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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l Jul 31. 2021

안산 선수 금메달을 보며 느낀 것

경쟁에서 중요한 건 남이 아니다

나란히 선 세 여자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안산 선수가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3관왕의 등극이자, 오로지 그의 실력으로 소모적인 논쟁을 종결하는 순간이었다. 두 번의 슛오프(Shoot off), 극한의 상황에서 내리 10점을 꽂아 넣는 안 선수의 차분한 대범함에 박수를 보냈다.


반면 관전자인 나는 전혀 차분하지 못했다. 안 선수가 시위를 당길 때마다 손을 모았다. 안하던 기도가 나왔다. 상대 선수가 활을 쏠 때도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내용은 정반대였다. 전자는 텐을 외쳤고, 후자는 8점을 속으로 되뇌었다.


금메달이 확정되고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시상식을 봤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태극기를 보며 흐뭇해졌다. 곧 세 선수는 단상을 내려와 나란히 섰다. 세 여자는 메달을 걸고 자기 노력의 결실을 누렸다. 그 장면을 보는 내 얼굴이 붉어졌다. 경쟁에 과몰입해 유치한 기도를 올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경기를 복기하며 경쟁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세 가지로 갈무리했다.



1. 경쟁은 남과 하는 것이 아니다.

양궁 필승법은 한 가지다. 상대보다 높은 점수를 획득하면 된다. 그러나 그 기준을 경쟁자에게 두어서는 이길 수 없다. 상대 선수가 시위를 당길 때마다 낮은 점수를 기도했지만, 내 기도는 번번이 빗나갔다.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어쩔 땐 10점을 맞추고, 오히려 살짝 포기했을 때 8점을 쏘았다. 즉 상대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라는 것이다. 안 선수는 인터뷰에서 혼잣말로 멘탈을 다잡았다고 밝혔다. 경쟁은 궁극적으로 자기 싸움이다. 최선을 다하고, 상대의 몫을 기다리는 것이다.

 

2. 경쟁자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수 있다

대나무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가며 연습한 Deepika Kumari

안 선수는 4강에서 한 인도 선수를 만났다. 디피카 쿠마리 (Deepika Kumari). 94년생으로 지난 7월부터 세계 랭킹 1위다. 잘 나가는 선수로만 보이지만, 그동안 쉽지 않은 시간들을 견뎌왔다.


인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하다는 Ratu Chatti에서 자랐다. 그곳에서는 여자라면 응당 18세에 결혼한다. 학교에 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쿠마리 선수는 대나무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가며 연습했다. 어렵게 상금으로 번 돈으로 집을 사자, 주변에서 여자가 더러운 돈을 벌어왔다고 손가락질했다.


넷플릭스 다큐 <Ladies First>의 주인공이 쿠마리 선수다. 다큐 도입부에는 쿠마리 선수가 들어왔던 차별의 말이 나열된다. 예를 들어, 여자는 스포츠에 어울리지 않는다. 살림하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게 여자의 역할이다. 내 딸을 일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등등.


그는 이렇게 답한다.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말로 하면 사람들은 금방 잊을 것이다. 하지만 화살로 답하면 사람들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Often I feel like answering back, but then I think people might forget if I respond with words. But if I respond with my arrows, they'll never forget.)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두 선수가 감당하고 있는 고통의 원인은 같다. 여성의 결정을 비난하고, 자유를 박탈하려 드는 것. 그리고 그 시도에 오로지 화살로만 답한 두 선수. 극점에 있는 경쟁자라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3. 아무리 공정해도 ‘경쟁’ 자체가 목적인 건 의미가 없다

경쟁에는 반드시 승패가 있다. 비기면 연장전까지 겨뤄 승, 패자를 가른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에는 더 이상 승자와 패자가 아닌 금메달리스트와 은메달리스트, 동메달리스트로서 존재한다.


시상은 짧았다. 높이가 다른 단상에 선 선수들 위로 애국가가 울린 순간은 57초. 1분이 되지 않는 시간이다. 세 선수는 곧 단상을 내려와 같은 바닥에 섰다. 나란히 서서 각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더 긴 시간 동안 그랬다.


다시 같은 플로어에서 인사할 시간을 주는 것. 패자가 아닌 은메달리스트로 부르는 것. 그리고 4년 후에 도전할 기회를 주는 것. 경쟁의 의미는 이때 생기는 것 아닐까. 경쟁이 끝난 뒤 승자와 패자는 다시 같은 사선에 선 도전자일 뿐이다.


정치의 목적도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을 어떻게 시킬지 고민하는 것은 수단이다. 경쟁을 목적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경쟁 이후를 말하는 정치인에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경쟁의 규칙보다는 경쟁 그 다음을 말하는 사람,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세 여자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학교에서, 시험에서, 입시에서, 면접에서 마주쳤던 경쟁 상대였던 이들을 한껏 끌어안고 싶어졌다. 우리 모두 수고했다고. 그러니 각자의 메달을 품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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