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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찌 Jun 02. 2024

바이센제

2010년도 즈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의 소개로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글을 쓰고 번역을 하는 친구였는데 무엇보다 여러 가지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베를린 필하모니 연간회원권을 끊어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 베를린에 1년 동안 머무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30년 동안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던 나에게는 그 친구의 베를린 계획은 너무나 신선했고 미술치료사로 번아웃에 다다른 나에게 모든 것들이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 친구는 내 눈에 엄청나게 용감하고 독립적으로 비쳐줬다. 그리고 이 친구라면 처음 가보는 외국도시에 그나마 적응하는데 덜 힘 들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먹을 때로 먹었지만 내가 사는 세계를 벗어난 적이 없던 터라 긴장보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모은 쥐똥같은 돈 400만 원을 가지고 대구를 떠났다.


나의 첫 해외도시인 베를린의 첫인상은 상상했던 것만큼 좋지 않았다.  

친구가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미리 바이센제라는 동네에 집을 구해놓은 터라 큰 어려움 없이 베를린에 안착하게 되었다. 그 집은 천장이 엄청 높고 옛날식 창문에 바닥이 삐걱거리는 방세개짜리 아파트였다. 집주인은 남편을 따라 스위스로 가야 해 급하게 집을 세 놓기로 해 방하나는 집주인의 짐을 넣어놓고, 나머지 방 두 개는 나와 내 친구가 각각 나눠 쓰기로 했다. 한국의 모던한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주거 공간이었다.

바이센제라는 동네는 2011년 당시 길거리에 극우 네오나치즘 정당-NPD의 포스터가 걸려있었고(우습지만 그 당시엔 NPD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크게 거슬리지도 않았다), 9월이 이제 막 시작된 것뿐이었는데 해가 짧아지고 날씨도 우중충해 집 앞 바이센제 호수를 산책하러 나가면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날씨 탓인지 동네 탓인지(옛 동독이었던 이 지역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그 당시에는 개발이 많이 되지 않았었다) 이곳의 첫인상은 한국 80년대 후반기 같은 느낌이었다. 여담이지만 한참 뒤 2019년에 취직한 곳의 상사분이 "발전한 나라 남한이라는 나라에서 무엇을 하러 이 촌구석 가난한 동네를 왔냐?"라고 물어본 걸 보면 2011년 그 당시 옛 동독지역은 아직 80년대 후반의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베를린의 첫 7-8개월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가뜩이나 그해 겨울은 왜 그렇게 추웠었는지, 첫해 겨울의 기온이 마이너스 17도까지 떨어졌었다. 그 당시에는 베를린의 겨울은 나의 고향 대구보다 훨씬 춥다고 생각되어 더 우울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첫해가 지나고서야 알았다. 베를린의 겨울은 추운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길다는 것을.  겨울 내내 해를 보기 힘든 데다 3시만 넘으면 어두워지는 긴 겨울은 베를린에 적응하는데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쏟게 했다. 날씨로 인해 외출하는데 동기부여가 필요한데 게다가 독일어도 못하고 영어도 유창하지 않아 밖에 나가는 것이 많이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길에 다니는 독일사람들의 경직되고 화가 난 듯한 얼굴과, 2000년도 대학교 신입생 때 한국에서 유행하던 빨갛고 파랗게 염색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얼굴까지 새까맣게 문신한 사람이나, 이곳저곳을 피어싱으로 장식해 변화를 준 얼굴들은 나를 더 경직되게 했다. 


그렇게 나의 베를린 첫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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