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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필 작가다.5

삶 속의 문장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야말로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다.

by 김선희

나는 이야기를 듣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하루가 다 지나가기도 한다.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듣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 삶의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표면에 떠오른 말보다, 그 사이사이의 멈칫거림과 흐느낌, 오래 잠겨 있던 침묵과 말끝에서 머뭇대는 고백이 더 진실에 가깝다. 나는 그 틈을 오래 바라본다. 말로 표현되지 못한 진심이 언젠가 문장이 될 수 있도록.


대필 작가는 타인의 문장을 대신 써주는 사람이다. 말이 되기 전의 감각과 리듬을 복원하고, 그 사람의 내면에 흐르던 언어의 결을 더듬는 일이다. 기억의 결절을 하나씩 짚어내어 문장으로 빚어내는 일. 나는 그가 썼을 법한 문장을 상상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쓸 수 있었던 문장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야말로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은 쏟아내듯 말하고, 어떤 사람은 침묵 속에 오래 머문다. 누군가는 눈물부터 흘리고, 누군가는 숨을 고른다. 나는 말의 밀도를 가늠하고, 그 말이 머문 자리의 결을 기억한다. 평온한 말투 속에 감춰진 애틋함, 자주 반복되는 표현 속에 고인 상처를 발견한다. 타인의 문장을 쓰는 일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을 듣는 일이며, 그 마음의 어조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공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늘 귀 기울이고, 입술을 따라 말하고, 그의 속도에 맞춰 걷듯 문장을 만든다.


“이건 제가 한 말 같아요.”

내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이자,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그 한마디는 내가 글을 잘 썼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내가 흩뜨리지 않았다는 확인이자 안도다. 대필은 문장으로 타인을 대신하는 일이 아니라, 문장 안에 타인을 온전히 머물게 하는 일이다.


어느 겨울이었다. 내게 원고를 맡긴 사람은 노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말보다 침묵이 많은 사람이었다. 손에는 작은 가죽 노트를 들고 있었고, 첫날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서 김이 올라오고, 창밖에는 눈이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내가 가진 유일한 기술처럼 느껴졌다.


몇 차례의 만남 끝에 그는 천천히 자신의 삶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업 이야기, 젊은 날의 실수와 성공,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같은 것들. 그는 절제된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단정하고도 품위 있는 태도는 그의 삶이 정돈된 이력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유독 한 주제만은 쉽게 꺼내지 못했다. 장애가 있는 큰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기다렸다. 그 주제에 닿을 듯 말 듯 머뭇거리는 그의 숨결을, 말끝의 흔들림을.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말끝을 흐리며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꺼낸 문장은 짧았지만, 울음을 참는 그의 어깨는 오래 떨렸다.

“내가 그 애한테 해준 게 별로 없어요. 그 애를 생각하면 난 죄인이에요.”

그 순간,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그의 마음을 받아 적었다. 그는 결국 울었고, 그 울음은 오랜 시간 눌러두었던 진심의 언어였다. 나는 그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글로 옮겼다. 문장 하나하나에 그의 사랑과 미안함이 묻어나기를 바라며. 나는 책의 모든 문장이 그의 삶에 닿기를, 그 삶이 다른 누군가의 침묵을 깨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물론 말은 글과 다르다. 말은 즉흥적이고 산만하며, 감정은 자주 넘쳐흐른다. 나는 그 말의 조각들을 조용히 모으고, 넘치는 감정을 정제하며, 산란한 삶의 편린들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는다. 글은 생생해야 하지만 날것이어서는 안 된다. 진심은 남기되 과장은 피하고, 속도는 유지하되 깊이를 잃지 않도록, 나는 그 사이에서 조율한다. 말이 쏟아진 자리에 문장이 남고, 그 문장 안에 나의 호흡이 배어든다.


침묵은 종종 말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다.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공기 중에 떠 있을 때, 나는 눈빛을 읽고 손끝의 긴장을 느낀다. 멈칫하는 호흡을 기억해두었다가 조용히 문장에 넣는다. 그것은 허구가 아니라, 말보다 더 진한 진심의 복원이다. 사람은 때로 자신도 모르는 방식으로 기억을 건네고, 작가는 그것을 문장이라는 그릇에 담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대필 작가의 윤리라고 믿는다.


나는 타인의 목소리로 글을 쓴다. 하지만 그 글은 온전히 그 사람의 것만도, 나의 것만도 아니다. 그의 고백 위에 나의 손끝이 얹히고, 그의 서사 안에 나의 숨결이 흐른다. 그래서 어떤 글은 나를 닮고, 어떤 글은 나조차 낯설다. 그 낯섦은 내가 새로운 삶의 결을 배워가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삶의 결을 받아 적는 사람이다. 타인의 언어와 상처, 기쁨과 후회를 문장으로 풀어내는 일은 내 안의 기준과 감정을 끊임없이 흔들고 다시 조율하는 작업이다.


그 낯설고 조심스러운 다름이야말로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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