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 Apr 08. 2021

김보라 감독님, 언제 제 방에 CCTV 다셨어요?

<벌새>

기러기는 보통 무리지어 날아간다. 기러기가 이렇게 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혼자보다 함께 나는것이 훨씬 더 이점이 많은데,  천적들에게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과 앞 새들의 상승기류를 타면 먹이를 찾을때 낙오되지 않을 수 있다는게 가장 크다고 한다. 기러기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건 되게 당연한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만만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단면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게 인간이라지만 나 역시도 혼자 다니는 사람을 보면 '저 친구가 뭐가 문제가 있나?'싶다. 내가 혼자였던 적도 많은데 말이다.


혼자였던 때가 많았다. 친구들이 있는 초등학교에서 먼 중학교를 올 때부터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건 되게 당연한 이치다. 난 누가 옆에 있는거에 대해 신경을 안 썼던거 같다. 내가 좋은사람이어야 상대도 마찬가지일 확률이 높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단 조금도 신경쓰고 살지 않았다. 내가 학창시절에 추구했던 건 별거 없었다. 앞 뒤 다른건 왠지 멋이 없었다는거 빼곤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그렇게 살았다. 공부는 잘하고 싶었지만 꼼꼼하지 못한 성격 탓인지 omr 채점만 하면 점수가 쭉쭉 내려갔다. 애들과의 공감대? 롤 몇판. 그 외의 취미라고 해봤자 전부 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무얼 해야할지 생각이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열심히만 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였던 때가 많았던 건 나 혼자만 다른 세상에서 살았기 때문이었을거다. 외로웠던 건 게으르게 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와 친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기야 있지. 만나는 사람에 비해 비율이 많이 부족했고 이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일거다. 난 나와도 친하지 않았거든.



<벌새>는 '친한 사이'에 대한 영화다. 10대 여학생 주인공 은희를 중심으로 여러 인간관계에 대해 나온다. 일단 은희는 친오빠와는 친한 사이가 아니다. 오빠는 은희를 수시로 때린다. 부모님과는 친하냐. 아니다. 은근히 벽을 둔다. 일단 어머니와 아버지는 은희의 오빠가 동생을 때리는것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다. 후에도 나오지만 은희와 친구가 벌인 일에 아버지가 보인 반응과 수시로 싸우는 부모님의 관계만 보더라도 은희네 가족은 끈끈하진 않은 것 같다. 남자친구 지완이랑은 친하냐? 아니다. 지완이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한번만 그랬나? 다음엔 지완의 어머니가 와서 '얘가 그 집 딸이니?'라며 모멸감을 줬다. 베스트 프랜드 지선이는 같이 벌인 일에 혼자서만 쏙 빠져나가려고 은희를 배신했다. X동생 유리도 마찬가지다. 언니가 너무 좋다고, 또 심지어는 뽀뽀까지 했다. 그럼에도 유리는 속에 숨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은희는 여러 관계에서 '진짜 내 편'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그런 은희에게 선생님 영지의 존재는 필연적이었을거다. 영지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선생님은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분이었다. 좋은 학교를 나왔지만 나 자신이 싫어질때가 많았다고도 말했다. 왜 담배를 시작했는지도 말해줄 수 있다고도 했었고, 맞게 되면 절대 맞고만 있지 말라고도 조언해준다. 은희와 선생님이 교감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은희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날라리 낙인 찍는 세상속에서 은희는 영지 선생님에게 유일하게 기댄다. 이후의 이야기를 더 서술할 순 없지만, 영화는 이 현실에 마주한 은희를 마냥 행복하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김보라 감독은 이런 플롯을 분명히 의도했을 거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거거든.


결말부를 보며 내 10대를 돌아봤다. 아무 생각도 없던 10대였기 때문에 한계에 부딫힐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난 영지 선생님과 은희 둘 다 이입할 수 있었다. 원하는 걸 얻는다고 해서 내가 나를 믿고 있었나라는는 것에서 선생님을, 과연 나를 알아주던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를 알아봐주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주인공을 떠올렸다.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의 답은 늘 같았다. 난 벌새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나이가 갈수록 친한 사람이 하나 둘 씩 사라져갔다. 무언가를 유지하려고 날갯짓만 하는 벌새. 나는 딱 은희와 같은 처지였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가 날 떠나가더라도, 배신하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면서 산다. 나도 그랬다.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난 항상 무언가를 나누는 사람이었다. 또 언제는 자격지심에 쌓여 나를 속이면서 살았지만 난 결국 나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영화는 이렇게 나와 세상의 부조리로 갈등을 겪어, 사람에게 상처받은 우리들의 모습 하나를 보여준다. 나는 은희와 영지 선생님의 모습 둘에서 내 모습을 봤다. 최고의 위로와 공감은 영지 선생님이 했던것과 같은 경청이라고 생각한다. 김보라 감독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난 이게 나의 어느 날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도, 이 영화를 보고 좋다고 느낀 많은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걸 느꼈다. 온 세상이 나를 등진다는 기분이면 어때. 난 누군가를 알아봐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또 이 영화가 우리의 인생을 알아주니 꼭 실패한 삶은 아닌것 같다고 생각했다.


<벌새>. 참 좋은 영화다. 영지 선생님으로 나온 김새벽 배우와 은희 역으로 박지후 배우가 연기한 두 캐릭터가 인상깊게 남아있다. <기생충>과 2019년 최고의 한국영화로 손꼽히는데는 이유가 있다. 왓챠에 들어가면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였나'에 대해 관한 영화라고 평이 나와있다. 김보라 감독이 이 평에 대해 마음속으로 이렇게 답할 것 같다. 벌새와 다를 바 없는 삶이더라도 꼬인건 없다. 벌이나 새가 되어서 언젠가 날아다닐테니 말이다.


이전 04화 아름답게 써서 하얗게 불태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