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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필 작가다.7

대필 작가는 이야기의 전개자가 아니라, 구조 설계자다

by 김선희


대필 작가는 이야기의 전개자가 아니라, 구조 설계자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흔히 창작의 영역으로 간주되지만, 대필은 창작과는 다르다. 대필 작가는 글을 창조한다기보다 구조한다. 이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들, 즉 산만한 기억, 중단된 서사, 감정의 층위들을 분석하고 배열하는 일이다. 한 개인의 인생이라는 광대한 아카이브 속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끌어내고, 무엇을 덜어낼지 판단하고,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설계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대필 작가는 말하자면 '서사 디자이너'에 가깝다. 단순히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인물의 여정을 공간적으로 설계하고 정서적으로 건축하는 사람이다. 독립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서 출발하지만, 대필 작가는 타인의 내면과 외면을 동시에 조율하며 글을 완성해야 한다. 그렇기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그 감정의 결을 따라야 하고, 흐트러진 시간을 서사적 시간으로 다시 짜야 하며, 흩어진 말의 방향을 ‘이야기’로 조직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말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물을 짓는 작업이다.


이러한 구조 작업의 시작점은 인터뷰다. 대필 작가에게 인터뷰는 정보 수집의 수단을 넘어, 서사의 뼈대를 세우는 첫 단계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 설계’다. 질문은 단순히 정보를 묻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감정의 결을 파악하고, 기억의 층위를 건드리며, 이야기의 축을 끌어내는 촉진제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때 어떤 일이 있었나요?"라는 질문은 너무 평면적이다. 대신 "그 선택을 내리기까지 마음속에 가장 오래 남아 있었던 감정은 무엇이었나요?"처럼 감정과 기억의 접점을 묻는 질문은 보다 유의미한 서사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실제 인터뷰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최소 3회 이상의 인터뷰를 기본으로 하고, 매 회차의 대화는 목적에 따라 다르게 설계한다. 첫 회는 주로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두 번째는 핵심 서사의 흐름을 구축하며, 세 번째는 디테일을 검토하고 논리적 비약이나 공백을 메운다. 이 과정에서 사용하는 도구도 다양하다. 음성 녹음, 실시간 기록, 인터뷰 일지, 심리적 반응 체크 리스트 등은 단순한 기억의 보조를 넘어 화자의 말 속 정서를 구조적으로 추출하는 데에 사용된다.


인터뷰 방식은 대필하는 원고의 성격과 의뢰인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회고록이나 자서전은 인생의 흐름을 시간순으로 정리해야 하므로, 연대기적 질문과 맥락 중심의 인터뷰가 요구된다. 반면 에세이나 자기계발서처럼 주제 중심의 책에서는, 감정적 경험과 내면의 인식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터뷰가 더 효과적이다. 정치인, 기업가, 예술가, 강연가 등 의뢰인의 직업군에 따라도 인터뷰 전략은 달라진다. 정치인은 메시지 일관성을 중시하므로 화법과 어휘를 주의 깊게 분석해야 하며, 기업가는 사례 중심의 구성이 핵심이고, 예술가는 상징과 이미지의 언어를 끌어내는 감각이 필요하다.


특히 기억의 왜곡이 잦은 고령층의 회고록 작업에서는, 단순히 말의 흐름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사실 확인을 위한 사전 자료조사와 병행하여 인터뷰를 구성한다. 가족 관계, 당시의 시대 상황, 주변 인물의 증언 등 다각적인 요소를 확보하고, 회상에서 빠져 있는 빈 구간을 메우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젊은 층의 자전적 에세이는 감정의 결이 섬세하고, 서사가 미완일 경우가 많기에, 미래에 대한 전망과 현재의 위상을 교차시켜 조명하는 방식이 요구된다.


인터뷰 이후에는 정리와 해석이라는 또 다른 고차원의 작업이 필요하다. 단어 하나의 선택, 말의 흐름, 반복되는 주제, 빠져 있는 인물 등 수많은 요소가 서사의 지도 위에서 분석된다. 이때 나는 그들의 삶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에서 균형 있게 바라본다. 이 거리감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진심을 잃지 않기 위한 대필 작가의 직업 윤리다.


또한, 전문 분야의 원고를 집필할 때는 단순히 인터뷰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의료, 법률, 투자, 건축, IT 등 고도화된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의뢰인의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대필 작가는 해당 분야의 기초 자료부터 논문, 보고서, 업계 백서 등을 사전에 검토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자료 검색, 구글 스칼라와 같은 학술 검색 엔진, KSDC와 통계청, 산업연구원, 각종 협회와 전문 학회 웹사이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식 출처에서 1차 자료를 수집하고, 의뢰인이 사용하는 용어의 배경과 개념까지도 충분히 숙지한다. 때로는 해당 분야 종사자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이미 출간된 유사 분야 도서를 분석하여 구성과 문체를 비교 연구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은 단지 지식의 확보가 아니라, 문장과 문장 사이에 전문성의 신뢰감을 입히기 위한 작업이다.


서사는 구조 없이는 메시지를 가질 수 없다. 누군가의 삶을 ‘책’이라는 매체에 담는 순간, 그 이야기는 하나의 구조체가 된다. 프롤로그는 독자의 감각을 열어야 하고, 본문은 그 사람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교차점에서 이야기를 확장해야 하며, 결말은 미화도, 무책임한 생략도 아닌 정직한 수렴이어야 한다. 나는 이 모든 흐름 속에서 단어를 조율하고, 문단을 배치하며, 각 장마다 정서적 리듬과 주제적 긴장감을 설계한다. 이는 단순히 문장력을 넘어, 일종의 ‘서사 편집 지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대필 작가는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말과 기억, 감정의 파편을 모아 그것을 하나의 책이라는 구조로 완성하는 사람이다. 그 글은 읽는 이에게는 감동이 되고, 말한 이에게는 정리가 되며, 작가인 나에게는 기술적 성취가 된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흩어진 말을 조합하고, 삶의 순서를 바꾸고, 때로는 한 문장을 위해 수백 개의 선택지를 고민한다. 글은 문장이 아니라 구조에서 완성된다는 진리를, 나는 이 일을 통해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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