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쉼, 세 번째 이야기
좋은 재료로 정성껏 다루면 최고의 맛을 내지만 아무 재료나 마구 쏟아부으면 망가지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저의 몸은 형편없는 요리처럼 망가져 버렸습니다.
윤기 나던 피부는 푸석해졌고 날렵하던 복부에는 군살이 붙었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걸렸고 정기검진에서는 재검사를 요하는 항목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대신 한 끼를 때우는데 급급했거든요. 바쁘다는 핑계로 앉은자리에서 김밥과 컵라면을 10분 만에 해치우고 후식으로 초콜릿과 과자를 먹었습니다. 업무가 몰려 퇴근을 하지 못할 때면 야식을 주문했고, 아침마다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려 카페인 음료를 들이켜곤 했죠.
저는 건강하지 않은 음식들을 꾸역꾸역 몸에 집어넣으며, 스스로 독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집밥을 좋아합니다.
미식가인 친구 손에 이끌려 소문난 맛집에 가보고 기념일을 핑계 삼아 고급 식당도 찾아갔지만 결국 저의 허기를 달래주고 건강을 지켜주는데 집밥만 한 건 없었죠.
제게 집밥은 단순한 끼니 이상입니다.
가장 편한 곳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먹을 수 있는 밥.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한 온기를 전해주는 밥. 어제의 추억을 불러오고 내일의 고민을 덜어주는 밥. 고된 하루에 쪼그라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펴주는 밥.
집밥은 몸을 넘어 마음까지 다독여주는 포근한 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해 뜨면 출근하고 해 지면 퇴근하는 직장 생활에 수십 년을 매여 있느라 저는 집밥과 점점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새벽 6시면 일어나 식사와 간식을 만들어놓고 출근하곤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 한정이었죠. 제 자신을 위한 집밥은 뒤로 미뤄둔 채 살았습니다.
그래서 휴직 기간만큼은 저를 위한 수라를 진상하기로 했습니다.
임금님에게는 장금이와 산해진미가 있지만 제게는 늘어난 시간과 얇아진 지갑밖에 없으니 이를 바탕으로 식사 계획을 새롭게 세웠습니다.
우선,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되 필요한 것은 그때마다 동네 마트에 들러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온라인 쇼핑을 했는데 무료배송이 가능한 최소주문금액을 채우다 보니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행히 근거리에 중간 규모의 마트가 두 곳 있어 식재료를 직접 조달했습니다. 꼭 필요한 것만 조금씩 사다 보니 거의 매일 마트에 출근하게 되어 걷기 운동이 저절로 되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식사 메뉴도 바꿨습니다.
F1만큼 빠른 속도로 손실 중인 근육을 부여잡기 위해 계란과 두부, 육류와 생선을 늘렸습니다. 삶는 것이 영양학적으로 가장 좋다고 하여 계란과 두부는 보글보글 끓는 물에 삶아 먹었지만, 육류와 생선은 불맛을 포기 못해 올리브유와 아보카도유에 구워 먹었습니다.
사이가 데면데면했던 샐러드도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상추와 아보카도, 방울토마토가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했고 발사믹 식초와 꿀, 들기름과 간장, 그릭요구르트를 활용해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드레싱을 다양하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찬장에 잠들어있던 그릇들을 꺼내 놓았습니다.
계란 한알, 두부 한쪽도 예쁜 그릇에 담아 놓으니 귀한 수라처럼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가족들이 외출하고 혼자 밥을 먹을 때면 뒷정리가 귀찮아 큰 접시에 밥과 반찬을 대충 몰아 담곤 했는데 앞으로는 맛이나 영양만큼 모양새에도 조금은 공을 들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집밥의 가치는 식재료의 귀함이나 조리 과정의 능숙함에 있지 않습니다.
잘 먹고 건강해지려는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천 원짜리 애호박으로도, 뚝딱거리는 서툰 칼질로도 얼마든지 귀한 수라를 진상할 수 있습니다.
명품 화장품보다 피부를 빛나게 하고 비싼 영양제보다 체력을 강화시켜 주는 건 바로 정성이 들어간 매끼 밥상입니다.
고단한 직장 생활 중에 집밥을 챙겨 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도 언제나 다른 일들을 먼저 해결하고 싶은 욕심에 먹는 것의 우선순위를 제쳐 놓았습니다.
세끼 밥상을 모두 수라처럼 채울 수는 없지만 단 한 끼라도 집밥을, 그것이 힘들다면 집밥에 가까운 건강한 식사로 챙겨 드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잘 먹고 잘 싸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삶의 원칙에 따라 속 편한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