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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Jan 28. 2021

롤모델이 있으신가요? 혹은 되고 싶으신가요?

롤모델의 부재와 가변성, 그리고 가능성

‘19년 초 기술사에 합격하고 나니 내가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생겼다. 기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합격하기까지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지금의 공부 방향과 방법이 맞는 것인지, 과연 끝은 있는 것인지 의심하고 혼란스러워한다. 필기와 면접을 보고 나서 공부한 과정과 경험을 정리해서 자료로 만들었고, 공부를 시작하는 지인들에게 공유했다. 지금 현장의 감리단에도 기술사에 도전하는 분이 있었다. 공부하는 이야기도 들어주고, 내가 공부하면서 느끼고 고민했던 것을 나누면서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작년 최종 합격을 하셨고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기술사 취득 이후의 진로를 고민하면서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있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측량기사부터 시작해서 기술사를 4개 취득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이런 길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과 도전의식이 생겼었다. 엔지니어로서 스스로 길을 개척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인사이트가 있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약간 생각이 달라졌지만 누군가 레퍼런스로 참고할 수 있다는 것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위안이 되었다.


홈레코딩을 하면서도 레퍼런스로 삼았던 아티스트가 있다. Fanxy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아티스트인데, 이분도 맥과 로직 프로만 사용해서 앨범을 만들었다. 홈레코딩으로 음반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분의 음반 준비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일단 시도하면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고 덕분에 열심히 준비했었다.


자격이든, 진로든, 혹은 음악이든, 인생을 살면서 롤모델 혹은 따라가고 싶은 인물이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그 인생의 궤적과 사고, 결정을 참고하면서 내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정답에 가까운 레퍼런스가 있다면 참 편리하고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서 롤모델을 찾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10년 전 세상과 지금의 세상이 다르듯, 계속 빨리 변해가는 시대에서 인생의 롤 모델은커녕 레퍼런스도 찾기 쉽지 않다고 느낀다.


얼마 전 지인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다가 댓글을 남겼었다. 같이 회사에 입사한 동기였는데, 지금은 퇴사하고 부동산 공부를 해서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아나운서와 본인만의 가게도 여는 등 화려한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앞날에 대한 고민이 담긴 포스팅 중 레퍼런스가 없다는 언급에 ‘네가 시도하는 것이 곧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댓글을 남겼다. 레퍼런스가 없어 답답한 마음도 이해되고, 그럼에도 지금처럼 새로운 길을 잘 헤쳐나갈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롤모델은 가변적인 것 같다. 과거처럼 단지 한 분야에서만 잘해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라면, 내가 공부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조금만 나보다 먼저 시작하거나 잘하는 사람은 누구나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바로 한 발 앞의 길을 보여줄 수 있으면 누구라도 선생이 될 수 있다. 유튜브의 수많은 채널은 바로 이런 형태가 아닌가 싶다. 거창한 의미의 롤모델이 아닌, 조금 먼저 시도해본 이의 발자취를 레퍼런스 삼아 참고하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새로운 시도가 롤모델로서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도 하다. 누가 시공 엔지니어가 아나운서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누가 건설 엔지니어가 홈레코딩으로 음악을 만들면서 글을 쓸 거라고 생각했을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건설과 홈레코딩의 연결고리가 정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글에서 건설, 홈레코딩 두 키워드로 검색하면 내 브런치가 가장 먼저 검색된다. 굳이 두 주제를 연결할 필요가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건설하는 사람들 중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잘 없기도 했던 것 같다.(건설인들 분발하세욧!) 그래서 음악을 만들면서 글을 쓰면 조금은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건설은 수천년을 이어온 산업의 근간이어서,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실체를 이해하는 아주 좋은 툴이다. 건설에 대한 전문성은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 즐기며 조금 더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과정을 참고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싶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더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내 몫을 삶을 사는 것뿐이다. 일하고 글 쓰고 음악 하기도 바쁜 세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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