 살핀다. 그 사람이 자주 숨을 고르는 자리, 단어를 고르다 멈칫했던 순간, 문장 끝을 흐리며 말하지 않은 감정들까지도 함께 기억하려 한다. 어떤 이의 문장은 짧고 똑 부러지며 마음을 곧장 향한다. 또 어떤 이의 문장은 길게 돌고 돌아 한참 후에야 중심에 닿는다. 단지 글쓰기 방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문체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깊이 듣고 닮아가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를 위해 나는 인터뷰가 끝난 후 반드시 ‘문체 채집’의 시간을 갖는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인터뷰 녹취록을 출력해 하나하나 낭독하며, 그 사람이 자주 쓰는 어휘, 반복되는 문장 구조,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감탄사와 간투사, 문장을 맺는 습관 등을 귀로 익히고 손으로 다시 옮긴다. 단어 하나, 종결어미 하나가 그 사람의 인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기업인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는 인터뷰 내내 “사실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과로 이어져야 하니까요”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그의 문장은 목표 지향적이며, 논리적 단계를 압축해 말한다. 이 사람의 문체는 단순히 ‘간결하다’가 아니라, ‘성과 중심적이고, 확신에 찬 말투를 선호하며, 주저함 없이 정리를 시도하는 리듬’이다. 나는 그의 글을 쓸 때마다 문장의 끝에 힘을 주고, 단락의 첫머리마다 결론을 던지는 방식으로 구조를 잡았다. 그런 방식이야말로, 그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체이기 때문이다.


반면 예술가 의뢰인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질문 하나에 십 분씩 생각에 잠기고, 문장을 시작했다 멈추고 다시 시작하며, 추상적인 단어를 곧잘 사용했다. “저는요, 그게… 감정의 결 같은 걸 따라가는 편이에요.” 그는 직관과 이미지, 연상의 흐름 속에서 언어를 찾았다. 나는 이 사람의 글을 쓸 때는, 가능한 한 비유를 허용하고, 문장에 공간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주어와 술어의 응집보다, 단어 사이에 놓인 여백과 정서적 파장을 더 중요하게 다뤘다.


이처럼 나는 의뢰인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문체 프로파일을 작성한다. 분석 항목은 다양하다. 문장 길이, 시제 사용, 접속어 빈도, 자주 쓰는 어휘, 반복되는 주제, 문장의 리듬, 심지어는 말의 속도까지 포함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20250726_180912_1.jpg


이 분석을 바탕으로 나는 ‘재현’을 시작한다. 나는 그 사람의 말을 외워 적는 대신, 그의 말이 가진 감정의 온도와 리듬을 ‘내 손’으로 다시 짓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뷰에서 “그땐 진짜 아무것도 생각 안 나더라고요, 그냥 하늘만 보고 있었어요.”라는 문장을 들었다면, 이를 “그 시절의 나는 생각을 멈춘 채, 하늘이라는 벽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존재였다.”로 바꾸는 것이다. 그 사람의 무력감과 정서적 단절, 그리고 당시 상황의 정적을 함께 살리는 일이 된다.


물론 이 작업엔 정해진 정답은 없다. 그리고 때로는 의뢰인조차 자신의 문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가 끝난 뒤, 그가 한 말들 중 가장 그다운 표현을 골라 몇 개의 샘플 문장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작가님, 이건 제가 쓴 것 같아요.”라는 반응이 돌아오면, 나는 안도의 숨을 쉰다. 내가 구현한 문장이 그 사람의 내면 언어와 맞닿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문장력보다 청취력이다. 나는 ‘듣기 위해 쓴다’는 자세를 견지한다.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듣기의 기술이며, 타인의 삶을 감각적으로 듣지 못하면, 그 삶은 아무리 잘 쓴 문장 안에서도 낯설고 멀어진다. 그렇기에 대필 작가는 누구보다 좋은 독자이자 민감한 청자여야 한다. 그리고 사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영화 한 편을 보는 착각에 빠져들 때도 종종 있다.





전문 분야의 원고를 쓸 때는 또 다른 종류의 긴장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예컨대 의료 분야의 대필을 맡았을 때, 나는 먼저 질병 이름을 외우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그 병을 앓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먼저 찾아 듣는다. 증상과 진단이 어떤 말로 환자에게 전달되는지, 의료진이 쓰는 언어가 어떻게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살핀다. 그 다음엔 의학 용어를 단어 단위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상황과 감정의 맥락 속에서 쓰이는지를 하나씩 짚어나간다.

전문 저널을 찾아 읽고, 인터뷰를 통해 의사의 설명 방식을 귀 기울여 듣고, 때로는 진료기록을 참고하기도 한다. 그 과정은 마치 낯선 언어의 뼈대를 세우고, 그 위에 정서와 맥락이라는 살을 입혀가는 작업처럼 느껴진다.


금융이나 법률,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다. 용어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 말들이 어떻게 다뤄지고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나는 해당 분야의 글쓰기 샘플을 수집해 읽고, 문장을 자르고 붙여가며 익숙해지려 애쓴다. 그렇게 익힌 말의 결을, 의뢰인의 말투와 마음에 하나하나 이어붙이는 것이다. 딱딱한 전문용어 사이에도 삶은 흐르고 있고, 나는 그 틈을 읽고자 애쓴다. 그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오늘도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입는다. 그의 문장을, 감정을, 기억의 결을 따라서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레 적는다.


그리고 의뢰인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작가님, 이건 마치 내가 쓴 것 같아요.”

그 말은 나에게는 문학상이자, 최고의 보상이다.

keyword
금, 토, 일 연재
이전 07화나는 대필 작가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