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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준 May 19. 2022

피넛 버터와 오후의 코끼리

피넛 버터와 오후의 코끼리

 나는 한 달 후 그녀를 찾아갔다. 한 장의 종이와 함께.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건너기 해법을 빼곡히 적은 종이였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푸리에 급수, 리만 스틸체스 적분, 오일러 공식을 공부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문제를 풀어냈다.

 “자, 정확히 한 번씩만 건널 수 있는 방법이야. 기억하지?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

 나는 수없이 고쳐 써 마치 고지도의 파편처럼 되어버린 너덜너덜한 종이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종이의 앞뒤를 유심하게 번갈아 가며 꼼꼼히 살펴봤다. 

 “흥. 아주 바보는 아닌가 보군. 내가 너를 만나는 것은 차가운 치킨을 먹는 그것보다 싫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나 콰이강의 다리 문제를 내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고. 자, 그럼 모처럼의 데이트인데 동물원에 갈까? 첫 데이트에는 역시 동물원이지.”

 그녀가 말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맑게 갠 화창한 오후였다. 우리는 볶은 땅콩과 피넛 버터, 그리고 롤빵을 사서 동물원으로 갔다. 도심에 있는 한 한적한 동물원이었다. 도심에 있는 한적한 동물원답게 동물들도 한적하게 있었지만, 그녀는 마치 아이 같은 즐겁고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는 코끼리 우리로 갔다. 커다란 시멘트 우리에는 늙고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우리는 땅콩을 먹으며 오랫동안 코끼리를 구경했다. 그녀는 아예 자리를 깔고, 코끼리를 관찰했다. 나는 땅콩 껍질을 벗기며 묵묵히 코끼리 우리를 쳐다봤다. 저 코끼리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을까 해서 꽤 집중해 쳐다보았지만, 그저 평범한 회색 코끼리였다. 다만 조금 늙고 피곤해 보일 뿐. 

 “이전에 한 코끼리가 사람에게 돌팔매질한 사건이 있었어. 코로 돌을 집어 사람을 향해 던졌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이야. 그 사람은 코끼리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았어. 그리고 그 코끼리를 고발했지. 경찰은 코끼리를 취조해 보았지만,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어. 완벽한 범죄였던 거지. 그 사건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리고 그 코끼리는 다시 우리 안으로 돌아왔지. 하지만, 그 코끼리는 이내 죽고 말았어. 꽤 나이가 많았던 코끼리라 수의사들은 자연사라 판단했지.”

 그녀는 롤빵을 꺼내 피넛 버터를 발랐다. 그리고 그 빵을 코끼리 우리에 던졌다. 코끼리는 떨어진 롤빵을 한참 쳐다보더니 이내 코로 주워 먹었다. 그녀는 내게도 피넛 버터를 바른 롤빵을 건넸다. 

 “그런데, 재미있지 않아? 그 커다란 코끼리가 돌을 던졌는데도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어. CCTV에도 찍히지 않았지. 코끼리 무덤이라는 전설이 있어. 무리 생활을 하는 코끼리는 죽음을 직감하면 무리에서 이탈해 홀로 자신이 죽을 무덤을 찾아간다는 거야. 그리고 쓸쓸하고 외롭게 죽음을 맞는 거지. 아마 그 코끼리는 시멘트 우리에서 자신의 무덤을 찾을 수 없었겠지. 그래서 화가 난 거라고. 그래서 아주 지능적으로 범죄를 계획한 거야.”

 난 땅콩을 씹으며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피넛 버터에는 말이야. 스트레스를 푸는 성분이 들어 있데. 피넛 버터의 유일한 성분이 땅콩인데 땅콩을 스프레드로 만들어 버리면, 특별한 뭔가가 생기는 거지. 그래서 피넛 버터를 바른 롤빵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 저 코끼리도 머지않아 자신의 무덤을 찾을 날이 다가오겠지….”

 그녀는 피넛 버터를 바른 두 번째 롤빵을 코끼리 우리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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