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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주 Sep 21. 2024

캐릭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직장 생활은 RPG 게임(Role Playing Game)과 상당히 닮아 있다. 튜토리얼(tutorial)을 실행할 때만 하더라도 비슷한 능력치와 이해도를 가지고 돌입하지만 레벨이 높아지는 속도와 양상은 제각각이며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점은 직장 생활과 RPG게임 모두 성공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자신과 맞는 캐릭터를 영리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RPG 게임은 캐릭터를 부르는 호칭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앞장서서 맹렬하게 전투를 이끄는 캐릭터, 후방에서 원거리에 특화된 무기를 활용해 지원하는 캐릭터, 마법을 부려 적군을 방어하거나 아군의 원기를 회복시키는 캐릭터가 조화를 이루어 전투를 감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 생활 역시 넘치는 열정과 기력으로 업무에 앞장서는 캐릭터,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지만 전면에는 나서지 않는 캐릭터, 업무 능력은 특출 나지 않지만 조직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캐릭터가 한 조직 내에서 협업하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게임과 직장 모두에서 이러한 캐릭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레벨이나 연차, 직급에 따라 갖춰야 할 태세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여 어떤 방법으로 미래를 헤쳐 나갈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이 현명하게, 신중하게 이뤄졌을 때 우리는 게임과 직장 모두에서 가지고 있는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며 지속적인 전개를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직장 생활에 있어 캐릭터 선택이 이렇게 중요한 일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연의 모습을 계속 노출한다. 이는 자신에게 편안한 것을 선택하려는 인간의 본성이 반영된 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직장과 일상에서의 캐릭터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만 하더라도 이 사실을 모른 채 상당히 오랜 기간 직장 생활을 해왔고 이제 와서 돌아보면 참 아쉬운 점이 많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직장은 집이나 학교가 아니다. 직장은 한 마디로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우리를 우호적인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평가의 대상으로 인지하는 곳, 성과 달성이라는 미명 하에 하나의 부품으로 활용하는 곳,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자와 낙오자가 발생하는 곳이 바로 직장이다.


본질적 자아가 순수하고 평화로운 사람도 이런 전쟁터에 발을 들인 이상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고 그에 맞춰 캐릭터를 선택하고 가꿔 나가야 한다.


가끔 신입사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보통 두 가지로 반응이 나눠진다. 하나는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며 직장 생활을 하고 싶다는 순수파, 다른 하나는 마치 가면놀이처럼 나와는 전혀 다른 자아를 만들어보겠다는 쇄신파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둘의 각오나 의지는 모두 타당하고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글들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지만 직장 생활은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이고 어느 하나에 치우칠 경우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고려하면서 일정 부분 전략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캐릭터를 만들고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내향적인 사람이 갑자기 외향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앞장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후방을 지원하며 때를 기다리기는 쉽지 않다. 업무 중심의 사람이 관계 중심의 조직 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특성에 따라, 맡고 있는 책임에 따라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변화시켜야 한다.


사람을 많이 대해야 하는 부서에 근무하고 있다면 내가 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단정하고 깔끔하게 관리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내가 아직 저연차이고 조직 내 무수한 선배들이 존재하고 있다면 나의 의견이 가장 훌륭하고 적합하더라도 살짝은 뒤로 물러서서 말할 기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내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조직의 리더를 맡게 되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심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직장 생활이 길어질수록 자신만의 캐릭터를 안정적으로 설정하고 점차적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하는 필요성은 더욱 짙어진다.


저연차 때는 우리의 캐릭터에 대한 반응이 저 친구는 저런 성향이구나, 저런 업무를 잘하는구나 정도였다면 고연차 때는 저 친구는 몸값만큼 일을 해내는구나, 저 친구는 리더로 활용이 가능하겠구나, 저 친구는 직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겠구나와 같이 보다 많은 요구와 평가 기준을 들이대는 이 직장이기 때문이다.



글로 표현하기는 쉽지만 직장과 일상의 캐릭터를 분리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완벽하게 분리가 가능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20년이 넘도록 직장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나도 아직도 직장에서의 캐릭터를 안정적으로 육성하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은 계속된 시행착오가 모여 결국 하나의 의미 있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업무에 따라 연차에 따라, 직장의 상황이나 경영진의 성향에 따라 전략적으로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완벽하지는 못해도 전투에서 꿋꿋하게 생존할 수 있는 공격력과 수비력을 고루 갖출 수는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멀리 가려면 결국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게임 장르 중 RPG 게임이 직장 생활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장기적인 전략에 따라 끊임없는 협업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캐릭터 선택과 육성을 잘해도 우리는 전투에서 나약한 개인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후방에서 지원해 줄 동료들이 있다. 가까이 있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해결하고 인정받는 과정을 늘려 나갔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심한 경우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두렵다고 협업을 포기한다면 전투에서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직장에서의 우리와 일상에서의 우리를 제대로 분리할 때, 그 둘이 완전히 다르진 않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일상의 본캐에 이어 직장의 부캐를 제대로 키울 때 우리는 직장 생활을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근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그 모습에 최대한 가깝되 보완해야 할 부분을 정확하게 인지하여 전략적으로 캐릭터를 설정하기 바란다. 게임도 직장도 저연차 시절에는 전직(재선택)이 가능하니 부담 없이 많은 도전과 시행착오를 경험했으면 한다. 그렇게 해서 캐릭터 설정이 끝났다면 캐릭터의 역량을 더욱 깊고 넓게 키워 나가고 우리를 받쳐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아군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제 준비가 끝났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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