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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주 May 25. 2024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상사병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은 지독한 상사병(相思病)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마음에 둔 사람을 간절하게 그리워 한 나머지 병까지 얻게 된 주인공들을 보면 때로는 애처롭다는 생각이, 때로는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직장 생활 속 직장인도 지독한 상사병(上司病)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마음에 두지도 않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안겨 준 상처와 피해 때문에 병까지 얻게 된 직장인을 보면 때로는 눈물이, 때로는 울분이 터져 나온다.



지난 연말부터 나는 지독한 상사병(上司病)으로 고생하고 있다. 조직에서 평판이 나쁘기로 유명한 그는 그간의 사내정치가 결실을 거뒀는지 권력을 쥐었고, 이를 활용해 당위성도, 효율성도, 효과성도 모두 결여된 감정적이고 원색적인 공격으로 나와 직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오랜 세월, 차곡차곡 추진해 온 주요 프로젝트는 완성을 코 앞에 두고 그의 수하에게 넘어갔고 조직은 아노미 상태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업무를 빼앗겼다는 억울함이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보다 나와 직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누가 봐도 부당한 공격이 계속되는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안 없이 퇴사하거나 쫓기듯 이직하는 것, 아니면 버티는 것 외에는 없었다.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는 내가 객관적인 근거 자료를 내밀며 부당한 괴롭힘에 대해 수십 번을 항의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현대의 상사병(上司病)은 과거의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

호환은 운좋게 도망치면 온전한 상태를 보전할 수 있고 마마는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약이 개발되었지만 상사병은 도망쳐도 상처가 남고, 어떤 약으로도 상흔을 완벽히 지울 수 없다.


더욱 끔찍한 것은 상사병은 우리의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기본적인 생계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월급이라는 동아줄로 생계를 지탱하고 있는 우리가 상사병을 못 이겨 동아줄을 놓칠 경우 삶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결국 잘못된 사람 하나로 인해 우리 인생이 망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직장 생활에서 영원한 것은 없기에, 제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상사도 결국에는 물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날만을 기다리며 무작정 견디기에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피해가 너무나 처참하다. 그래서 나는 상사가 최악일 경우 퇴사나 휴직, 이직하는 것에 모두 찬성한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궁지에 몰릴 때 사람은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 대안 없이 홧김에 퇴사하는 것,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휴직하는 것,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이직하는 것 모두 괴롭힘을 당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들이다.


이러한 실수들은 일시적 위안이나 통쾌함을 안겨줄 순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어주진 못한다. 오히려 많은 경우 우리를 옭아매는 또 다른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지난 20년 간 열댓명의 악덕 상사를 겪으며 알게 된 최고의 전술은 최대한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다.


중년의 리더가 되어서도 진상 상사 때문에 하루에 12번씩 핏대를 올리는 내가 이런 충고를 할 자격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내 삶의 방향타를 타인에게 뺏기진 않았으면 한다. 


충분히 고민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휴직이나 퇴사의 시점을 정하고 현 직장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는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을 면밀히 탐색하여 이직하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고민의 과정에서 괴롭힘의 주범인 상사는 물론 주변인들의 조언에도 지나치게 동요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지인들의 충고는 언제나 감사하고 대부분 이롭지만 나의 상태가 피폐해져 있을 때에는 이조차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다.


내가 당하는 고통의 무게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다.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가장 간절히 바라는 사람도 나다.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처럼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가장 좋은 자구책이 나올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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