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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미얀마인가...

파리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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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미얀마를 꿈꾸는 사람들...


로만 오팔카 (Roman Opałka) ,

폴란드 출신의 개념 미술가로,

무려 47년 동안 숫자를 적고, 

자신의 사진을 찍으며,

흐르는 시간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숫자를 적을 때,

물감의 농도를 조금씩 바꾸었다.

그래서 그가 찍은 숫자들은 

늘, 은은한 '채도'의 변화로 멋진 '추상화'로 완성된다.


'시간', '역사'를 '개념적'으로 다루면서도,

그 '결과물'이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의 작업이 무척 좋았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역시, 그의 작업이 가진 '시각적' 아름다움,

은은한 시간이 담아낸, 미세한 '차이'에서 오는 그 아름다움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회가 생기면 꼭 '차용'해 보고픈 작업 방식이었다.


철학자 박구용선생이 이야기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났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일상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환희'를 '만끽'하는 것...

그것을 오팔카의 작품이 보여주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브런치 글 이미지 1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러나,

전쟁터와 같이 '생'과 '사'를 가르는,

존재'에 대한 치열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라고 하지만,

나는 늘 '한 가지'가 아쉬웠다.

세상일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개념미술의 '한가함'이 싫었다.


그것은 어쩌면, 독재시절을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히 굴러가던 한국화단을 보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한쪽에선 '민중미술'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한국의 기성화단은 '프로야구계'보다 조용했다.

현실의 참상을 외면하고 '아름다움'을 논하던,

더구나 그 '아름다움'에 대한 논리조차도 죄다 서구에서 빌어다 쓰던,

한국사회에서 미술계가 보여준 당시의 모습은, 내게 '한국 현대 미술'에 대한 '불신'으로 남았다.


개념 수입상들과 미술 사기꾼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난 늘 '정치적 발언'을 하는 작업이 좋았다.

그리고 정말 '좋은 작업'들은 늘, 외견상 '정치적'이지 않아도, 

'정치적 발언'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내뿜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아웅산 수기 여사에 대한 작업을 하게 되었고,

오팔카의 방식을 대놓고 '차용'했다.

아웅산 수기 여사의 초상을 그리고,

그녀가 연금된 시간을 적어나간 것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브런치 글 이미지 4


내가 자란 시절, 민주화 운동의 두 상징은 김대중 대통령과 

지금은 미얀마로 부르는 당시 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였다.

두 사람은 민주화 운동으로 수많은 고초를 겼었다는 점이 닮아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옥고와 핍박 끝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고,

아웅산 수치 여사도 오랜 '가택 연금'이라는 탄압의 세월을 지나, 국가 고문의 자리에 올랐다.


이 작업을 제작하던 2008년은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에서 풀려나기 전이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15년 가택연금이 해제된다. 난 반가웠다.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러나 그녀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또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끝난다는 칼 마르크스의 말처럼,

그녀는 수많은 미얀마인들의 지지와 전 세계인의 응원 속에 총선에 압승하고 권좌에 올랐지만,

로힝야 난민들을 외면하며, 국제적 비난을 받았고,

미얀마에서 다시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다시 가택연금 되었다.

그리고 미얀마는 다시 군부 독재의 시절로 돌아갔다.


요즘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나라가 미얀마였다.

한국에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비상계엄'과 이어지는 '내란상태'를 목도하며,

여전히 내란을 이어가고 있는 세력과 

그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다 다다른 곳이 바로 '미얀마'였다.


미얀마는 군부와 그 주변의 특권층이 한나라를 지배한다.

국제 관계는 모두 단절되어 있고,

사람들은 독재의 횡포 속에 숨죽여 살아간다.

그러나 군부와 일부 계층은 저희들끼리 잘 살아간다. 나라가 어찌 되건 말건 상관없이...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인 사실들과 증언들이 쏟아지는 요즘,

비현실적인 세력들이 벌이고 있는 '권력놀음'의 목적은 결국 '영구 집권'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이상향은 '자기들끼리'만 잘 사는 세상이라면, 

그건 미얀마가 아닐까...


수많은 젊은이들이 응원봉을 들고 나온 것은,

삶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가장 절망했던 장면은,

2022년 국군의 날 기념식이었다.

기념식 말미,

군대의 최고의 엘리트라는 육사와 삼사관 학생들이,

부대 열중 쉬어도 못하는 군 통수권자에게 달려가 환호하는 장면이었다.

북한을 보는듯한 끔찍함,

그리고 그런 세계의 괴물들이,

지금의 내란을 '모의'했고,

이어가고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우리는 '미얀마'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0.73퍼센트의 차이가 야기한 대가라고는 너무나 가혹한 이 현실이,

어떤 미래를 새로 만들어낼까?

대한민국에서 '미얀마'를 꿈꾸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과,

정의로운 대다수의 사람들의 싸움에서,

우린 어느 쪽이 승리하게 될까...


미얀마는 지금도 군사 독재의 나라이며, 수많은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외신의 보도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잊히고 있다.

대한민국이 미얀마처럼 된다면,

대한민국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지금의 미얀마처럼 '무관심'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잊혀갈 것이다.

그런 미래가 오지 않도록,

미얀마를 바라보며,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

그리고 미얀마의 미래도 함께 생각한다.

로힝야족을 외면했던 미얀마와 수치여사가 다시 독재 군부에게 집어삼켜지며 잊히듯이,

우리도, 우리 역사 속의 약자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처럼 언젠가 우리다 다시 위험에 처할 때 

우리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미얀마도,

소수의 무도한 이들이 무고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세상의 종식을,

모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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