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TAE Mar 15. 2021

창작자의 시간과 소비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다르게 흐르는 창작자와 건설 엔지니어의 시간과 중력의 의미

이 글의 주제에 대한 모티브는 내 영감의 원천 아이유 선배님의 유튜브에서 얻었다. 어느 영상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음반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간과 곡이 발표된 후 대중이 결과를 보는 시간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서로 다르게 흐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머리 한 구석에 강렬하게 박혔다.



창작자의 시간과 소비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곡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동안에는 퇴근 후 저녁 시간을 거의 이 작업에 쏟아부었다. 작업하면 할수록 매일 해야 하는 과제와 보완해야 할 숙제들이 넘쳐났고 마스터링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정말 지쳐있었다. 더 손대고 싶지 않은 순간도 수차례 다가왔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음에도 생각보다 힘들게 마무리를 했고, 어느 순간 음원이 세상에 나왔다. 


주변에 오픈하고 나서는 시간이 참 금방 갔다. 주변에서 신기하다는 반응과 놀라워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그저 아는 친구 중, 같이 일하는 동료 중 특이한 사람이 있다고 느끼는 정도일 듯하다. 많은 음악이 매일 쏟아지는 세상에서 그저 작은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 정도가 아니었을까. 소비해야 할 콘텐츠가 매일 넘쳐나는 세상이니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흘러가는 것도 참 쉬운 일이다.


창작자로서의 시간은 참 느리고 고되게 가지만 소비자의 시간은 그저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갈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을 수차례 겪어가며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지키고 성장시켜온 아이유 선배님의 시간이 참 고단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공사의 시간과 발주처의 시간도 다르게 흐른다.


건설은 산업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이는 산업이다. 내가 속한 일반빌딩 상품은 프로젝트 당 보통 2-3년은 소요된다. 토목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두 세 프로젝트를 끝내면 정년퇴직을 한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로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14-5년의 경력을 쌓는 동안 본사에서의 4년을 제외하고는 이번에 4번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건설업의 시간은 비용으로 환산된다. 계약 조건 중 지체상금이라는 항목은 정해진 준공기간을 넘길 경우 하루 당 전체 금액의 일정 비율을 발주처에 보상하도록 규정된다.  예를 들어 1천억 공사에 지체상금이 0.1%/일이라면 준공 기준 매 일일 지연에 대해 1억씩 보상을 해야 한다. 발주자는 시간을 제한하여 정해진 시간에 건물을 지어 예정된 순간에 건축물을 사용하길 원한다. 건설은 외부의 자연환경, 제한된 공간 내 물리적인 한계와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모든 제약조건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으로 귀결된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공사 중 공사기간을 관리하는 여러 기법들이 쓰인다. 흔히 공정표라고 불리는 것이 시간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기법이다. 용도와 보는 기간에 따라 다양한 공정표를 만든다. 전체 공정표, 3개월 공정표, 3주간 공정표, 골조 Cycle 공정표 등등. 전체 공정표를 계획하고, 각 공종별 업체가 선정되면 업체별 공정표를 받아 비교 검토하며 진행한다. 업체를 선정하고 각종 ENG 일정을 관리하기 위한 Soft Schedule을 만들기도 하고, 착공허가나 사용승인 인허가를 위한 별도 공정표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공기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혹은 지연 요소가 발생할 경우 시공사의 귀책과 아닌 것을 구분해서 공기 연장을 받는다. EOT, Extention of Time을 관리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시공사가 건설의 시간으로 인한 위험을 방어하는 방법이다. 연평균 우천일 수 대비 악천후 발생 시 이에 대한 공기연장을 위한 계약조항이 있기도 하고, 코로나 등 천재지변에 따른 지연 발생 시 이에 대해 청구할 수도 있다. 또는 세부적으로 공정표를 분석하여 방어할 수 있는 논리를 찾아낸다. 이런 많은 고민들은 결국 건설의 시간 흐름을 관리하고 견디어 내기 위한 것이다.



중력에 따른 상대적 시간의 흐름. (feat. 인터스텔라)


영화 인터스텔라는 상대성 이론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한다. “중력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라고. 환경 파괴로 미래가 없는 지구의 대안을 찾기 위해 주인공인 잭이 한 행성을 탐험하지만, 그 행성에서의 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우주선으로 돌아오니 24년이 흘렀다. 이 한 장면으로 중력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상대성 이론을 관객에게 이해시켰다.


창작자의 시간이 관객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는 것은 투입한 노력과 정성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정성과 노력, 그리고 고민이 들어가는 시간과 결과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시간의 중력이 다르기에 노력한 시간은 힘들게 가고 바라보는 시간은 짧고 빠르게 흐르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정성과 노력, 고민이 들어가는 시간은 삶에 의미를 준다. 인터스텔라에서 중력의 결정체인 블랙홀이 시간과 특이점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된 것처럼, 힘들게 버텨온 시간은 삶에 의미나 보람이 되고 내 지경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내가 업으로 하는 건설이나, 지금 하는 글쓰기와 홈레코딩의 노력들이 언젠가 의미로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이전 27화 BBC 오케스트라로 들어보는 <요즘 어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