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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찌 Jun 22. 2024

내 친구 후안

후안을 독일어 B2 수업에서 만났다. B1 수업이 끝나면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이 사라지곤 한다. 대학을 준비하는 동양권 외국인들은 시험 대비 학원으로 옮기고, 일반적인 유럽 친구들은 독일어 기본만 배워 영어와 병행하며 살아가기에 높은 레벨로 올라갈수록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점점 줄어든다. 독일어를 배운 지 6개월 즈음이 지나자 새로운 반에 또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왔다. 중간 레벨쯤 수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개 독일에 어느 정도 거주했거나, 문법 없이 회화로만 배운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독일어로 대화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문법을 잘 몰라 보충의 목적으로, 혹은 회사에서 일정 수준의 언어 실력을 요구받아 학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오랜 타향살이로 외로움을 느껴 친구를 사귀기 위해 언어 학원에 등록하는 경우도 있다.

B2 첫 시간에 각자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게 되었다. ㄷ자 모양의 책상 왼쪽에 앉아 있던 나는 바로 반대편에 앉은 짙은 검은 머리와 수염의 친구에게 눈길이 갔다.
‘아니 저 아름다운 눈과 아우라를 가진 남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반대편에 앉은 친구는 중후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 내 이름은 후안 카를로스 아르테가라고 해. 나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왔어. 독일에 온 지 3년쯤 되었어.”
지금까지 간혹 스페인권 학생들이 있긴 했지만, 남미에서 온 남자를 만난 적은 없어서 신기하기도 했고, 그 이국적인 매력에 순식간에 빠지게 되었다. 검고 풍성한 헤어와 멋진 수염, 반팔 빈티지 남방의 단추를 반 이상 풀어헤쳐 가슴털이 보였다. 그런데도 느끼하다는 느낌보다는 마성의 남성미가 느껴졌다.
‘무조건 쉬는 시간에 저 친구에게 가서 말을 걸어봐야겠다.’
쉬는 시간에 아주 빠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매력적인 남자는 국적, 인종, 나이 불문 모든 여자들에게 통하는 듯했다. 나 외에도 다른 여자들이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 다가갔다. 그의 뒤로 나를 포함해 여자 5명이 뒤따라 커피 한 잔을 하러 어학원 옆 베이커리로 향했다. 다들 서로 후안과 이야기하고 싶어 난리인 와중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후안, 너는 어디 살아?”
후안이 대답했다.
“나는 여기서 별로 안 멀리 살아. 그라이스발트 스트라세 지하철 바로 옆, 마우어파크 가는 길 알지? 거기에 살아.”
나는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야, 나 학원 바로 옆 프렌자우어 알리 살아. 우리 동네 주민이네. 자주 볼 수 있겠다. 너 혼자 살아, 아님 WG (독일의 셰어하우스)?”
후안이 대답했다.
“아니, 나는 내 남편이랑 같이 살아.”
으응? 누구? Mein Mann?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내 남편?
아… 내 남편!
내 가슴에 눈물이 흘렀다. 역시 게이였어!
베를린에서 매력 넘치는 남자에게 말 걸면 4명 중 1명은 게이라는 말은 역시 과학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이 있던 다른 여자들의 얼굴에서도 실망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던지. 베를린에서 겪은 재미있고 유니크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되었다.
후안이 게이거나 말거나 그날 이후로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는 보고타에서 미술을 전공했기에 나와 공통 관심사도 비슷했다. 그 당시 베를린 예술계 게이씬에서 명망 높은 남편을 둔 후안을 알게 된 뒤로 후안, 그의 남편 랄스와 함께 더욱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후안의 고향 친구 레온은 성악을 전공해 독일에서 오페라 가수로 일하고 있었다. 그도 독일 친구와 결혼해 평범한 생활을 하는데 그 남편 토비아스의 직업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토비아스는 독일 고등가정법원의 판사로 일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도대체 뭐지… 시장도 게이, 판사도 게이… 길만 지나가면 게이라니… 성소수자가 많아서 놀란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직업적 프로페셔널함만 갖추어지면 성 정체성과 무관하게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독일은 정치인들도 성소수자들이 꽤 있는 편이다).
게이라 하면 내 머릿속에는 홍석천이라는 이미지밖에 없었는데, 후안도, 후안의 남편도 그냥 일반 남자와 비슷했다. 특히나 후안의 남편 랄스는 너무 교양 있고 어른스러웠으며,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의 모습만 봐도 왜 이 사람이 베를린 게이씬에서 덕망이 높은 지를 알 수 있었다.
독일 친구도, 한국 친구도 없던 나는 그들의 커뮤니티 속에서 2년 가까이 머물렀다. 그들과 함께 전시회를 다니고, 파티에 초대되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고,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언어를 배웠다. 2년 남짓 그들의 커뮤니티 속에서 베를린의 다양성과 자유로움, 편견 없음을 배우고 내면화했다.
“후안, 너는 왜 게이가 되었어?”
그 당시 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우리 아빠가 너무 싫었어. 그래서 우리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의 반대로만 하고 있어. 아빠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서 나는 담배는 절대 안 피워, 그 대신 마리화나를 피지, 그리고 아빠가 여자 문제로 우리 엄마를 너무 고통스럽게 했어. 그래서 나는 여자라면 질색이야, 그 대신 남자만 만나지.” 하며 나를 웃기던 후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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